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시는 존재가 환하게 타오르는 생명적 불꽃을 염원하지만, 실존적 현실의 한계를 냉정히 느끼면서 이 둘 사이의 시적 화해를 모색한다. 속악하고 부정한 현실세계는 여느 시인들이 지금껏 다루어왔던 소재다. 김문환 또한 이들이 보여준 시적 출발과 넓은 의미에서 함께 하는 듯하지만, 그 양상은 독특하다. 그러니까 현실에 대한 부정의식이 비관적이고 비극적인 세계 인식으로 치닫는 게 아니라 시인만의 독지 獨知한 형이상학적 지평으로 넘어가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이 또한 바야흐로 그만의 시적 세계가 개시되는 증거로 보아도 될 것이다. 시적 세계관의 쟁취 과정에서 알맞게 익은 그의 내면의 흔적이 아닐까. 하지만 이는 상흔傷痕이기도 할 것이다. 상처로 곪은 자리에서 시간의 더께가 내려
앉은 징표라고해도 무방하다. ─ 정훈(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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