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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만

문화예술인 전통예술인 전통예술 수영야류

NO.AGD2556최종업데이트:2017.07.17

자료등록 : (재)부산문화재단 본 내용은 등록자에 의해 작성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프로필

윤수만

  • 분류문화예술인
  • 이름윤수만 / 尹守萬
  • 생년월일 1916년 02월 04일
  • 출생지 부산시 수영구 광안동

인물소개

  • ○ 윤수만(尹守萬)[1916~2008]은 1916년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동에서 출생하여 수영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0년 농업기능원양성소를 수료하고, 1931년부터는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한때 건재업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1960년대 말에는 부산수영구 지역에 전승되어 오던 「수영 야류」를 몇몇 사람들이 모여 복원하고자 논의를 시작할 때 윤수만도 이에 가세하여 「수영 야류」에서 악사[꽹과리] 역할을 맡았다. 이는 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의 결성으로 이어졌고, 1986년에는 수영 야류보존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여러 대학에 탈춤 강사로 초빙되어 대학가를 누볐고, 한국 민속 예술 축제에도 정기적으로 참가하여 「수영 야류」를 공연하였다. 또 전국 각지에서 요구하는 초청 공연에 응하여 전국을 순회하였으며, 매년 수영 민속 예술관에서 정기 공연을 실시하여 후진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2005년 4월 명예 보유자로 은퇴하여 후진들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윤수만이 전국을 순회하면서 공연하였던 곳을 기록으로 살펴보면, 서울의 한옥 마을과 예술의 전당, 인천의 수봉 민속 놀이마당, 울산의 문화 회관[울산 연극제 초청 공연]과 태화강변, 안동의 국제 탈춤 페스티벌, 양주의 별산대 놀이마당, 합천의 밤마리 오광대 축제장, 청주의 공예 비엔날레, 대구의 두류 공원 월드컵 축하 공연, 강릉의 단오제, 제주의 탐라 문화 축제 공연, 예천 통명 농요 초청 공연 등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공연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부산에서는 수영 사적 공원 내에 있는 수영 민속 예술관을 중심으로 용두산 공원 토요 전통민속 놀이마당을 비롯하여 시내 곳곳에서 공연하였다.

    악사로서 윤수만의 예술 세계는 수영에서 농사를 지으며 흙과 함께 살아온 이력에 걸맞게 윤수만의 꽹과리 소리도 흙의 향기를 지녀 자연적인 정취가 풍겨난다는 평가를 받았다. 즉 투박하고 절제된 꽹과리 소리는 장식음과 분박이 많은 호남이나 중부의 꽹과리 소리와는 다른 영남 특유의 소박한 매력을 지녔다. 2008년 사망하였다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부산의 인간문화재(人間文化財) 「시리즈」 의 마지막이 될 수 영야유(무형문화재 18호) 악사(꽹쇠) 윤수만(尹守萬)씨. 꽹쇠는 꽹과리(꽹매기라고 함)를 치는 사람을 말한다. 꽹과리는 징의 축소판이다. 농악에선 매장단 첫 박에 징을 치고 징이 남긴 여운을 따라 꽹과리가 잔가락을 잡는다. 야유나 농악의 기본 반주는 징과 꽹과리의 「앙상블」이다. 윤(尹)씨가 야유에 가담하게 된 동기는 색다르다. 20세에 농촌지도원 양성소에서 일할 때라 한다. 도박과 나태를 없애기 위해 농민들에게 건전한 오락을 가르쳐야겠는데···. 고심 끝에 역시 농악과 들놀음 이상 가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가르치면서 자연히 들놀음의 흥취에 젖게 됐다. 윤(尹)씨는 해방직후부터 줄곧 꽹과리만 두들겨온 분이다. 다른 연희자들이 여러 역(役)을 전전한 것과는 틀린다. 『술 마시고 가락잡다 연희자들한테 뭇매 맞을 뻔 한 적도 많았다』 고 실토. 수영야유 가락의 특징은 『느 리다는 것이다. 너무 느려 힘이 빠질지경이다. 후반에 가면 노인들의 기력도 생각해서 반주를 해야한다』. 꽹과리는 우리나라 악기 분류표에 따르면 타악기에 속하고 「멜러디」 를 낼 수 없다해서 무율악기(無律 樂器)에 포함된다. 야유에서 꽹쇠는 두 사람. 선임꽹쇠인 상쇠는 땡땡한 음색을 내고 부쇠는 부드러운 음색을 낸다. 『꽹과리가 짧고 자극적인 소리만 내는 것 같지만 실은 음의 폭이 여간 넓은게 아니다』 - 꽹과리를 두드리는 빤질빤질 윤이 나는 홍사(紅絲)채를 만지작거리며 하는 말이었다.

