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정용운씨가 창과 농악 북을 선생을 한 분이고 증조할아버지까지 북을 쳤다는 얘기를 듣고 자람으로서 4대 북은 틀림 없다. 경주가 고향인 그는 어린시절 경주 일판에서 농악판을 따라다니며 장난삼아 북가락을 두드렸다.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한 것은 해방돼서였고 스승은 아버지 정용운씨였다. 그후로는 <4대째 치는 북이라면, 아무도 내 앞에서 입을 열지 못했다>는 재주로 농악판의 주인이 됐고, 행세할 만한 북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의 북춤은 북장단에 발림이나 춤사위가 넉넉하게 어울린다. 잽싸게 맴돌면서 두드리는 북장단이나, 발뒤꿈치를 들썩대고 얼러가며 두드리는 장단, 한발 내딛고 북을 어깨위로 휙 돌려제치고 얼르는 사위, 발로 북을 받쳐들면서 앙금질로 뱅뱅 도는 장난스런 사위 등이 모두 장단과 춤사위의 단단한 엮음새를 보여준다. 33세까지 고향인 경주에서 농악장단을 쳤고, 그 후에 대구에서 살다가 부산에 이사왔다.
아미농악에서 큰북을 맡아 큰 놀이판의 주역으로 춤추며 두드리고, 농악장단을 배우러 오는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는 일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