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이 후 30년의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여덟 권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다작인지 아니면 과작인지 스스로 잘 모르겠으나 열심히 독서생활을 하며 또 열심히 시집을 낸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 사이 산문집도 3권을 내었으니 시에서 밝힐 수 없는 말과 좋은 글들을 찾아 읽고 쓰고 하였다
이제 돌아보는 그 시간은 길고 남은 시간은 짧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장死藏되어버린 저 숱한 시어들과 젊은 날의 반짝거리던 환희의 순간들을 문득 다시 들추어 보고 싶었다.
망설임과 내향성 때문에, 부실한 건강 때문에, 얼굴 없는 작가처럼 작품만 내밀고 정작 누구와도 잘 교류하지 못했다. 작품성 또한 미미했던지 타인의 눈길도 끌지 못했다.
대중성이 없는 나만의 독창적 사고방식이, 대중의 구미에 맞게 따라가지 않고 내면의 세계를 파고들어 사물의 관조적 기울임 쪽으로 흘러가 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때로는 스스로 조차 가치없이 여기던 그들에게도 탄생이 있었고 또 소멸이 있었을까,
먼 세월 저쪽으로 가라앉아 버린 시어들이 어쩌면 부끄럽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했다. 이제 이만큼의 시간 안에서 그들을 한번 건져 올려 주고 싶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의 독자라도 심혼을 울리는 영적 교감을 할 수 있다면 이 땅에 무수히 돋아나 짓밟히면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풀잎처럼,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의 긍지와 보람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