권정일 시인의 이번 시집은 ‘우리’라는 관습적 발화를 의심하고, 또 그 말의 일상적 의미 앞에서 주저하고 있다. 그러한 말에 대한 의심과 주저는 모든 시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러한 의심과 주저 끝에 다시 힘겹게 ‘우리’를 말한다. (중략)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 주어가 사용되는 순간, 어떤 희미한 공동체의 빛이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허약한 언어에 의존하여 태어나는 무력한 공동체다. (중략) 권정일 시인은 쉽게 기대하지도 또 포기하지도 않으면서, 먼저 ‘우리’라는 발화와 그 의미 효과로 출현하는 가설적 공동체에 대한 탐구를 이어 나가고 있다.”(안서현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