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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환

문화예술인 공연예술인 연극 연출

NO.AGD790최종업데이트:2013.10.29

자료등록 : (재)부산문화재단 본 내용은 등록자에 의해 작성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프로필

전승환

인물소개

  • 2013년 10월 인물스페셜

    리얼리즘 연극의 성주(城主) 전승환(극단 전위무대 대표)

    전승환은 일제의 수탈이 극에 달했던 1943년 6월에 태어났다. 본적은 부산시 중구 동광동 5가 19번지이나, 출생지는 만주 목단강 노묘다. 선친께서는 벌목업을 하셨다. 선친은 평양분이셨다. 해방이 되자 선친은 살기 좋은 원산으로 가서 군납일을 하셨다. 현재 가족은 정영희(부인)와 전시현(딸), 전지국(아들)을 두고 있다.

    6·25 당시 전승환의 어머니는 신학공부를 하고 있었다. 외조부 김수봉 목사는 독립투사로 대지주였고, 아버지는 만주에서의 벌목업으로 굉장한 부를 누렸다. 대지주에 아버지는 반공지하조직원이셨기에 북한에 살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형과 함께 반공투쟁을 위해 밤에 떠나셨고 어머니와 나머지 가족 5명은 동해안을 걸어서 원산에서 부산까지 걸어서 피난왔다. 많은 재산을 뒤로 하고 남쪽으로 걸어 올 때의 부모님 심정은 지금도 헤아릴 길이 없다고 한다.

    어렸을 때 정치 쪽에 관심이 있었고 청소년 시기에‘칸타빌레’라는 음악실을 알게 되었고 그 곳을 드나들면서 다소 불량한 친구들과 사귀기도 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연세가 들면서 가계가 급속도로 하향선을 긋기 시작했다. 형이 대학 1학년 때 사회사업을 다 접고 생활이 어려워지다 집을 전세를 놓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전승환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 그래서 정의를 위해 자주 나섰고 그 과정에 사람을 다치게도 해서 그 치료비 때문에 집에 전세를 놓았다고 한다.

    극단 전위무대가 1963년도에 창단되었고, 극단의 연습장소가 전승환의 집이었다. 그 때부터 연습하는 것을 쭉 보았다고 한다. 1965년에 입대, 1968년 제대를 하는 동안 형님인 전성환은 계속 연극을 했다. 극단 창단멤버도 단원도 아니였지만, 연습 장소에는 항상 같이 있었다고 한다.

    군 제대 후, 전승환은 처음 기획일을 했다. 1970년 초 글로리아라는 기획사를 만들었다. 글로리아는 나중에 합동기획이 되었다. 1970년대 부산에 RND라는 광고회사가 있었는데 전 부산예총회장이자 서울 문화예술회관관장도 지낸 예술인 설상영을 통해 그 회사에서 일을 했다. 그 회사에 배운 업무를 바탕으로 글로리아라는 광고기획사를 차렸고 전위무대가 겪었던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일조했다.

    1974년도에 전위무대가 <도적들의 무도회> 공연을 준비하던 중 이상복이갑자기 출연을 못하게 되어, 대타로 전승환이 투입되어 배우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연극활동을 했다. 전위무대에서 연출도 했고 글로리라라는 기획사 사장으로 전위무대의 포스트, 팜플렛 뿐만 아니라 신일금속, 건설 화학의 CI매뉴얼까지 제작 했다. 그러면서 전위무대 대표까지 겸했다. 사업을 하면서부터 회사 사무실이 곧 전위무대 사무실이었다.

    1977년에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그 사업을 계속하고 있어요. 합동 기획을 예승기획으로 바꾸었고, 부인이 예승기획을 맡아서 공연기획을 하고 있다.

    첫 연출작품은 1978년 <흑도>였다. <흑도>는 실험성이 강한 작품이었고 출연자는 연극경험이 많은 전성환, 안광영이었다. 첫 연출이었기에 그랬는지 몰라도 전승환이 생각한 대로 작품이 무대에서 형상화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연출자가 의도한 대로 안 될 때는 모든 것이 연출자 책임이라고 생각했기에 열심히 했고 그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한다.

