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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민

문화예술인 시각예술인 회화 서양화

NO.AGD873최종업데이트:2016.12.17

자료등록 : (재)부산문화재단 본 내용은 등록자에 의해 작성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프로필

김윤민

  • 분류문화예술인
  • 이름김윤민 / 金潤玟
  • 생년월일 1919년 6월 7일
  • 출생지 경남 남해군

인물소개

  • 2013 12월 인물스페셜

    I. 김윤민(金潤玟, 1919-1999)은 1946년 봄부터 부산에 정착하여 해방 후의 척박한 부산미술의 토양을 가꾼 개척기의 몇 안 되는 미술가에 속한다. 일제강점기부터 부산에서 활동한 미술가를 ‘토착1세대’라 한다면, 그는 ‘정착1세대’로서 통칭하여 ‘부산미술 1세대’라 할 수 있다.
    교직에 종사하는 한편으로 작품생활을 병행한 나머지 남겨진 작품의 수효는 많지 않아 ‘과작의 화가’로 불린다. 그러나 남부 영남의 산하가 지닌 정경을 투명한 공기를 머금은 원생적인 회화미로 표출하여 초현실의 몽환성과 시정(詩情)을 지닌 독자적인 초현실적 화풍을 이루어 부산미술에 이채로운 면모를 남겼다.


    II. 그는 1919년 6월7일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에서 어장을 하는 아버지 김두행(金斗幸)과 어머니 양부근(梁富根)의 4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유년기를 보낸 ‘물건리 마을’은 볕이 좋은 남향지로 해안선이 수려하게 펼쳐지는 포구를 지닌 곳이며, 특히 바닷가를 따라 길게 늘어선 370여년 된 ‘방조어부림’(길이 1,500m 너비 약30m, 천연기념물)이 지닌 풍광은 그의 작품의 원천이자 고향이 되어 주었다.
    1927년 9세 때, 결혼한 큰누님을 따라 일본으로 들어갔으며, 완구제작을 하는 매형의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히라노(平野)실업학교’를 졸업했다. 일하는 한편으로 그림에 남다른 취미를 가져 야간에는 화실에 나가 소질을 길렀으며, 마침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1937년 ‘오사카(大阪)미술학교(현 오사카 예술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하여 1941년 5년간의 과정(본과3년, 전공2년)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10개월간 연구과정을 더 다녔다.
    재학시절 크게 영향을 준 지도교수는 프랑스 유학을 한 사이토 요리(齊藤與里,1885-1959)인데, 오사카미술학교창설에 참여하였으며 일본화단에 고갱과 세잔을 소개한 일본근대양화의 선구자이다. 졸업후 ‘신관서미전’(新關西美展)과 ‘문부성 미술공모전’에 전원 풍경을 출품하여 입선하였다. 당시 한국유학생 동문으로는 1년 선배인 정종녀(鄭鐘汝)와 1년 후배로 윤재우(尹在玗), 임호(林湖, 본명 林采完), 송영수(宋英秀), 백영수(白榮洙)가 있다.
    1942년 황영순(黃永順)과 결혼하였으며, 한 때 오사카 번화가에서 화랑을 몇 달간 하기도 했으나, 태평양전쟁 막바지의 강제징용을 피해 섬으로 가서 반년 간 지내다 결국 일본에서의 생활을 접고, 1945년 5월에 가족을 데리고 귀국하게 된다. 고향 남해에 돌아와서 어장 서기를 하던 중 해방을 맞았으며, 1946년 봄에 부산에 와서 경남중학교 미술교사직을 얻어 부산과 인연을 맺고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1950년 6.25전쟁으로 잠시 학교가 휴업하는 동안 초상화그리기와 미군부대에서 표지판이나 간판그리기를 1년여 했으나 정상화되자 경남중학교로 복귀하였다. 그 후 부산사범학교, 개성중학교, 서중학교, 대신중학교, 은하여중학교를 거쳐 마지막으로 중앙여중학교에서 1984년 8월30일 65세로 정년퇴임할 때까지 38년간 중등학교에서 가르치는 한편 작품 활동을 했다. 평소 동심의 세계를 동경한 그는 나이어린 학생들과 어울릴 수 있는 중학교의 평교사직으로 있기를 원했으며, 퇴직시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1991년부터 신병으로 붓을 놓다시피 했으며, 1999년 5월28일(음력) 80세를 일기로 타계함. 양산 신불산 공원묘원에 안장되었다.


