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요즈음 더욱 속화되어 가고 있다. 현대의 삶은 복잡다단하게 얽혀 핍박한데, 시는 그것을 담아내지 못 한다. 생활방식이 급변하고, 현대인은 그에 적응하기 위하여 경쟁과 속도에 내몰리고 있다. 자본의 지배와 기계주의에 빠진 도시인의 일상 속에서 시도 함몰되고 있다는 느낌은 우리들을 우울하게 한다. 시는 여전히 복고적인 1920년대식 감상적 서정의 틀에서 헤매고 있다. 실험정신을 통한 정신의 확장운동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점점 기계적인 삶에 눌려 왜소해져 가는 의식을 일신하고 새로운 정신적 활력을 일깨우는 시의 역할을 생각해 본다.
본인은 시가 현대의 삶과 정신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왔다. 평생 모더니즘의 시 정신을 탐구하면서 시작에 임해왔다. 시인은 시대의 첨단에 있어야 되고 거기에서 새로운 시의 비젼을 찾아야 된다고 믿어왔다. 시는 현대적이어야 한다는 랭보의 명제를 안고 살아온 셈인데, 아직 그 정신의 철저한 실천에는 이르지 못 하고 있다. 그러나 나름의 시의 길에서 어느 정도의 성취는 있었다고 본다. 한편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는 시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진정한 의미의 휴머니즘은 시대적 상황인식을 전제로 발현된다.
이번에 발간하고자 하는 시집 <달의 침묵>(가제)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의 실험시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 외 존재에 대한 의문이나 인식. 그리고 현대 삶의 어두운 단면과 초월의식, 소외와 단절의 내면 풍경, 휴머니즘에 대한 갈구 등을 시로 담아내고자 했다. 부산의 지역적 특성을 배경으로 한 시들도 상당수 있다. 본인은 부산이란 지역 문화의 정신을 근간으로 시작에 임해왔다. 한국에서 모더니즘 시 운동은 부산이 그 메카이다. 그런 면에서도 이번 시집 발간은 모더니즘시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 시집을 기획하는 의도는 이상에서 언급한 정신의 시적 구현을 목표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