    연극 연출가는 배경에서부터 작품이 가지고 있는 성격, 등장인물의 성격, 작가가 요구하는 것 등 많은 것을 배우와 관객들에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며 배우들의 움직임에서 기본적인 동작선도 신경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연출가는 작품 분석을 최우선으로 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래야 디테일하게 연극을 표현할 수 있고, 조명, 음악 등 연극의 전분야를 융합하여 관객과 만나게 된다고 한다.

    극단 전위무대의 역사를 부경대 김남석 교수는 1963년부터 1978년 5월 〈출발〉과 〈너도 먹고 물러가라〉를 공연한 17회 정기공연까지를 1기로 설정한다. 이 때 부산레파토리시스템이 전위무대에서 독립해 나갔고 이때부터 전승환은 전위무대의 대표가 된다. 레퍼토리시스템에서 다시 시나위, 맥이 탄생했다.

    전승환은 1979년 미문화원 부원장의 소개와 안내로 <알고 난 뒤의 충격>이라는 작품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1988년 전위무대 50회 정기공연기념공연이 되었고 그 때도 전승환은 출연했다.
    전승환은 제20회 전위무대 공연작인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도 연출했다. 1979년 6월 1일부터 6일까지 부산시민회관 소극장에서 공연되었다. 20세기 최대 문제작 중의 하나인 세일즈맨의 죽음 공연은 당시 부산 연극계에 지대한 관심사였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당시 부산 최대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원작의 유명세도 있었지만 전승환 나름의 해석으로 <세일즈맨의 죽음>은 부산에서 다시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이다. 전승환은 <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인공 윌리로먼의 몰락 과정을 시대의 정신피폐와 연결해 연출하는데 초점을 맞추었고 사람들은 무엇보다 정신의 몰락이라는 점에 두려움을 느끼고 그것이 연극화되고 이에 대한 경종이 울리는 것에 동감한 것으로 파악한다. 타지역 영문과 학생들도 이 연극을 보러 왔었다고 한다. 한국의 교육열 또한 <세일즈맨의 죽음>이 흥행하는데 한 몫한 셈이다. 당시 윌리 로먼역은 전승환의 형님이자 스승격이었던 전성환이었다. 전승환은 연출자로 전성환과 작품 내용과 동선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고 동선 때문에 다소 논쟁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전위무대는 외국 사실주의 작품, 특히 미국의 작품을 주로 선택해서 공연했다. 그 이유는 전승환이 연출하면서 희곡의 구성의 문제로 이들 작품을 선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 희곡은 완성도가 떨어져 보였다고 한다. 한국희곡작가의 분발을 요구하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희곡근본에 충실한 작품이 무엇보다 전승환을 만족시킨 것이고 한국 희곡에는 생각보다 그런 작품이 적었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전승환은 1981년부터 십여년간 여름 연극학교를 열었다. 대상은 고등학생부터 사회인까지였다. 지금 서울에서 연출을 하는 김광보도 여름 연극학교 출신이다.

    전승환이 연출한 작품에는 그의 피난경험이 반영되었다. 여러 작품이 있지만 김문홍이 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가 그런 얘기를 다룬 작품이었다. 1980년에 공연한 강하영의 <길목>이라는 작품도 그 중 하나다. 주인공인 홍월파는 전쟁 피난민들이 어려웠던 시대에 자신의 생활을 위해서, 자신의 처지를 이겨내기 위해서 애를 쓰는 캐릭터다. 그 가운데서 사랑도 싹텄다. 무대 한 편에는 석탄 무더기가 있었고, 석탄이 타고 나면 구멍이 뿡뿡 뚫리는 찌꺼기나 나오는데 이런 것들을 활용하여 연극을 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여러 풋풋한 추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당시 공연에는 관객들이 시민회관 소극장을 거의 다 메우다시피 했다고 한다. 강하영 씨는 KBS 라디오 전속 작가였고 전위무대와 매우 가까웠다. 공연 연습 때마다 찾아왔었는데 울산에 가 계신다는 말을 들은 후로 연락이 끊어졌다고 한다. 이 작품을 공연할 때 여성경제인 연합회에서 이 연극을 보고 피난 올 때 생각이 난다. 수고했다며 전위무대 멤버들에게 술과 밥을 사주기도 했고 관객들도 저녁을 사 준 기억도 있다고 한다.

    전승환은 가끔 피난 사진을 보면서 저 안에 내가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런 시대를 지낸만큼 유년부터 어른이 되기까지의 경험이 연극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험 밖에서 사고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당연한 것이리라.

