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희재 시집 『배롱나무 정류장』. 이 시집에서 시인은 현실의 절망조차 선연한 감수성으로 드러낸다. 「오후 세 시의 성지곡」에는 “꽃은 피어서 악기가 되고 내 모든 기억들은 눈을 떠 무언의 축가를 부른다”라는 구절이 있다. 시인이 지향하는 시법과 무관하지 않은 진술이 아닌가 한다. 노래하는 꽃과 축가가 되는 기억은 서로 상응한다. 시인은 유년의 빛을 지각함으로써 자아의 감옥을 벗어나 사물과 교응하고 타자와 교감한다. 「연화리 등대」와 같이 “방파제를 일으켜 세우는 하얀 포말 말떼를 몰았다”라는 경쾌한 느낌과 더불어 “난파한 꿈의 조각을 들고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라는 현실 인식을 병행한다. 사물과 풍경에 대한 꿈과 타자의 삶에 대한 경애의 마음은 서로 별개가 아니다. [예스24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