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현대시의 역사를 말할 때, 19C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로부터 시작된 상징주의 작
품을 든다. 순수시의 말라르메, 견자(見者)의 시인 랭보를 거쳐 절대시의 벤, 시에서 이미
지를 강조한 에즈라 파운드, 탈개성의 T.S. 엘리옷 등에 이르러 모더니즘은 활짝 꽃을 피운
다. 곧 이어 앙드레 브르통의 무의식의 시, 선동이나 혁명을 강조한 미래파, 영감과 현실,
언어의 해체(포스모더니즘)을 통한 무의식은 물론, 광장의 언어에 이르기까지 현대시는 그
기법이나 내용이 한층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따라서, 시가 그만큼 어려워져서 독자로부터 외면당하기도 하고 극기야 시의 무용론까지
대두되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세계적인 이론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시대가 발달할수록 시는 결코
국외로 추방될 수도 없고 추방되어서도 안 되는, 모든 예술의 중심에 서서 인간 정신을 계
도하고 인간 영혼에 불꽃의 날개를 단 깃대가 되어 세상의 흐름을 올곧게 짚어줄 수 있는
시를 통한, 살아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한국의 현대시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우리도 도도한 바다에 이르기까지 흘러 온 현대시
의 흐름의 물줄기를 점검하고, 누구에게나 쉽게 와 닿을 수 있는 호소력으로 국민 누구나
똑같이 나눠 가질 수 있는 좋은 시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존재의 집인 언어(하이데거)를 노래하는 시인은 감옥의 열쇠(알퐁스 도데)를 쥔 민족의
파수꾼으로서 그 역할을 자임하고, 보다 널리 읽힐 수 있는 좋은 시의 창작에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확장하여 세계 속에 파고 들 수 있는 한국의 시로서,
조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진단하여 쾌유의 큰 밑그림을 그리는 시, 자연과 삶의 모습을 있
는 그대로 역사 속에서 채근하고, 내면을 꿰뚫어 성찰하는 올곧은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