    전승환은 외국작품 중에서도 연출가가 번역한 작품이 연출하기에 더 편했다고 한다. 2011년에 창작 초연으로 전위에서 공연한 <양산박 사람들>은 8번씩이나 대본을 바꾸었는데 결과는 생각보다 좋게 안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선샤인 보이즈>는 김철이 번역을 했고 <내 사랑 마리>는 이진철이 번역을 했는데 대본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연극의 현장에 익숙한 사람들의 감각이 희곡도 연극에 맞춰 정리된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전승환은 1960년대 중반에 연극에, 연출에는 1978년에 입문했다. 연극과 반세기, 연출과 35년을 넘겼다. 몇 장의 원고로 그의 연출세계와 연출이력을 다 정리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그의 연출세계가 넓고도 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많은 작품을 연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리얼리즘 연출의 공공한 성채 전위무대의 탁월한 디렉터이자 성주 전승환의 연출세계가 더 깊고 다양해지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전승환과의 대담.
    -김남석, 󰡔전위무대의 공연사와 공연미학󰡕, 해성,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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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심상교(부산교육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

    1986~1989 (사)한국연극협회 제11대부산지회장 역임
    1990~1992 전국연극인협의회 회장(창설주역)
    (사)한국연극협회 이사
    1996.9 경북청소년연극제 심사위원
    1997.4 경북연극제 심사위원(경북연극제, 경북청소년 연극제 6회심사)
    1998.4 제16회 부산연극제 심사위원장
    1999.3 부산연극연출가협의회 회장
    1999.6.3 (사)한국해양문화 발전연구소 중앙회 전문위원단장
    2000.11.9 대한일보사 영남 취재본부 운영위원
    2002.4.1 제20회 부산연극제 심사위원장
    7.26 제1회 부산공연예술제 집행위원
    2004.9 제47회 부산시문화상 심사위원
    2005.3.30 2005'부산국제연극제 집행위원
    2006.5.16 제20회 부산청소년연극제 심사위원장
    2008.3 부산국제연극제 자문위원
    2009.11.25 거창겨울연극제 심사위원
    2010.3.26 제28회 전국연극제 집행위원
    5.13 부산국립국악원 "영남춤에 돛을 달고" 연출,대본
    6.15 제28회 전국연극제(시민연극제) 심사위원장
    2011.3.25 제4회 부산시민연극제(부산연극제) 심사위원장
    5 부산국제연극제 시민연극제 심사위원장
    2006.6~현재 (사)한국연극인 복지재단 이사
    현재 공연예술전위(극단 전위무대) 대표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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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사항 - 학습기간, 학교, 전공, 학위, 비고을(를) 상세히 나타낸 표입니다.
학습기간 학교 전공 학위 비고
~ 1962.2.6 동아고등학교 졸업

주요활동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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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활동사항 - 년도, 활동내역, 비고을(를) 상세히 나타낸 표입니다.
년도 활동내역 비고
2013 5.10-19 <늙은 자전거> (이만희, 전승환) 한결 아트홀(구, 가마골 소극장)
11.02-11.10 <언덕을 넘어서 가자> (이만희, 전승환) 한결 아트홀(구, 가마골 소극장)
 
2012 4.19-29 <돌아서서 떠나라> (이만희, 전승환) 가마골 소극장
9.13 문화예술알림공연<돌아서서 떠나라> (이만희, 전승환) 새우리병원 문화센터
12.28 문화예술알림공연<돌아서서 떠나라> (이만희, 전승환) 새우리병원 문화센터
 
2011 3.21 <양산박 사람들> (김문홍, 전승환) 가마골 소극장
3.24-26 <용띠 위에 개띠> (이만희, 전승환) 시민회관 소극장
4.17-19 <양산박 사람들> (김문홍, 전승환) 가마골 소극장
11.21-24 <세일즈맨의 죽음> (아서.밀러,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12.13-21 <나생문> (아쿠타가와류노스케,전승환) 가마골 소극장
 
2010 5.20-30 <나생문> (아쿠타가와류노스케,전승환) 가마골 소극장
6.30-7. <탄생 그리고 망각> (전승환, 전승환) 오륜정보학교 부산구화학교 동래정신재활원
12.1-30 <용띠 위에 개띠> (이만희, 전승환) 두드림 소극장
 
