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구획되거나 구조 지어진 것에 대한 갈증과 불만, 싫증을 쉽게 느끼는 듯하다. 하지만, 그 구조가 필수적이라면 그것을 가지고 놀아야 한다. 마치 정확한 선으로 구획된 배드민턴코트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처럼. 이러한 고민은 평소 쓰고 있는 언어에도 해당이 된다. 범위는 지니고 있으나, 소통에 있어서는 한정적, 제한적 자세를 취해야만 하는 언어. 마치 그 구조에 잘 맞춰야만 사회화가 잘 된 거 마냥, 잘 적응된 것 마냥 보여 지는 모습들. 그러한 건조된 상태에 생기를 불어넣어보고자 하였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만화에 의성어, 의태어의 상태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의성어와 의태어는 만화에서의 칸이나 말풍선과는 별개로 자유롭게 공간을 유영하고 있었다.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을 차용한 작업을 만들어보고자 하였다.
현재 연재 중인 주호민 작가의 ‘빙탕후루’에 나오는 의성어, 의태어를 모조리 적어서 수집,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최신화의 의성어, 의태어까지 적었을 때쯤 갑자기 ‘웅’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웅웅거린다’ 이런 말에서 등장하는 ‘웅’ 말이다. 그것은 빙탕후루에서는 없던 말인데, 그냥 웅이라는 글자로 작업을 하고 싶어졌다. 사실 만화캐릭터 짱구처럼 춤을 추는 글자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때때로 떠올리기도 하였는데, 그것의 연상 작용으로 팔이 달린 사람 같은 모양의 ‘웅’이 떠오른 걸지도 모르겠다.
작업을 제작해나가면서 나는 커다란 웅을 또 만들고 있었는데, 결국 또 글자에 갇힌 채로 유영하는 소극적인 웅을 표현하고 말았다. 언어의 압박을 못 이겨낸 것인가. 총 3개의 ‘웅이’를 제작하였는데, 3번째 ‘웅이’에 이를수록 전체 크기는 줄어들면서, 표현은 과감해졌다. 하지만, 끝내 완전한 파괴를 이루어내진 못하였다. 인간의 한계인가. 나의 한계인가. 그 구조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