    III. 그는 주로 단체전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였는데, 해방공간에서는 ‘3·1절 기념미술전’, ‘광복경축미전’, ‘부산미술인합동미전’ ‘경남미술연구회원전’ ‘부산미술전’(민주중보사, 초대작가)에 참여하였다.
    6·25전쟁이후에는 외지에서 온 ‘피난화가’들과 차별화된 지역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1953년 김영교, 김종식, 임호, 김경, 서성찬(1회만 참가)과 함께 향토적 서정성을 지향한 ‘토벽동인전(土壁同人展)’을 결성하고 3회 참여하였다(1회 53.3.22-29 르네쌍스다방, 2회 53.10.4-11 휘가로다방, 3회 54.6.7-14 실로암다방). 동인들은 서성찬을 제외하고 모두 일본에서 공부한 ‘유학파’로서 30대 청년들이었다. 이후에도 각종 단체전에 출품하거나 기획전에 초대되었으며, 1세대작가들의 모임인 ‘후기전’에 참여하였다(1971-8).
    1974년 56세에 생애 첫 개인전을 가졌다. 늦은 개인전에 대해 “생활도 그렇고 예술도 그렇고, 허영은 싫습니다. 자신 없는 그림으로 빈번한 전시를 하는 것도 허영일 수 있습니다. 남들은 날 더러 게을러 그림을 안 그리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러나 나는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그립을 그립니다. 1-2주일 걸려 후딱 그린 그림을 남 앞에 내 놓는 것은 치부를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라고 토로했다(부산일보,1974.6.15). 그 뒤로 2회 개인전(1978,현대화랑), 3회 개인전(1993,공간화랑)을 가졌으며, 1986년 11월에는 부산미술에 이바지 한 공로로 ‘부산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IV. 그의 일관된 화풍은 산천의 풍광 속에 조화롭게 어울려 살고 있는 인물들의 정경을 회화의 공간으로 투명하게 환원하여 초현실의 시정어린 환상적인 풍경으로 형상화한 점이다.
    초기(1회 개인전,1974)에는 구체적 풍경이 추상되고 인물에 중점을 두어 전면에 내세워 알몸의 여인상과 모자상을 그려 육감적인 관능성과 생명감이 두드러진다. 알몸의 주홍색과 배경의 녹색에 의한 보색효과로 원생적인 색감을 얻고 있다. 형상과 색채는 고유색을 지니고 있으며, 자국이 없는 고운 붓질로 거듭하여 올리는 투명 유채법은 고요한 정조를 이루어 이후 그의 작품의 기저가 되고 있다.
    중기(2회 개인전,1978)에는 풍경 속에 인물을 점경으로 등장시켜 조감적인 시선으로 산과 마을을 전체적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산과 시냇가에서 쉬거나 놀고 있는 소년들과 어른, 소, 양이 보인다. 노년기 야산, 길, 시내, 밭, 나무, 정자 등이 등장하고 회화적으로 화면구성이 풍부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와서 삶의 장소인 구체적 풍경과 감정이입 되는 경향이 뚜렷해지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후기(3회 개인전, 1993)에 와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산천이 지닌 풍경의 요소를 회화적인 조형성으로 해석하여 형상하고 있다. 예컨대 노년기 야산이 지닌 완만한 구릉의 굽이치는 산들은 육감적인 부드러움의 조형으로 변용되어 둥근 형태와 곡선으로 간략화 된다. 그리고 산야의 솔밭, 숲, 초원, 논밭, 들, 길, 버드나무, 계곡, 시내 등이 자체의 빛과 형태를 얻어 조형미를 이루고 시적 정취의 회화성을 얻어 선려하게 구성된다.
    풍경 속의 인물도 ‘알몸’으로 다룬 경우에는 주로 어린 아이들을 등장시켜 냇가에서 고기 잡기, 고추잠자리 잡기, 소와 냇가에서 놀기, 강변모래톱에서 발가벗고 노는 아이들을 요정처럼 그려 유년기의 고향체험을 회화적 장면으로 환원하여 ‘낙원이미지’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 시기에 와서 고향의 자랑인 ‘방조어부림’이 지닌 천혜의 풍광을 회상하여 작품화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바다의 청색과 산의 녹색, 무성한 숲의 검은 빛 녹색, 푸른 자갈밭 사이에 펼쳐진 새하얀 모래밭의 해변, 인물의 주홍색이 주는 청신함이 절정이다. 이러한 색채미는 감각적이기 보다 초월적인 영적 가치를 지니고 빛을 발한다.
    그래서 만년에 그린 이른바 ‘방조어부림’ 3부작은 그가 도달한 경지를 가늠하게 한다. 그 바닷가, 늘려 있는 온갖 색깔을 지닌 동그란 몽돌들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와 해조음에 잠겨있는 투명한 광경. 이 모두가 김윤민의 원초적 감수성이자 영감의 원천이라고 보겠다. 어린 나이에 떠난 고향. 멀고 먼 이국에서 그리워하던 산천과 뛰놀던 친구들의 모습들이다. 화가가 되어 그 고향에 돌아왔을 때, 작가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그냥 그대로 화폭처럼 지각되었을 것이다. 다시 그 고향을 등진 대도시의 삶이란 떠나 온 것에 대한 그리움이다. 따라서 그것은 의식의 시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귀향의식’이고, 정신적으로 낭만주의며 초월주의인 셈이다. 역설적으로 근대적 문명으로부터 벗어난 곳, 1920년대 농경문화의 원생적인 삶의 숨결과 표정을 그의 화폭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남부의 산하가 지닌 삶과 정경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하여 투명한 공기를 머금은 원생적 회화미로 형상화하였다. 그러한 미적 성취는 한국 전통미술이 지닌 자연주의적인 미감과 교감되어 공유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부산미술 1세대 작가 중 이채롭게도 초현실적 화풍을 견지하여 이 영역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은 한국회화의 소중한 수확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원로 예술인을 찾아서-서양화가 김윤민’ 1/2/3, 부산일보 1985.1.7/1.10/1.14
    2. 2회 개인전 도록, 현대화랑, 1978
    3. 3회 개인전 도록, 공간화랑, 1993
    4. ‘한국근대미술60년전’ 도록, 국립현대미술관, 1973
    5. ‘부산미술30년전’ 도록, 부산미술협회, 1979
    6. ‘부산의 작고작가6-김윤민’ 도록, 부산시립미술관, 2011
    7. 이용길 엮음, ‘부산미술일지 I’, 부산광역시문화회관/용두산미술전시관, 1995
    8. 이용길, ‘부산미술사료’, 부산발전연구원 부산학연구센터, 2006
    9. 옥영식, 평문집 ‘부산미술의 표정’, 보광출판사, 2001
    10. 옥영식, 평문집 ‘부산미술의 면모’, 도서출판 지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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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옥 영 식(미술평론)