2009 6.19-28 <돌아서서 떠나라> (이만희, 전승환) 에저또 소극장
7.14, 16 <어머니> (전승환, 전승환) 법무부 소년원 등
11.17-22 <언덕을 넘어서 가자> (이만희, 전승환) 시민회관 소극장
 
2008 4.12-14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김문홍, 전승환) 시민회관 소극장
6.274-7.6 <언덕을 넘어서 가자> (이만희, 전승환) 미리내 소극장
7.17-18 <어머니> (전승환, 전승환) 오륜정보학교(법무부)외 2곳
8.8-9 <돌아서서 떠나라> (이만희, 전승환) 거창국제연극제 자유극장
12.9-14 <세일즈맨의 죽음> (아서.밀러,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2007 4.23-27 <아름다운 거리> (이만희, 전승환) 시민회관 소극장
5.23-6.7 <시, 노래가 있는 연극 "사모곡"> (전승환, 전승환) 오륜정보학교(법무부) 등
12.6-8 <돌아서서 떠나라> (이만희, 전승환) 가톨릭센터 소극장
 
2006 7.19-30 <용감한 사형수> (홀 워디홀, 전승환) 오륜정보학교(법무부) 외 5곳
8.11-20 <용감한 사형수> (홀 워디홀, 전승환) 가마골 소극장
9.30-10.1 <삼류배우> (김순영, 전승환) 금정 문화회관 소극장
 
2005 4.14-15 <알고 난 뒤의 충격> (R. 앤드슨, 전승환) 시민회관 소극장
8.12-21 <위켄드 코미디> (쟌느 샘 버브릭, 전승환) 가마골 소극장
12.20-22 <위켄드 코미디> (쟌느 샘 버브릭, 전승환)시민회관 소극장
 
2004 6.30-7.4 <세일즈맨의 죽음> (아서.밀러,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9. <알고 난 뒤의 충격> (R. 앤드슨, 전승환) 사하경찰서외 6곳
 
2003 7.8-13 <선샤인 보이즈> (닐사이먼, 전승환) 경성대 정보 소극장
10.13-16 <선샤인 보이즈> (닐사이먼, 전승환) 시민회관 소극장
 
2002 7.12-14 <영원한 동창> (이근삼,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9.6-8 <수정동 연가> (김태수,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2001 4.6-7 <어떤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 (이근삼,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9.6-8 <땅끝에 서면 바다가 보인다> (김태수, 전승환) 눌원 소극장
 
2000 7.5-9 <어떤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 (이근삼,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8.10-13 <해가지면 달이뜨고> (김태수, 전승환) 김해 칠암문화센터
8.17-20 <해가지면 달이뜨고> (김태수, 전승환) 남해 문화체육센터
 
1999 3.25-28 <막차 탄 동기동창> (이근삼,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1998 4.5-7 <막차 탄 동기동창> (이근삼, 전승환) 눌원문화센터  
1996 9. <심청이는 인당수에,,,> (오태석) 시민회관 소강당  
1995 12.22-25 <알고 난 뒤의 충격> (R. 앤드슨,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1994 10. <안나 크리스티> (유진오닐,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11. <막차 탄 동기동창> (이근삼, 전승환) 극단 마산 소극장
 
1993 10. <막차 탄 동기동창> (이근삼, 전승환) 눌원 아트홀
10.12 <막차 탄 동기동창> (이근삼,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12. <막차 탄 동기동창> (이근삼, 전승환) 거창 입체예술극장
 
1992 7. <막차 탄 동기동창> (이근삼, 전승환) 장기순회 공연
8. <막차 탄 동기동창> (이근삼, 전승환) 세이 소극장
 
1991 4.9-10 <얼룩향수> (전동수,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10.10-13 <막차 탄 동기동창> (이근삼,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11.25-12.1 <막차 탄 동기동창> (이근삼, 전승환) 눌원 소극장
 
1990 10.10-12 <알고 난 뒤의 충격> (R. 앤드슨,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1989 4.3-5 <갯막> (전동수, 서광석) 시민회관 소강당
6.3-6 <사랑의 주말별장> (잔느 샘 버브릭,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9.12-14 <토끼와 포수> (박조열,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12.27-1990.1.27 <토끼와 포수> (박조열, 전승환) 시민회관소강당 (부산 12.27, 경주 1.13, 울산 1.21)
 