    <출처-국제신문 1972년 02월 07일 05면>

    ○ 캥부라캥캥 응박캥캥 캐갱캥캥 응박캥캥 캥캥캥 캥캥캥 응박캥캥 캥부라 응부라캥 응박캥캥 독특한 리듬에 맞춰 덧백이춤을 추는 수양반의 점잖은 풍도가 있는 양반춤을 비롯, 차양반의 동작이 느린 노인춤, 셋째와 넷째 양반의 젊은이가 추는 청년춤, 종가도령의 애들 특유의 까부는 춤인 동자 춤, 마편(馬鞭)을 잡고 두다리를 껑충껑충뛰며 냅다 꽂는식의 활발한 도약무를 추는 말뚝이(莫得이) 등 이 수괭수의 여리고 강한 굿거리장단에 맞춰 멋지게 한판 어우러진다. 수괭수의 왼손에 잡힌 괭쇠가 아득한 끝에서 메아리쳐 오는 사자후(獅子吼)처럼 사그라들자 신명이 지펴있던 여섯 사람들은 그제사 눈을 지그시 감으며 각자 마지막 발놀음을 거둔다. 한마당 가득히 열기를 뿜던 들놀이의 흥취는 이마에서 흐르는 땀으로 승화돼 사라진다. 부산 남(南)구 수영(水營)동 수영공원안에 자리잡은 수영고적민속(水營古蹟民俗)보존회 앞마당에서는 매월 세차례(10·20·30일) 수영(水營)들놀음(야류) 전 과장(科場)에 걸친 전수교육이 치러진다. 이 기능전수 회에는 40여년간 들놀음을 익힌 쓸쇠(상쇠) 윤수만(尹守萬)옹(66)이 반드시 참석해서 놀이의 전과정을 리드하는 연출자역할을 맡는다. 수괭수가 쓰는 흰고깔에 적삼과 바지를 입은 윤옹이 괭쇠를 들고 『하나 둘 서이 너이, 둘둘 서이 너이-』 하고 외치며 다리 머리 어깨로써 느림세가 주를 이루는 덧백이 춤사위를 펼치면 춤판은 신나게 너덜어 지게 마련. 들놀음에서는 보통 4~5종류의 12개 악기가 동원되지만 전수 때에는 약해서 총 지휘를 맡는 수괭쇠 윤옹의 꽹과리만 선을 보인다.

    『나이가 들어서야 박자의 신묘(神妙)를 알게 됐지요. 그러나 이젠 나이인지 다리가 휘청거려 역시 예(藝)에는 몸과 정신이 함께 해야 한다는걸 절감합니더. 간혹 신명이 나서 놀 때는 그같은 육신의 어려움이 사라질 때도 있긴 있긴 있심더.』 영과 육의 거리감을 평소에 느끼긴 하지만 신이 지펴 한판 신나게 두드리면서 어우러지다 보면 다리에 새힘이 솟아난다는 얘기이다.

