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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남훈 평론집 <루덴스의 언어들>

문화예술작품 기타 기타

NO.APD9082최종업데이트:2017.02.13

자료등록 : (재)부산문화재단 본 내용은 등록자에 의해 작성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프로필

  • 제·작자 손남훈 [평론/이론]
  • 작품제목 손남훈 평론집 <루덴스의 언어들>
  • 작품장르 문화예술작품 > 기타 > 기타
  • 발표일 2016.12.20.
  • 발표주체 186

작품설명

  •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더 이상 근대문학이 ‘공감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역할을 떠맡을 수 없게 되었음을 천명한 바 있다. 다시 말해, 근대문학의 역할과 기능은 이제 끝이 났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문학의 역할과 기능은 예전에 비해 많이 축소되었고 그 자리를 다양한 문화적 감수성이 대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시는 그 오래된 문학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미적 · 대중적 의의와 효과가 감소되고 있다. 여전히 이 땅에 많은 시인들이 존재하고 문예지마다 수많은 시편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미학적 · 윤리적 갱신 없이 그저 동어반복적인 글쓰기와 타성에 젖은 시적 경험이 진부하게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또 다른 일련의 시인들은 현실과의 긴장관계를 미학적 접점으로 사유하면서, 윤리적 가능태로 끌어올리기 위한 시도를 지속하여 보여주고 있다. 근대문학이 끝난 자리, 더 이상 ‘오락’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미천한 자리에서, 다시금 시가, 문학이 갱신될 가능성을 거기서 볼 수 있을 것이라 예견한다면 이는 그저 과대망상에 불과한 것일까? 그것은 문학을 지나치게 하찮게만 바라보는 태도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되레 근대문학이 끝났기에 문학의 가능성은 다시금 사유될 수 있고 문학 그 자체의 복권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감 가능한 공동체로서의 문학(근대문학)은 끝났을지 모르나, 단독성으로서의 문학이 가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문학은 바로 이러한 단독자들의 발화 가능성을 더 많이 내포한다. 놀이로서의 시, 시가 가진 놀이적 태도는 이들이 가진 발화의 양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테제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놀이-시’는 단일 화자의 단일 독백으로 제시되는 서정으로서의 시로부터, 타자와의 접점 관계로 재구성되는 또 다른 시적 세계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기존의 서정시는 서정적 화자의 독아론적 세계로 구성되지만, 놀이로서의 시는 화자 혼자만의 세계가 아니라 수많은 타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세계를 구성할 수 있다. 타자에 의해 타자와 함께 타자들의 세계를 구성하는 시가 가능하다면, 그것에서부터 근대문학 이후를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비평집은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근대문학 이후를 탐색하는 시적 가능성을 ‘놀이’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로부터 새로운 미학적 · 윤리적 테제로서의 문학을 상상해보고자 한다.

주요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