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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덕

문화예술인 전통예술인 전통예술 수영야류

NO.AGD2557최종업데이트:2017.07.17

자료등록 : (재)부산문화재단 본 내용은 등록자에 의해 작성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프로필

정시덕

  • 분류문화예술인
  • 이름정시덕 / 鄭時德
  • 생년월일 1894년 03월 17일
  • 사사 (師事) 조두영

인물소개

  • ○ 정시덕(鄭時德)은 1894년 3월 17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동명학교에 입학하여 수료하였다. 정시덕은 자신보다 두 살 위인 조두영(趙斗榮)[1892~1964]에게서 「수영 야류」[「수영 들놀음」]를 배웠는데, 조두영은 훗날 「수영 야류」 말뚝이춤의 명인이 된 인물이다. 이후 조두영, 최한복(崔漢福)[1885~1968] 등과 더불어 60여 년 동안 「수영 야류」 공연에 참가하여 그 전승에 앞장섰다.

    들놀음이라 불리는 야류(野遊)는 낙동강 서쪽의 「가락 오광대」와 더불어 낙동강 남부 일대의 민속 가면극으로, 「수영 야류」는 「동래 야류」와 더불어 부산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민속극이었다. 하지만 개화기 이후 밀어닥친 외래 사조와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으로 1935년 이후 「수영 야류」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고, 「수영 야류」의 재현은 8·15 광복 이후에야 가능하게 되었다. 이때 「수영 야류」의 재현과 복원을 주도한 이들이 조두영을 비롯하여 최한복, 태명준(太命俊)[1906~1979] 등 「수영 야류」의 명인들이었고, 정시덕 역시 여기에 참여하였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수영 야류」의 복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정시덕도 이에 참여하여 「수영 야류」의 부흥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결과 1963년 4개 과장으로 구성된 「수영 야류」 전 과장의 대사·탈·연기 등이 완성되었고, 1972년 「수영 야류」는 중요 무형 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되었다. 이에 정시덕은 「수영 야류」의 놀이꾼 가운데 재담과 춤의 기량이 가장 뛰어난 이가 맡는 양반 역의 기·예능 보유자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 이래 「수영 야류」의 맥을 이어 왔던 조두영과 최한복이 사망한 당시에 정시덕은 최고령의 나이로 「수영 야류」의 기·예능 보유자가 된 것이다.

    이 외에 정시덕은 후진을 양성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였다. 훗날 「수영 야류」의 기·예능 보유자가 된 김귀수(金貴秀)[1909~1977] 같은 이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1974년 11월 17일 정시덕은 향년 80세로 사망하였다.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인간문화재(人間文化財) 18호. 수영야유 양반 역(役)의 정시덕(鄭時德)시. 80세. 깐깐한 얼굴에 허리가 뻣뻣한 노인. 마주보기가 두려울 만큼 눈빛이 힘있다. 주량이 말술이란 이야기다. 이분은 수영야유 왕년의 명 연희자 조(趙)두형·최(崔)한복씨와 같이 놀았던 분이다. 다른 수영야유 연희자와는 선·후배 관계가 있는 셈. 수영야유의 시초에 대해서 들어보니 『수영야유의 원형은 역시 합천군 덕곡(德谷)면의 초계(草溪) 밤마리였던 모양이오. 전해오는 이야기론 2백여 년 전 좌수 영수사(左水營水使)가 밤마리에서 오광대패들을 붙들어와서 놀게 한 것이 시작이라더군요.』 정(鄭)씨는 수영에서 동래와 부산진으로 들놀음이 퍼져갔다고 주장한다. 야유(野遊)라는 명칭의 풀이도 재미있다. 『야유(夜遊)·야유(冶遊)·야유(野遊) 등으로 한자표기를 한다. 죽은 최(崔)한복씨는 야유(冶遊)라 쓰기를 즐겼다. 세상에서 경도(硬度)를 자랑하는 강철도 일단 야장(冶場)에 넣기만 하면 녹아서 원하는 용기(用器)대로 만들어진다. 수영야유도 권위있는 양반층을 본야장(本冶場)으로 도입, 평화하고 인애한 인간으로 개조 하자는 것이 목적이지요. 정(鄭)씨는 양반춤으로 인간문화재로 지정됐지만 사자(獅子)춤에 자신 있다고 했다. 사자(獅子)과장은 부락 수호신을 주인공으로 한 것. 야유에 끼친 부락제의 영향을 반영하는 과장. 정(鄭)씨는 수영 동남쪽에 있는 백산(白山)과 관련시켜 이렇게 설명한다. 백산은 사자가 웅크리고 있는 모양이다. 당시 동남해안에 자주 출몰하던 왜구를 범으로 가정, 수영의 수호신인 백산(白山)사자를 괴롭히면 사자에게 잡아먹힌다는 것을 상징한 것이 사자과장이란다. 정(鄭)씨는 농악에도 일가견을 갖고 있어 발굴되고 있는 수영농청농악의 고증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러나 늦게 본 아들 하나만 데리고 여생을 쓸쓸히 보내고 있다. 『취해서 춤, 깨어서 춤, 춤과 술로 살아 온 겁니다.』

