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문예비평> 창간호 서문
오늘의 문예비평」 창간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부조리를 확인하는 몇몇 현상들과 만났다. 그것은 수서비리에 이은 페놀방류로 인한 수질오염 사건이다. 이 일련의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그 저변에 정치권력의 중앙집권화와 재벌중심 경제구조의 모순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재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중앙집권적 권력구조의 폐허가 남긴 문화적 열악성을 피부로 느끼면서도 지역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온 지역 문화인들에게 있어 지방자치제의 실시는 기대감에 가슴 부풀게 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지역 중심의 정치제도는 문화적 지역주의를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가 보다 나은 바람직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할 과정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가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기초의회구성원이 되고자 출마했던 자들의 이력분석 결과와 무투표 당선사례 그리고 기초의회선거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무관심이다.
기초의회선거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은 우리 사회의 정치가 어떠한 악순환을 계속해 왔으며 이를 통해 일반국민들에게 심겨진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해주었다. 이러한 정치적 불신감은 수서비리나 페놀방류로 인한 수질오염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난제임에 틀림없다.
특히 페놀방류로 인한 수질오염의 주체가 재벌기업이란 점에서 우리 사회가 떠들썩하게 목청을 높였던 <범죄와의 전쟁>의 대상이 과연 누구인가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했다. 다시 말하면 수질오염 자체의 문제보다 정치의 파행성이 이 시대의 삶의 모든 영역, 생활세계와 정신문화의 황폐화와 파행성을 몰고 왔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 자리 숫자로 떨어져 내린 우리 사회의 정신문화지수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이 시대를 지탱할 바람직한 가치관을 상실하게 했다. 그래서 급기야는 이를 극복할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해야 할 위기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감을 떨칠 수 없다. 즉 위기 국면을 넘어설 가치관을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이르렀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우리는, 옳고 그른 것을 제대로 분별하고 이를 토대로 올바른 사회적 가치관을 세워 나가는 일이 참된 비평정신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비평정신이란 가치지향의식이기에 올곧은 비평정신이 살아 있지 못할 때 그 사회는 건전한 가치관 형성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모든 영역에서 제 갈길을 향해 진전하지 못하고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각 영역마다 살아 있는 비평정신에 기초한 비평풍토가 조성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의 비평」 동인들은 문학영역에서나마 비평의 본래 정신을 회복함으로써 한국문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탐색해 보기로 했다. 정치, 사회 영역에 있어서의 불신과 생활세계의 오염 이상으로 한국문학 현실에 대한 독자의 불신과 문학현실의 파행성 역시 심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80년대를 거쳐 오면서 한국의 문학판도 정치판 이상으로 목청이 높았고, 그 목소리의 내용 또한 다양했다. 많은 소집단들이 속출했고, 그 집단들은 나름대로 기존의 문학판을 바꾸기 위한 노력들을 경주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집단과 새 세대들이 진정한 의미의 민족문학을 열망하며 더 나은 자기세대의 문학을 위해서 치루어야 할 엄격한 통과제의를 가시화하기보다 자기자리 확보에 급급했다는 점을 놓칠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은 80년대의 전환기적 문학상황 속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되어야 할 세대논쟁의 미흡함이 이를 증명한다. 세대논쟁이 어느 시대나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의 발전은 기존세대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는 데부터 시작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기억할 때, 지난 80년대의 문학세대가 진정 전세대가 남긴 문제를 제대로 극복했는지에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즉 전세대에 대한 비평적 작업이 정말 창조적이었나 하는 점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목소리는 높았지만 그 목소리의 의미내용들이 엄격한 의미에서 집단이익을 떠나, 순수한 문학적 열정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새로운 문학은 언제나 기존문학의 질서와 체제가 지닌 한계를 넘어서는 작업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기존문학에 대한 자기검증이 이루어져야 했다. 다시 말하면 앞 세대의 문학에 대한 온당한 비평을 통한 가치평가가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나 새로운 문학세대는 이 작업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기 이전에 개인이나 집단의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함으로써 올바른 비평문화를 우리 문학에 심어오지 못했다.
특히 산업사회의 메카니즘 속에서 문학 역시 하나의 문화산업으로 자리하도록 강요당함으로써 문학비평에 있어서 객관성이 결여가 심화되어 왔다. 문학비평의 객관성 상실이 바로 그 민족문학의 방향상실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평적 현실은 곧 문학적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양한 소집단의 문학적 지향에 근거한 문학의 당파성 자체를 문제시하고자 함은 아니다. 다양성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삶의 한 방향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위 당파성이 소집단의 이익과 이데올로기에 기초해서 상업성과 야합함으로써 비평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은 쉽게 보아 넘길 수 없는 현상이다. 문학에 있어서 상업주의적 왜곡은 문학비평의 자기반성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학적 현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문학비평의 진정성 회복과 독자들에게 바른 작품읽기의 길잡이가 필요함을 절감하였다. 이런 시대적 요청을 문학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장을 마련하고자 우리는, 문학비평 전문지를 창간하기에 이르렀다.
지방자치제의 시대가 열렸다고 하나 아직 갈길이 먼 형편에, 지역에서 비평전문지를 만든 일이 너무나 고달픈 것이기는 하나, 기존 서울 중심의 문학국조로부터 탈중심화를 지향하는 지역문화운동이 또 다른 차원에서 민족문학을 풍요롭게 하는 길이라 생각하며 이 일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부산지역문확의 활성화와 함께 지역문화의 질적 제고를 기대함도 우리의 바람 중의 하나다. 이러한 미래적 전망을 토대로 「오늘의문예비평」은 서평, 실제비평, 이론비평, 작가론, 작품론, 문학논쟁, 문단현안문제, 외국문학이론 등 비평 전영역에 걸친 새로운 문제제기를 통해 한국문학이 안고 있는 난제들을 풀어가고자 한다.
이번 창간호에는 90년대 한국문학에 있어서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를 특집으로 꾸몄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전반적 개관을 소개한 정형철의 글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적 수용이란 점에서 독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으리라 보며, 민족문학의 입장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의를 검토한 황국명의 시각 역시 동일선상에서 새로운 문제제기로 의미매김되리라 본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현상이 구체적으로 한국문학에서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시와 소설 작품을 통해 살펴본 이상금과 박남훈의 평문은 실제비평이란 점에서 꼼꼼히 음미해 볼 필요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문단 현안으로 논란이 되었던 소의 ‘김영현논쟁’을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정리한 정해조이 진단은 일반 독자들에게 좋은 안내가 될 것이다.
그리고 90년도 하반기 작품집 중 시, 소설에서 문제작품직을 선별하여 서평대상으로 삼았다. 앞으로 이 서평란을 좀더 확대하고 비판적 서평이 되게 함으로써 서평문화를 새롭게 열어 보고자 한다. 서평문화와 관련하여 싣게 된 이천효의 「서평의 문화적 기능」은 이런 측면에서 서평문화의 기초작업을 위한 토대가 되는 글이라 생각한다.
또한 신형기의 「해방직후 중간층 작가의 의식전이 양상」은 역사적 전환기에 처한 작가의 현실대응 방식이 어떠했는가 하는 역사적 거울로서 그 현재적 의의를 충분히 얻을 수 있는 논문으로 평가된다.
바쁜 가운데서 원고를 주신 모든 필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이 비평전문지가 앞으로 문학을 중심으로 모든 예술영역으로 그 관심을 넓혀갈 것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