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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각형25_5

문화분야 시각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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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APD24687최종업데이트:2026.05.14

프로필

  • 제·작자 이창진 []
  • 작품제목 오각형25_5
  • 작품장르 문화분야 > 시각 > 미술
  • 발표일 2025
  • 발표지역 부산시
  • 발표매체 및 장소 어컴퍼니

작품설명

  • 빈 종이 이창진 전시설명/작업노트

    2023년 말에 진행된 개인전 <통계학적 미술사>는 우리 주변에서 서서히 사라져 가는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연히 당근마켓을 보며 어릴 적 주변 어느 집에나 걸려 있었던 모란, 대나무, 산수 등과 같은 동양화 액자들이 헐값에 혹은 무료나눔으로 올라온다는 것을 보며 미처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 그런 그림들이 점점 없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말 없는 사라짐은 특히 자신이 작가로서 또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져왔던 도태에 대한 무의식적인 불안감을 마주하게 만들었고, 그 그림들을 수집해 재구성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전시는 <통계학적 미술사>의 재구성 이후의 과정으로써 그림에서 형상이 분리되고 남은 빈 종이(여백)에 관한 고민이다.

    전시 이후 나는 특별히 그림을 모으는 것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분리한 액자와 유리가 쌓여가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거니와 한쪽에 쌓여있는 그림에서 떨어져나온 종이 조각들에 대한 생각들 때문이었다. 맨 처음 동양화 콜라주 작업을 생각해 낼 당시, 동양화에 있는 여백이 각각의 형상을 분리하는데 용이하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막상 작업에 들어가 칼을 들고 그림 앞에 섰을 때 산과 하늘을 또 나무들을 임의로 경계 짓고 떼어내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형상이 없어진 그 나머지 종이들에서 먼 산은 희미한 물감의 자국이 되어버릴 것이고, 특히 여백으로 처리된 강과 물안개, 또 하늘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그냥 종이 그 차제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꺼내놓지 않는다면 누구도 캐묻지 않을 일이었다. 그것들은 단순한 오리고 남은 종이짜투리로 밖에 보이지 않기에. 하지만 나는 그것들이 보이지 않는 그림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화면의 간격을 조절해주던 강과 물안개, 하늘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 종이들을 가지고 이리저리 맞춰보기도 하며 아무래도 그것들을 다시 드러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종이들을 조합해 빈 부분 없는 한 면의 종이로 결합하기로 했다. 그것은 맥락을 잃고 떨어져 나간 작은 조각들로 구성된 <표본>을 작업할 때처럼 모든 그림의 조각들을 남김없이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하나의 남은 종이 밑에 다른 남은 종이를 겹쳐놓고 윗부분의 형상을 따라 칼로 오려 위, 아래를 합치면 마치 장판이나 시트지를 하나로 이어 붙일 때처럼 이음매가 없어진다. 이리저리 돌려가며 최대한 빈 공간 없이 맞추고 다시 또 이어붙이기를 반복하여 여러 장의 종이를 하나의 면으로 이어붙여 나갔다. 그림의 가장자리 부분이었던 종이의 직선 면이 나오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시 이어붙일지 멈출지를 결정할 수 있었다. 빈 종이에서 형상이 잘려 나간 모양 중 일부는 그런 겹침칼질에 의해 또다시 아랫종이에 복제되기도 했지만 날카로운 부분들이 조금씩 무뎌지거나 다른 이유로 변형된다.(<변형1-10>) 종이 간의 색, 질감 차이로 잘린 모양이 더 부각되고, 말이나 새 같이 제법 알아볼 수 있을 만한 것과 유추해 내기 힘든 형상들이 맥락없이 혼재되었다. 과정이 반복될수록 남은 종이는 점점 작아지고 결국 나의 강박과 같이 사라지진다. 서로 다른 그림에서 온 종이들을 붙여 한 면에 나열해 놓으니 각양각색의 종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내게 그림이 오기 전까지 어떤 공간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왔는지 저마다의 사정이 고스란히 보이는 듯했다.

    이후 합친 종이들을 배접하기 위한 패널을 만들었다. 패널에 올라 간다는 것은 그간 주로 해온 설치작업의 호흡과는 무척 달랐다. 수집과 그에 따른 증식이 열려있는 나의 작업 특성상 일반적인 사각의 패널은 그 안을 어떻게 구성해도 답답해 보였기 때문이다. 패널과 씨름하던 차 결국 나는 그 답답함의 이유가 사각 패널의 중력을 전제로 정해진 상하좌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각으로 된 문과 창문, 캔버스, TV와 같이 사각은 방향을 연상시킨다. 그 사각의 틀 안에서 방향성 없이 증식하는 빈 종이들은 프레임의 가장자리를 만나 그에 맞게 재단되어질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을 피하기 위해 다각형의 패널을 만들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빈 종이의 가장자리에 맞춰 패널을 제작하기로 했다. 특히 오각형은 사각형에서 벗어나는 그 시작점이라서 좋았다. 또 오각형에서 변을 하나씩 늘려가면 점점 방향성 또한 희미해 질것이다. 원래 그림에서 하늘의 역할이던 빈 종이-여백은 그렇게 또다시 오각형의 패널 속에서 마치 누워서 하늘을 보듯 또다시 새로운 천창을 열어 줄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그 빈 종이가 하늘이고 강이며 물안개였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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