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미 시인의 시집
"나는 늘 나쁜 여자를 꿈꾸어 왔어요. 아,아,지독하게 나쁜 시 하나를 쓰고 싶어요." 나쁜 여자를 꿈꾸다니? 등단 9년 만에 나온 김종미(49·사진) 시인의 첫 시집 이름은 '새로운 취미'(서정시학/6천원). 나쁜 여자를 꿈꾼다는 '도발적 소망'(?)이 새로운 취미일까? 표제작을 보니 그러한 것 같다. 그 시에는 '나는 매일 접시를 깬다'는 구절이 들어 있다. 접시를 깬다는 것은 삶의 금기,습관,위선,타성,매너리즘을 깬다는 것.그녀는 어느 날 박수 소리를 들었다. 한여름 소나기가 쏟아지면서 대지를 따따따-,두드리는 소리였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는 그녀 가슴에 무수한 느낌표로 꽂힌다. 변방에서 중앙으로,객석에서 무대로 그녀를 몰아넣는 박수 소리,박수 소리!'('모노드라마-소나기' 중에서). 소나기 떨어지는 소리를 박수 소리로 들었고,그 박수 소리의 부름에 따라 그녀는 무대 밑이 아니라 무대 위에 서게 된 것이다. 변했다. '배고픈 여우,바퀴가 닳은 자전거,(매혹적인)흑장미,(위험한)꽃뱀,이제 막 터지는 무화과 열매'가 되었다. 요컨대 접시를 쨍그랑 하고 깨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접시 깨기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잉태하기에 아름답다. 좀 낯선데 낯설어서 아름다운 시 '모노드라마-노랑머리'. 노랑머리 여자가 슬픔으로 누웠는데 대지에서 애벌레가 기어나와 그녀의 욕망과 아픔을 갉아 먹는다. 그리고 '그녀의 노랑머리는 펑펑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먼저 개나리가 피고 해바라기 피고…'. 꿈이었다. 잠에서 깬 노랑머리 여자의 속눈썹은 젖어 있다. 어디선가 전화가 온다. 그녀는 과감하게 (금기의)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그 순간 차례차례 허물을 벗는 애벌레들이 온갖 종류의 나비가 되어 그녀의 몸을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마치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깨진 금기의 접시들이 우화등선(羽化登仙)하는 장면 같다.[출처 부산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