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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

문화분야 시각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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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APD24693최종업데이트:2026.05.14

프로필

  • 제·작자 이창진 []
  • 작품제목 산산
  • 작품장르 문화분야 > 시각 > 미술
  • 발표일 2023
  • 발표지역 부산시
  • 발표매체 및 장소 금샘미술관

작품설명

  • 때때로 당근마켓에 접속한다. 당연히 처음엔 물품을 사고팔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재미의 목적이 크다. 의외로 그곳에는 별의 별 물건들과 이야기들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또 어떤 것들이 요즘 인기가 있고 어떤 것들이 쓸모없는가 같은 일종의 시대상도 자연스레 알게 되기도 한다.

    몇 년간 당근마켓앱을 즐겨 사용했다. 그러던 중 묘한 기분이 가끔 들었다. 일종의 옅은 기시감처럼.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채 넘어가곤 했다. 그러던 중 작년에 나는 그 기시감의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것은 어떤 <그림>때문이었다. 그림은 종종 매물로 올라온다. 고속도로 화장실에 걸려있을 법한 해바라기밭의 풍경화부터 구십 년대 미대생이 그린 그림, 누구나 알 법한 작가의 그림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이상하게 관심이 갔던 것은 동양화이다. 사군자와 산수, 목단을 비롯한 화려한 꽃과 동식물들의 그림들. 글귀를 한구석에 써놓고 빨간 도장을 찍어놓은 비슷비슷한 형식. 어릴적 기억속에 담배연기가 항상 자욱했던 아버지의 사무실에서도, 고등학교 점심시간에 담을 넘어 라면을 끓여먹으러 갔던 친구의 집 나무색 거실에도 그런 풍의 그림들이 있었다. 어릴 적 내게 동양화는 주변에 늘 있어서 누가 그린 그림이라는 생각보단, 전화기나 소파마냥 그냥 그곳에 있는 가구 같은 물건이라 여겨졌다.

    언제부터였던지 모르겠지만 때때로 그런 그림들을 길모퉁이 전봇대 아래에서 보았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아파트로 이사 오고 나서는 분리수거장에서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당근마켓 무료 나눔을 보면서 모조리 기억이 났다. 그렇게 익숙하게 내 주변을 차지하고 있던 것들이 너무나도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의문이 생겼다. 어딜 가도 있도록 왜 그렇게 많이 그려졌는지. 또 어떤 방법으로 유통이 되었는지. 기타 등등. 그런 생각들은 이전부터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섞여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료나눔’을 보면서 명료해 졌을 것이다. 앞서 기시감이라고 두루뭉술하게 얘기했지만, 사실은 그 감정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난 그 그림들에게 나의 작업을, 또 나의 지금을 무의식적으로 대입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나의 작업들 또한 전봇대 뒤 벽 귀퉁이에 아무나 들고 가도 된다는 무언의 양해를 구하며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런 생각들이 미묘하게 기시감이라고 여겨졌던 것 같다. 이제 기시감은 명백히 불안감으로 고쳐 말해도 된다. 작가로서의 실패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 잊혀 질 것에 대한 두려움...... 애써 맞닥뜨리지 않으려 피해다녔던 그런 감정들. 기어이 당근마켓에서 떠올려 버린 것은 결국 나의 약한 속마음이었다.

    이 그림들을 모아 작업을 시작한 것은 몇 달의 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방식은 이미 생각해 두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앞섰기 때문에 늦어진 것이다. 그것은 타인의 붓끝과 호흡이 느껴지는 그 사람의 자체와도 같았을-아닐지라도 그렇게 가정하는게 맞다. 그 그림을 내 손으로 오려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내 작업에 누군가가 다시 손을 대는 것을 나는 견딜 수 있는가? 그게 버려지고 헐값에 구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냥 재료로 삼아버려도 될까? 그것은 복잡한 문제이다. 하지만 고민 끝에 나라면 동의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머지 사적감정은 접어두면 된다. 그리고 기성의 것을 가져와 생기는 차용에 관한 논란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2022년 12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8개월 동안 부산지역에서만 200점 가량의 액자, 병풍, 족자들을 수집했다. 다양한 종류의 그림들이 있었다. 목단, 정물, 이름 모르는 꽃 그리고 다양한 필치의 산수, 새와 호랑이, 백 마리의 학 도. 습기에 변색이 된 것과 곰팡이가 핀 것들. 아예 그림의 포장을 뜯지도 않은 것까지(이 그림은 무료 나눔이었다.) 나는 이 그림들을 액자와 나무틀에서 떼어내고, 빳빳하게 만들기 위해 다시 삼합 한지에 배접을 했다. 중첩된 산과 들, 나무, 집과 배 따위를 따로 오려내고 시점과 색감, 크기, 형태에 따라 벽면에 커다란 풍경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조합은 반복됐다. 그림수집에 시간차가 있기 때문이다. 당근마켓에 열 대여섯의 키워드를 걸어 놓고 그림이 나오면 내 동선 안에서 갈 수 있는 곳은 다 다녔다. 약속을 잡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림을 받아 실어오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새로운 그림이 생기면 다시 떼었다 붙였다를 반복한다. 긴 호흡의 평면 작업이 익숙지 않았지만 벽면에 하나 둘 붙인 그림은 어느덧 가로길이 8m를 넘어갔다. 마치 그림 자신들의 의지가 있는 양 자연스럽게 증식했다.(통계학적 풍경화)

    작업을 해오며 재미있는 점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림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주제와 구성, 이외에도 액자의 형태나 재료, 내부 목재의 구조와, 한지의 종류, 심지어 안쪽에 덧대어져있는 신문의 종류 같이 많은 데이터가 의도치 않게 축적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일련의 과정 속에서 생각해 보았다. 이 데이터들은 특정한 몇몇 결과를 가리키고 있을 수도 있다고. 그리고 작업들은 조형과는 별개로 사라지는 시대의 기억을 통계적으로 보여주지 않을까? 라고. 그제야 작은 안도감이 들었다. ■이창진 2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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