    부산미술과 문화에 대한 현장비평을 주로 하여 글쓰기를 하고 있으며, 부산미술포럼 공동대표, 부산청년미술상 운영위원장, 부산미협 학술평론분과회장을 역임. 경성대학교와 동아대학교 예술대학·대학원에서 미술이론을 강의하였고, 평문집으로 ‘부산미술의 표정’ ‘부산미술의 면모’가 있다.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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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사항 - 학습기간, 학교, 전공, 학위, 비고을(를) 상세히 나타낸 표입니다.
학습기간 학교 전공 학위 비고
1937 ~ 1941 오사카 미술학교(현 오사카예술대학) 서양화과
~ 1936 히라노 실업학교 졸업

주요활동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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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활동사항 - 년도, 활동내역, 비고을(를) 상세히 나타낸 표입니다.
년도 활동내역 비고
1999 5.28(음) 타계, 신불산 공원묘원 안장
 
1993 2.26-3.8 3회 개인전, 공간화랑
 
1991 지병으로 이후 절필
 
1986 부산시 문화상(미술) 수상
 
1984 8 중앙여중에서 정년퇴임, 국민훈장 동백장 수장
 
1982 ‘원맥9인의 형상전’ 초대, 현대화랑 (평론가 이시우, 김해성, 옥영식 기획)
 
1979 ‘부산미술30년 동향전’ 출품, 부산미술협회
 
1978 5.13-19 2회 개인전, 현대화랑  
1974 6.14-23 1회 개인전, 부산탑 갤러리  
1972 ‘한국근대미술60년전’ 초대, 국립현대미술관
 
1971 1971-75 ‘후기전’(1-8회) 참여
 
1953 1953-4‘토벽동인전’ 결성, 참여  
1949 ‘경남미술연구회’ 결성, 참여  
1948 1회 ‘부산미술전람회’ 초대 출품, 민주중보사 주최
 
1946 경남중학교 미술교사로 부임. 이후 부산사범학교, 개성중, 부산서중, 대신중, 은하여중, 중앙여중에서 38년간 봉직
 
1945 5 귀국하여 고향 남해에서 어장 서기를 함
 
1942 황영순(黃永順)과 결혼
 
1941 오사카 미술학교(현 오사카예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졸업후 10개월간 연구과정 수업
 
1940 일본 ‘신관서미술전’ 및 ‘문부성 공모전’ 입선
 
1937 오사카 미술학교(현 오사카예술대학) 서양화과 입학  
1936 히라노(平野)실업학교 졸업
 
1927 큰누님을 따라 일본에 건너감
 
1919 6.7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에서 어장을 하던 부친 김두행의 4남2녀 중 넷째로 출생
 

해당장르

  • 장르 문화예술인 > 시각예술인 > 회화 > 서양화
  • 역할 한국화가 , 서양화가
  • 대상 일반인
  • 키워드 작가#서양화#평면#구상#김윤민#서양화가#회화

교육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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