    수영야류(水營野遊)는 「밤에 하는 놀음(夜遊)」·「양반을 녹이는(冶)」·양반을 야유하는(揶)놀음」등으로 불리는 민속가면극. 약2백 여 년전 유랑연예패에 의해 영향을 받아 시작된 오광대놀음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전해진다. 전·후편으로 양분되는 이 놀음은 전편의 길놀이(行列)와 대중의 덧백이춤 및 잡희, 후편의 탈놀음 4마 당으로 나눠지는데 후편의 가면무 탈춤이 타지역의 놀이에 비해 독특한 데가 있다. 다른 들놀음이 거의 춤위주인데 비해 수영야류는 재담이 주가 되기 때문. 이조(李朝)말까지 성연(盛演)되었으나 1930년대에 단절된 것을 1946년 수양반역의 고 최한복(崔漢福)씨 등의 구술과 증언에 의해 정비, 재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1년 2월 26일에 중요무형문화재 제43 호로 지정받음과 동시에 인간문화재들도 탄생했다. 정시덕(鄭時德)(수양반·74년졸)·조재준(趙在俊)(말뚝이·74년졸)·태명준(太命俊)(담보·78년졸)·김귀수(金貴秀)(할미·77년졸)·조덕주(趙德周)(가면제작·와 병중)·김달봉(金達鳳)(영노)·조복준(趙福俊)(악사·장구)·노영규(盧泳奎)(양반·78년졸)·김용태(金容泰) (말뚝이·와병) 제씨와 윤수만(尹守萬)옹 등 10명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 5명은 이미 고인이 됐고 2명은 병으로 거동이 어렵다. 겨우 남아 후진에게 기예를 전수하는 사람은 윤옹과 김달봉(金達鳳)·조복준(趙福俊)옹 세 사람뿐.

    『어릴 때부터 심바람하며 어깨너머로 배우다가 최한복(崔漢福)·조두영(趙斗營) 선배님이 「너는 배워야겠다. 배워라」고 하여서 배웠지요.』 지금은 열흘이나 보름만에도 배울 수 있지만 그때는 그저 띄엄띄엄 부락제가 있을 때나 배웠기에 무척 더디 배웠다고 한다. 검게 탄 얼굴에 소박한 웃음이 담긴 표정은 마치 우리네 옛것이 모두 수놓아진 듯한 이조백자같은 이미지를 풍긴다. 『악사로 참여하다 보니 자연히 제일 많이 알고 그로 인해 연출을 맡고 있심더만 제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아요.』 지금까지 그에게서 이수 받은 사람은 모두 12명. 그중 대타로 괭쇠를 맡는 도태일(都泰一)(59)· 김태춘(金泰春)씨(54) 등은 자신을 능가하는 실력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돌아간 선배 유언이 전국민속제(경연대회)에서 꼭 1등하라는 것이었어요. 이젠 기력도 달리고 하니, 1 등 한번 해서 후배들에게 사기를 불어넣어줘야 할텐데….』 마치 「캐갱캥캥 응박캥캥」리듬을 타듯 고저 장단으로 마지막 뱉는 말이 유독 귓전에 남는 것은 아마 영혼에까지 저며든 그의 예술정신 때문이리라. <김시한(金始漢) 기자>

    <출처-부산일보 1982년 08월 28일 7면>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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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사항 - 학습기간, 학교, 전공, 학위, 비고을(를) 상세히 나타낸 표입니다.
학습기간 학교 전공 학위 비고
수영공립보통학교
~ 1930 농업기능원양성소

주요활동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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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활동사항 - 년도, 활동내역, 비고을(를) 상세히 나타낸 표입니다.
년도 활동내역 비고
2008 별세  
2005 04.20 중요무형문화재 제 43호 수영야류 악사 상쇠 명예보유자  
1986 11.01 수영야류 보존회 회장 역임  
1980 년대-1990년대. 각 대학 탈춤 초대 강사
06.17 제9회 수영민속보존회 정기발표회 수영야류 공연
 
1979 10.25-27 제2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수영야류 출연(대구실내체육관)  
1971 02.24 중요무형문화재 제 43호 수영야류 악사 상쇠 예능(초대보유자)  
1970 수영야류민속예술보존회 창립 회원  
1960 년대 말. 수영야류 복원 노력  
1931 -. 농업 종사 및 건재업 경영  

해당장르

  • 장르 문화예술인 > 전통예술인 > 전통예술 > 수영야류
  • 역할 무형문화재
  • 키워드 #전통예술인#무형문화재#수영야류#윤수만

주요작품

교육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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