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80세를 훌쩍 넘긴 조숙자(예명 조예경.1929~ )의 삶은 줄곧 이 고장 부산의 발레 무용 발전에 매진한 춤사랑의 한길로 요약된다. 이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건만, 아직도 간혹 공연장을 찾는 그를 마주치면, 여전히 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간직한 소녀 같은 맑은 모습을 하고 있다.
부산의 대표적인 발레 무용가인 조숙자는 어린 시절을 만주에서 보내며, 그곳에서 초등학교와 고등여학교을 다녔다. 어릴 적부터 운동신경이 뛰어났던 조숙자가 춤과 첫 인연을 맺는 것은 중국 만주 영구지방의 초등학교 시절 때였다. 그는 이 시절 일본인 선생 다카시마로부터 처음 무용을 접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무용경연대회에 참가하며 장래에 무용가가 되는 꿈을 꾼다.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만주지방으로 옮긴 뒤,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학창시절을 보냈던 그가, 어릴 적부터 육상 배구 등 예체능방면에 뛰어난 소질을 보이며 무용가가 될 꿈을 꾸었던 것이다.
그가 춤의 길로 접어든 것은 일본인 학생과의 차별대우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됐다. 배구를 잘했지만 주전의 자리는 항상 일본학생의 차지였다. 뜀박질을 잘해도 출전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일본인 선생의 농간으로 차별의식과 갈등이 조장되던 체육보다는 기량에 따라 실력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 주연을 맡을 수 있었던 무용분야에 눈을 돌린 것은 피할 수 없었던 선택이었다"는 게 그의 회고다. 때마침 영구지방의 공회당에서 열렸던 최승희와 조택원의 공연은 그가 평생춤꾼의 길로 접어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내가 춤을 쫓아다닌 것이 아니라 춤이 끊임없이 나를 끌어 당겼습니다."
조숙자는 광복 후 1946년 고향 부산으로 되돌아와 정착한다. 그리고 충무동에서 ‘대한음악무용연구소’를 운영하던 박성옥을 찾아가 2~3년 정도 한국춤을 배우며 본격적인 춤의 길로 들어선다. 박성옥은 최승희무용단의 악사장으로 활동하다 6.25전쟁이 나자 부산으로 피난을 와 무용학원을 열었다. 조숙자는 이 연구소에서 한국춤을 배움으로써 처음으로 체계적인 춤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한국춤꾼의 길을 포기한다. 창작보다는 전통레퍼토리의 재현에 그치던 당시의 한국춤은 자기감정을 자유로운 몸짓에 담아내는 춤을 추고자 했던 조숙자의 생각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그가 "운명이었다"고 말하는 발레와의 만남이 시작된다. 조숙자는 서울 낙원동에 무용학원을 연 임성남을 찾아가 발레를 배운다. 일본에서 선진무용테크닉을 공부하고 돌아온 임성남이 연구소를 열고 체계적으로 발레를 가르치기 시작하던 즈음이었다. 그 당시 지방인 부산에서 서울로 수업을 받으러 다닌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조숙자는 54년부터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선진발레 테크닉을 익히는데 온 힘을 쏟았다. 그리고 3년 정도의 서울에서의 발레 수업을 마치고 부산으로 와 ‘부산예술무용학원’을 열었다. 이때 남정호(현 한예종 무용원 교수), 김광순 등이 이 학원을 다니며 조숙자에게서 춤을 배웠다.
후진양성과 개인공연을 통해 본격적으로 부산무용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1958년 6월에 조숙자는 서면에 부산무용예술학원을 개설하고 자신이 어렵게 터득했던 발레테크닉과 기법을 후학들에게 전수하면서 부산에 발레가 뿌리내리는데 매진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첫 개인공연을 가진다. 대영극장과 북성극장에서 펼쳐진 조예경 1회무용발표회에서 작품 <빠드솔>과 <섬광곡>이 무대에 올려졌다. 이 공연은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마련된 발레분야 개인공연으로서 부산무용사에 한 획을 긋는 공연이다. 그후 조숙자는 1979년까지 모두 7회의 창작발레공연을 가졌다. 이는 황무지나 다름없던 부산무용계에서 선구적인 활동으로 기억되고 있다. ‘조숙자발레단’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하던 무용단은 1981년에 ‘부산발레단’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이때부터는 그의 제자뿐만 아니라 실력 있는 발레 무용수들을 모두 영입하며 부산 발레 예술의 활성화를 꾀했다.
조숙자는 한성여자실업초급대학(현 경성대 전신) 체육무용과에서 처음으로 시간강사를 하며 춤 교육자의 길로 들어선다. 1969년 전임이 되면서 대학에서도 본격적으로 발레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1983년 부산대학교에 무용과가 개설되었고, 그는 1985년 부산대학교로 자리를 옮긴다.
강사를 시작으로 부산대 무용학과 교수로 정년퇴임하기까지 무용교육의 최전선에서 후진양성에 진력하던 그는 요즘에도 수영구 남천동의 부산발레하우스에서 발레 꿈나무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부산발레하우스는 지난 1994년 정년퇴임한 조숙자가 발레인 육성을 목표로 개설했다. 그곳에서 어린 새싹들의 몸짓을 손수 돌보며 항상 춤의 곁에 머물러있는 그는, "제자들 앞에 서면 항상 그들이 두려웠다"고 말하며 "선진무용의 흐름과 경향에 밝고 항상 연구하는 자세를 가져야만 제자들의 존경을 받는 스승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