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은 영국의 20세기 마지막 천재라고 불리는 사라케인의 잔혹미학극 <정화된 자들>이다. 성전환, 강간, 폭력으로 점철된 뉴 브루탈리티를 표방한다. 오빠를 잃은 고통에 자신의 성을 바꿔 죽은 그가 되기로 결심한 젊은 여인의 사랑이야기다. 끔찍하지만 아름답다. 하지만 믿어야 한다. 연극의 비극성이 사라진 이 즈음에 적당히 재밋거리만 주는 공연들과 차별성을 둔다는 것과 끝없는 시련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격렬하고 야만적인 언어로 분노하며, 노골적 성의 대한 표현들로 끊임없이 시련을 실험한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처절한 상황 속으로 극단적으로 몰고가는 한편, 전혀 새로운 양식을 실험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둘 것이다. 더불어 나약하기만 한 인간들과 사랑이 타버린 현재를 아프게 느끼며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지금 현재는 부끄럽다. 하지만 계속 우리는 자신을 바라보며 물어야 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하고. 작품의 무대처럼 지금 현실은 끔찍한'병원'이다. 더 나아가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감옥일 수도, 집단 살인이 가능한 가스실일 수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곳일 수도 있다.
끔찍하지만 똑바로 현실을 볼 수 있는 용기가 예술의 힘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진부한 잔혹함으로 점철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실험하고, 각자의 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세계의 모습을 꿈꾸며 말이다. 사라케인은 모든것이 허락되는 세계에 대해 말한다. 우리 젊은 예술가들도 그러한 세계를 꿈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