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희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달빛 그릇'(전망). '바람에 불려 날아가버린 씨방 하나가 우주의 한 끝을 물고 와 문득 그 실체를 드러내놓는다.'('나무 하나가' 중에서). 자연과의 접선은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깨달음의 범위는 우주적이다. 혹은 '내리고 또 내려서 죽어 가는 하얀 나비 떼/ 나비들의 시체가 경계를 무너뜨렸다/ 맨 처음 그대는 하늘의 손님이었으나/ 죽음을 위해 더욱 가벼웠던 것'('춘설' 중에서)처럼 이내 사그라지고 마는 봄눈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바라보기도 한다.
밥을 먹으면서도 밥의 형이상학을 생각하고, 잉어찜을 먹으면서 잉어가 헤엄치고 다녔을 연꽃을 감상하는 아이러니를 생각한다. 한갓 미물에도 우주의 한 끝자락이 묻어있음을 안다. 그리하여 '거듭거듭 비워낼수록 그득히 채워지는 달빛 그릇/ 어둡던 내 안이 환해지고 거친 숨결 고요해졌다'('달빛 그릇' 중에서)처럼 자신을 비워내는 법을 알았다. 시인은 그렇게 깊어지고 있다. [출처 부산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