    <출처-국제신문 1972년 02월 05일 5면>

    ○ 수영야류(水營野遊)의 기능보유자(인간문화재)이며 좌수영어방(左水營漁坊)놀이의 연희자(演戱者)인 정시덕(鄭時德)옹(79·동래구 수영동 44). 『우리고장의 전통민속이 인정을 받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면서 수영어방(水營漁坊)놀이가 이번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게 된 기쁨에 얼굴을 환하게 편다. 정옹은 이번에 전국에 첫 선을 보인 어방(漁坊)놀이의 주역(선주)으로 출전하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막상 신병으로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불편한 몸을 이끌고 대회장까지나가 개인공로상을 탔다. 어방(漁坊)놀이의 주축을 이루는 어요(漁謠)는 수영고적민속(水營古蹟民俗)보존회(이사장 정대윤(鄭大 允))가 발굴, 채록한 것이지만 그 고증은 정옹에 의해 이뤄졌다.

    『수영지방은 옛날에는 어촌이었어요. 염전으로도 유명했지만 해륙물산이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그때 어부들이 일을 하면서 어요(漁謠)를 부르고 풍어를 비는 칭칭놀이를 했습니다.』 정옹은 어방(漁坊)놀이의 유래를 이렇게 말한다. 어방(漁坊)놀이 중에서도 출어(出漁)하기전의 줄다리기는 볼만한 것. 줄을 꼬는 줄틀에 8명씩의 장정들이 매달려 줄을 꼬면서 내왕소리를 우렁차게 호창(呼唱)한다. 이 어요(漁謠)는 배를 모으는 과정과 바다에의 진수와 그것을 축복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것인데 민속(民俗)경연대회에서 재현이 되었다. 당시 어요(漁謠)를 부르던 사람들이 아직 생존한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지금 그 전수(傳授)를 해 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정옹은 수영야류극(水營野遊劇)의 유일한 산 증인이기도 하다. 수영야류(水營野遊)는 몇해 전까지만 해도 최한복(崔漢福)·조두영(趙斗榮)그리고 정옹의 세 사람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어왔으나 지금은 모두 작고하고 정옹만이 생존하여 후진들에게 전수(傳授)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수영(水營)야류극에서 정옹이 맡은 역은 양반춤과 사자놀음. 지금은 기운이 쇠진하여 연희(演戱)는 하지 않고 지도에만 전념하고 있다는 것. 『탈놀음을 한지가 벌써 한 50년이 되었어요. 시대의 변천에 따라 해방전후에 한두번 중단되기도 했지만 2백여 년 전부터 전해오는 우리고장 고유의 민속을 원형대로 남겨놓아야 합니다….』 정옹은 『요사이 만들어내는 가면들이 원형과 다른 것들이 많지만 수영(水營)야류의 사자탈 같은 것은 비교적 원형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한다. 후계자들에 대한 전수(傳授)에도 어려운 문제들이 있단다. 이제 얼마 안 있어 수영(水營)에 전수관(傳 授館)이 마련될 것이라고는 하나 그동안 전수관이 없어 남의 집 창고나 마당을 전전하면서 전수를 해야 했고 대부분의 젊은 세대는 무형(無形)문화재에 대해 별로 매력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실정이라고 한다. 대학(부산대(釜山大))이나 고교(성모여고)에 전수생들이 있어 한달에 한두 번씩 와서 보고는 가지만 그것으로는 전수가 될 수 없고 아무래도 원주민들이 이어받아야 한다. 주민들이 옛 문화재에 어느 정도 매력을 느낀 다해도 생활이 되지 않아 결국 외면하게 되는 어려움을 정옹은 아타까워한다.

    <출처-부산일보 1973년 10월 31일 05면>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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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 활동내역 비고
1974 별세  
1973 제1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개인공로상 충청북도지사상 수상  
1970 02.26 중요무형문화재 제 43호 수영야류 양반 예능보유자 인정  
1960 년대. 수영야류 복원에 참여  

해당장르

  • 장르 문화예술인 > 전통예술인 > 전통예술 > 수영야류
  • 역할 무형문화재
  • 키워드 #전통예술인#무형문화재#수영야류#정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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