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도 높은 심리 묘사로 인간의 실존을 탐구한 정인의 소설집『그 여자가 사는 곳』. 이번 두 번째 소설집에서는 첫 소설집「당신의 저녁」에서 보여준 가족사 중심의 서사에서 더 나아가 이웃과 사회로 시선을 넓혔다. 낙오되고 소외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의 근원을 개인의 심리적 세부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인종적, 계급적, 성적 세부로 확대하였다.
<잔인한 골목>은 손자와 할머니의 고단한 삶을 통해 뒷골목의 지난한 모습을, <타인과의 시간>은 베트남 결혼 이민자가 속한 다문화가정의 소통 부재를, <그녀가 사는 곳>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한국으로 온 베트남 처녀 리엔의 삶을 그리고 있다. <블루하우스>는 중국 조선족 여성을 화자로 내세워 현재의 세계화가 초래하는 이산적 정체성을 다루었다.
작가는 결핍되고 주변화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그들은 모두 타인에게 상처받았으며, 힘든 운명의 짐을 지고 죽음과 삶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결합되어 진한 슬픔을 선사한다. 또한 이주 노동자, 국제결혼 등으로 다문화사회로 변해가고 있는 요즘, 그들 역시 우리 중의 하나임을 이야기한다.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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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집에 실린 소설 속 오늘의 세계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할 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통해 전리품을 얻는 세계로 그려진다. 또한 사회적으로 공언되는 신념이나 가치와 실제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는 틈이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그럼에도 타인과 내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서로의 고통에 동참할 수 있다면 삶은 견딜 만하다는 위안을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