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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 떨어질 때

문화예술작품 기타 기타

NO.APD7090최종업데이트:2015.05.12

자료등록 : (재)부산문화재단 본 내용은 등록자에 의해 작성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프로필

  • 제·작자 정형남 [소설]
  • 작품제목 감꽃 떨어질 때
  • 작품장르 문화예술작품 > 기타 > 기타
  • 발표일 20140301-1231
  • 발표지역 연제구

작품설명

  • 일흔 셋 해 동안 감꽃이 떨어질 때면 나는 조촐하고 정갈하게 차려 올리는 제사상 위에 감꽃목걸이를 올려놓으며 아버지를 기다렸다.
    아버지 조영은 어려서부터 한의원인 외할아버지로부터 의술을 어깨너머로 익혔고, 산야에서 자생하는 약초를 채취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그러나 운명은 조영을 엉뚱한 곳으로 내몬다. 오일장날 이웃집 삼수와 장을 보러 가던 중 고갯마루에서 일본군을 기습 공격한 의병들의 뒤를 따라 의병에 가담한다. 조영은 삼수를 비롯하여 부상당한 의병들을 치료하는데, 의병대장은 부상병들을 더 안전한 곳으로 보낸다. 그곳은 도원경을 연상케 하는 산골오지로, 일찍이 고려 후예들이 숨어 지내며 도자기를 빚는 가마터였다. 그곳에서 조영은 부상병들을 치료하는 한편 의병들이 사용할 무기를 담금질한다.
    그러나 일본군들의 집요한 토벌작전에 의해 의병대장이 장렬하게 최후를 맞고, 의병군은 와해된다. 조영 일행이 숨어 지내는 곳도 무사하지 못하였다. 근근이 숨어 지내던 부상병들은 기회를 틈타 각자 살길을 찾아 나선다. 조영과 삼수도 장터목 옹기전 주인장의 도움으로 낯선 곳에 집을 마련, 아내와 새롭게 삶을 꾸린다. 삼수는 도자기 공방을, 조영은 십리길 장터에서 약재상을 한다. 그간 조영의 아내 소도댁과 삼수네는 일본군에게 고문을 받으며 남편의 생사를 알길 없어 기다림으로 고통을 참아냈다.
    그 사이 해방의 기쁨을 맛보고 조영은 귀여운 딸을 얻는다. 하지만 가난한 대로 행복한 삶은 얼마가지 못한다. 남북이 분단되고 좌우대립이 첨예한 가운데 제주4.3사건이 일어난다. 진압군으로 명령을 받은 부대가 같은 동포를 적으로 내몰 수 없다면서 거기에 반기를 든 여순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여순사건은 삼일천하로 막을 내리고, 거기에 따른 보복행위가 뒤따른다. 조영과 삼수는 그로인하여 길을 달리한다. 삼수는 조영과 절친한 김순열 선생이 본의 아니게 삼수 일행을 숨겨주다 총상을 입자 김순열을 들처업고 산속으로 숨어든다. 그리고 조영을 찾아와 김순열의 병간호를 부탁한다. 의리와 인정에 끄달린 조영은 김순열을 치료하는데, 볼모의 신세가 되고, 본의 아니게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던 산사람이 되어 부상당한 사람들을 돌보게 된다.
    소도댁은 또다시 지서에 불려다니며 고통을 받는다. 그 같은 고통의 시련은 육이오전쟁으로 더욱 참담하게 주어지고, 조영의 소식은 알 길이 없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삼수는 전향을 하고, 김순열 선생도 사지에서 벗어나 살아 돌아온다. 조영은 김순열과 총알이 빗발치는 속에서 탈출을 함께 하는데, 두 사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 내딛은 곳이 한센환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음습한 곳이었다. 조영은 언제 총알받이가 될지 모르는 그곳에서도 그들을 간호해 주며 신뢰를 쌓는다. 그리고 차마 그들을 내버려 두고 떠날 수 없어 김순열더러 먼저 세상 밖으로 나가라고 한다. 김순열이 뒤늦게 찾아 갔을 때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영도 한센환자들도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소도댁은 일말의 희망을 안고 남편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 인내는 세월과 함께 무너져 내리고, 감꽃이 떨어질 때마다 남편의 기제사를 올린다. 남편이 마지막으로 떠날 때 감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바람에 떨어지던 날이었고, 딸아이에게 감꽃목걸이를 목에 걸어 주었다.
    나는 어머니의 체념과는 달리 아버지가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염원으로 감꽃이 떨어질 때면 감꽃목걸이를 만들어 아버지의 제사상 위에 올린다. 그 같은 세월이 덧없이 흐르고, 나는 결혼을 하여 유산을 거듭하고, 남편마저 잃는다. 시댁으로부터 내쫓김을 받다시피 다시금 친정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생활한다. 이웃과 친척들마저 왕래가 끊긴 적막하고 외로운 생활 속에서 어머니와의 생활은 나름대로 평화로움, 그것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또 한 번 잔인하게 가슴을 비질하였다. 감꽃이 떨어지는 날 먼산바라기로 남편을 그리던 어머니가 조용히 숨을 거둔 것이다. 정한으로 문드러진 죽음이었다. 나는 홀로 집을 지키며 감꽃이 떨어질 때마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감꽃목걸이를 올렸다.
    그날도 감꽃을 줍고 있는데, 난데없이 사진기자가 찾아와 하늘을 치받들고 있는 감나무와 나를 카메라에 담고 나서 무언의 말을 남기고 떠난다. 나는 뒤늦게 사진기자가 남기고 간 말을 곱씹으며 무심히 흘러 보낸 것을 후회한다. 사진기자는 홍시가 익을 무렵 사진을 보내왔다. 우람하게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감나무와 그 아래에서 감꽃을 줍고 있는 나의 모습이었다. 그 속에 감꽃목걸이를 목에 두르고 명상에 잠겨있는 노인의 흑백사진이 들어 있었다. 순간, 나는 넋을 잃는다.
    운명이랄 수 없는 시대적, 세계사적 전쟁이데올로기에 의한 희생양. 죄인 아닌 죄인으로 절망을 넘나든 그 한스러운 삶을 좌절과 회한으로 보낸 기다림은 한낱 환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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