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마치 그리폰처럼 -- 독수리와 사자와 기타 동물이 결합된 신화 속 상상동물 -- 사람과 새가 반인반수의 형상으로 나타난 작품에도 그 새는 셔틀콕의 깃털이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져서 그 깃털로부터 하늘을 나는 조류의 속도감을 암시하고 그 속도감의 현기증으로부터 인간이 다시 태어난다고 할까. 셔틀콕으로 공업화되고 사람에 의해 인문화되기 이전의 생명적 상태, 깃털 하나가 문득 가리켜 보이는 생명의 원류적 흐름을 만화적 자유분방함으로 헤쳐모이게 한다고 할까. 생명의 다른 종들끼리 교합하고 융합하기 힘들다는 생물학의 율법은 마치 배드민턴 규칙처럼 김윤호 작가에게는 그냥 뛰어넘어야 하는, 동시에 극도로 고뇌해야 하는 결계 같은 것이다. 여기에는 만화적 상상력의 소매를 자꾸 잡아끄는 사회적인 것, 오피스 정치에서 발생하는 인간적인 것이 있는 것이다.
김윤호 작가의 네트 작품은 구멍이 크게 넓혀져 있다. 마치 셔틀콕이 그 네트를 뚫고 지나간 것처럼 그리고 언제나 배드민턴 동호회 활동을 하는 구성원들이 오랫동안 상대해온 네트의 현상학처럼. 그러나 그 크게 넓혀진 구멍은 네트 위쪽으로 넘어가야 할 셔틀콕이 네트 쪽을 정면으로 부딪혀간 흔적이자 네트로 은유되는 어떤 인간사회의 상징적 율법, 사회적 관계의 직물적인 율법에 저항한 과정의 기록이다. 김윤호 작가는 배드민턴을 배우는 과정이 순수했던 만큼 그 배드민턴을 즐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 작은 불화와 사회관습의 개입 같은 것들에 눈뜬다. 왜 이 스포츠는 역시나 사회적인 텃세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할까. 어떤 올바른 자세와 방법론이라는 도그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타인에게 강요할까. 네트는 바로 이러한 작가의 질문들에 응하는 직물적 관계의 억압과 그 억압에 어떻게 탈주하는 구멍을 뚫을 수 있을까를 깊이 숙고한 결과물이다.
김윤호 작가는 그 작가 세대가 성장해온 시대의 문화적 코드로서 만화라는 매체를 중시하고 그 팝컬처로서의 정서나 문법에 익숙하다. 무엇보다 J-Pop의 만화, 가령 <핑퐁> <오버로드> <헬퍼> 같은 분방한 오타쿠적 감성은 김윤호 작가가 여타의 작가들이 서구의 철학적 베이스로부터 어떤 부족과 갈증을 보충하려는 지향성을 보여주는 것과 대조적이고 독보적인 부분이다. 물론 김윤호 작가는 필자에게 <암스>라든가 <흙꼭두장군> 등을 추천하면서 "<무적 파워레인저>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우리 세대의 유년기에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문화적 자양분은 만화로부터 흡수할 수밖에 없었다" 라고 세대 전체를 겸손하게 아우르고 있다. 그러나 김윤호 작가의 만화적 상상력은 인간 몸체와 다른 몸체 사이 변신의 자유로움, 공간적 변환의 자유로움, 관점이동의 자유로움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