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상개화(樹上開花)*는 병법36계에 나오는 위장 책략의 하나로 꽃이 없는 나무에 조화를 붙여 화려한 모습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전술을 의미한다. 본 작품은 ‘나무에 핀 가상의 꽃’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인간의 외면과 그 이면에 있는 공허, 그리고 더 깊은 곳에 자리한 창의적 힘을 이야기한다. 꽃은 꽃이되 비어있는 꽃, 겉으로 한껏 치장한 꽃은 인간이 살아가며 가면처럼 쓰고 있는 일종의 페르소나(persona)와도 닮아있다.
그리스어로 ‘가면’을 의미하는 페르소나는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 사회나 집단이 요구하는 외적 모습이며,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외적 인격인 페르소나를 만들고 키워나간다. 페르소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참된 나’라 할 수 없으며 삶의 목표를 페르소나와 일치시키거나 자아를 페르소나와 동일시할 때 인간은 자기의 본성과는 멀어지고 심리적 단절과 회의가 밀려온다.
마치 잘 꾸며진 화려한 꽃만 있을 뿐 뿌리와 단절된 나무와 같고, 본성에서 우러난 내면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져감으로써 나를 잃어가는 상태인 것이다. 작품은 화려함을 벗어두고 비어있는 나무속으로 들어가 내면의 신이 말하는 진정한 나의 의미와 목소리를 찾고자 하는 개개인의 고독한 여정을 구현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무 아래 깊게 드리워진 원초적 생명의 뿌리와 연결된 강인한 꽃을 다시 피워내는 회귀와 재탄생의 과정을 그려낸다.
본 작품은 오늘날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면의 문제와 진정한 나에 대한 숙고를 다룬다. 자연 친화적인 설정은 보편적 주제라는 작품 의식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따라서 본 작품은 심연과도 같은 무의식의 상징인 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꽃과 나무, 바람과 소리의 색채와 감각이 어우러져 끌어내는 움직임을 통해 현대 사회의 가상성을 재현하고 본성에 귀를 기울여 회복하는 내면 치유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