1988 3.26-28 <토끼와 포수> (박조열,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5.27 <토끼와 포수> (박조열,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6.24-26 <세일즈맨의 죽음> (아서.밀러,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9. <물의 정거장> (오다쇼고, 전승환) 시민회관 소극장
10.7-9 <알고 난 뒤의 충격> (R. 앤드슨,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1987 3.21-23 <마태오의 땅> (설재록,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1986 3.21-22 <산지기네> (전동수,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4.20 <산지기네> (전동수,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5.26 <산지기네> (전동수, 전승환) 대구 시민회관
9.23-25 <맹진사댁 경사> (오영진, 전승환) 시민회관 대강당
 
1985 4.4-5 <깡통들의 행진> (정구,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6.6-9 <벽> (J.P.샤르뜨르, 허영길) 시민회관 소강당
10.8-9 <알고 난 뒤의 충격> (R. 앤드슨,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1984 3.25-27 <성모의 기사> (노혜경,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4.27-5.6 <성모의 기사> (노혜경,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10.5-7 <꽃게의 울음> (윤진상,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1983 10.26-28 <산지기네> (전동수,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12.14 <산지기네> (전동수, 전승환) 동주여상 체육관
 
1982 3.12-16 <그늘> (임인애, 임인애) 카페떼아뜨르
5.1-2 <빌라도의 고백> (이진수, 전승환) 카톨릭센터 소극장
5.13-18 <세일즈맨의 죽음> (아서.밀러,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10.10 <유다의 배신> (양왕용,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1981 9.13-14 <땅으로 가는 사람들> (임인애, 이봉수) 시민회관 소강당
10.8-10 <사랑 1961> (양왕용,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12.18-20 <아일랜드> (아돌후가드, 이창복) 가페로따리아
 
1980 5.21-24 <알고 난 뒤의 충격> (R. 앤드슨, 전승환) 청탐 그릴
6.28-30 <길목> (강하영,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7.21 <알고 난 뒤의 충격> (R. 앤드슨, 전승환) 카페로따리아
8.28-30 <새> (오영수, 전승환) 가페로따리아
9.1 <새> (오영수, 전승환) 가페로따리아
11.24-27 <교수대의 유머> (J. 리차드슨, 전승환) 카페로따리아
 
1979 5.23 <알고 난 뒤의 충격> (R. 앤드슨, 전승환) 부산미문화원
6.1-6 <세일즈맨의 죽음> (아서.밀러,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10.11-13 <혈맥> (김영수, 전승환) 시민회관 대강당
 
1978 4.13-15 <버스 스톱> (윌리암. 인지, 나사랑) 시민회관 소강당
5.3-8 <출발, 너도 먹고 물러가라> (윤대성, 허영길) 시민회관 소강당
3.29-30 <아! 동래성> (박두석, 전승환) 충렬사 준공기념 제 1회 부산무대 예술제
12.30-1979.2.3 <흑도> (김행호, 전승환) 카페 때아뜨르
 
1977 6.24-30 <내사랑 마리> (지인.커, 전근섭) 시민회간 소강당
11.20-22 <맹진사댁 경사> (오영진, 허영길) 시민회관 대강당
 
1976 2.26 <교수대의 유머> (J.리차드슨,전승환) 밀양문화원
6.24 <알고 난 뒤의 충격> (R. 앤드슨, 전승환) 부산미문화원
7.3-6 <벽> (J.P.샤르뜨르, 허영길) 시민회관 소극장
7.28 <알고 난 뒤의 충격> (R. 앤드슨, 전승환) 시민회관 소강당
 
1975 6.14 <토끼와 포수> (박조열,전승환) 시민회관소극장
12.20 <교수대의 유머> (J.리차드슨,전승환) 부산미문화원
12.27 <도깨비의 우화> (하유상,전승환) 시민회관소극장
 배우
1974 4.28 <도적들의 무도회> (장 아누이,허영길) 시민회관소극장  배우

해당장르

  • 장르 문화예술인 > 공연예술인 > 연극 > 연출
  • 역할 연출가
  • 대상 일반인
  • 키워드 극단전위무대#전성환#부산레파토리시스템#연극#연출가

교육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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