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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부산민속(釜山民俗)의 상징, 인간문화재 박덕업 옹

문화예술작품 기타 기타

NO.APD7384최종업데이트:2015.11.26

자료등록 : (재)부산문화재단 본 내용은 등록자에 의해 작성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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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제목 사라진 부산민속(釜山民俗)의 상징, 인간문화재 박덕업 옹
  • 작품장르 문화예술작품 > 기타 > 기타
  • 발표일 1972. 12. 12
  • 발표매체 국제신문
  • 발표주체 1

작품설명

  • 박덕업 옹의 별세 당시 국제신문 기사이다.

    사라진 부산민속(釜山民俗)의 상징
    인간문화재(人間文化財) 박덕업(朴德業)옹
    동래야유(東萊野遊) 말뚝이 역(役) 60년
    말년(末年)생활은 “깨끗한 가난”
    유일한 과거(過去)연희자·발굴·재현의 증언자(證言者)

    「덕업(德業)할배」가 갔다. 7일 별세한 무형문화재 18호 동래야유(東萊野遊) 말뚝이 역의 박덕업(朴德業)옹은 민중의 슬픔과 기쁨을 60년 동안 탈춤으로 풀다간 분. 그는 끈질기게 이어져온 부산민속의 상징이었다.
    서울의 아들 집서 숨을 거둔 박(朴)옹은 과거 연희자 중 유일한 생존자. 65년 동래(東萊)들놀음이 발굴, 재현될 땐 그 산 증언자였다.
    그가 구술한 대사·연기·탈·춤사위를 바탕으로 이 민속가면극이 되살아 날 수 있었다. 별세 두달 앞인 지난 10월 대전(大田) 전국민속경연대회서 30분이나 뛰고 베기던 박(朴)옹의 끈기도 노환에 꺾이고 말았다.
    ◯··· 「덕업(德業)이 할배」로 애칭된 박(朴)옹의 일생은 동래(東萊)들놀음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1890년 동래(東萊) 복천(福泉)동서 났다. 14세부터 대보름달 아래서 펼쳐지는 탈놀이에 매혹돼 연희자들을 따라다녔다고 한다. 이때의 동무로 전국회의장 곽(郭)상훈씨가 있다. 박(朴)옹 다음으로 말뚝이춤 솜씨가 좋다는 곽(郭)상훈씨. 박(朴)옹이 정식으로 연희자패에 끼어든 것은 20세부터.
    그 뒤 60여년. 그는 인생의 75%를 말뚝이로 살다간 것이다. 글방졸업에 그친 덕업(德業)할배는 줄곧 쌀장사로 생계를 이어왔다. 말년엔 도배업. 출가한 딸다섯과 외아들을 둔 박(朴)옹부부의 말년 생활은 깨끗한 가난이었다고 동래야유(東萊野遊) 발굴자인 정(鄭)상박씨는 말한다.
    󰡔술도 못하신 소박·결백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춤에 대한 고집은 대단했고 그것이 그분의 매력이었지요.󰡕
    서울서 별세한 것은 그 곳에 있는 외아들 박(朴)영수씨 집에 다니러가서였다. 박(朴)옹은 노년에 딸·아들 집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받았지만 동래(東萊)를 떠날 순 없었던 모양. 동래(東萊)구 칠산(漆山)동에 단간방을 세 얻은 박(朴)옹 부부는 들놀음에 더욱 집착하며 살아갔다.
    󰡔아침엔 맨 먼저 회관에 나타나 청소하는 극성이었지요. 인간문화재 생활보조비를 떼어서 공연비에 보태기도 했습니다.󰡕 - 양(梁)세주씨(52·동래(東萊)들놀음 인간문화재)는 울먹였다.
    ◯··· 인간문화재로서 박(朴)옹은 독보적 존재였다. 그의 말뚝이 춤은 씩씩하면서도 세련된 모범적인 동래(東萊)덧베기 춤. 특히 베기는 동작(앞으로 쿵 한 발 내딛는 것)의 멋과 박력은 한국 제일의 솜씨로 평가됐다. 들놀음 중의 말뚝이는 양반에 대한 반골정신에 철두철미 한 하인. 󰡔오늘 날이 따따무리하니 온갖 짐승 다모였다. 골목에 돼지세끼 모인 듯 삼도 네거리에 히뜩 새 모인듯, 옹달샘에 실뱀 모인듯, 모도모도 모여 갖고···󰡕 이렇게 할 일 없는 양반을 비꼰다. 동래야유(東萊野遊)의 주제는 양반계급을 야유하는 내용. 이 가면극의 영웅이 말뚝이다. 덕업(德業)할배는 말뚝이처럼 우스개·재담을 썩 잘해 항상 주위를 웃기고 다녔다.
    안경낀, 여윈 복덩방 할아버지 모습의 박(朴)옹이었지만, 2kg의 말뚝이 탈을 쓰고 한 시간을 놀아도 땀한 방울 흘리지 않는 강체였다. 그러나 작년부터 󰡔한 마당만 놀아도 어지럽다󰡕는 탄식이 잦아졌단다.
    그러면서도 󰡔90까진 살겠지󰡕라고 낙관하면서 출연과 후진양성에 열을 올렸다는 주위의 이야기.
    ◯··· 11일 동래(東萊)구 수안(壽安)동서 가져진 장례행렬엔 박(朴)옹의 말뚝이 역(役) 후계자 박(朴)점실씨(60)가 말뚝이 춤을 추면서 선두에 나서 눈길을 모았다. 기능전수란 인간문화재의 꿈은 이뤄진 것이다. 지난 10월엔 부산시무형문화재 김(金)희영씨(동래학(東萊鶴)춤)가 계승자 없이 죽음을 맞았었다. 화려한 궁중무를 안추고, 대우 좋은 서울의 연희자가 아니었기에 이들은 가난 속에 쓸쓸히 죽어갔다. 󰡔시민과 당국은 우리지방의 민속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한(韓)원석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회장은 목이 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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