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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현

문화예술인 전통예술인 전통예술 부산농악

NO.AGD2536최종업데이트:2017.07.17

자료등록 : (재)부산문화재단 본 내용은 등록자에 의해 작성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프로필

조성현

  • 분류문화예술인
  • 이름조성현 / 趙聖鉉
  • 생년월일 1906년
  • 출생지 전라남도 순천

인물소개

  • ○ 부산농악의 악사-장구 초대보유자이다.
    원래는 진주에서 주로 활동하여 삼천포농악단, 솟대쟁이패 등의 단원이었으나 1953년 아미농악단의 창단단원이 되면서 부산에서 활동하였다.

    ○ 구슬픈 가락을 띠면서도 어깨춤이 나는 날라리소리에 흥겹게 돌아 가는 상모꾼의 상모돌리는 묘기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동네 마을의 굿이다. 장구·꽹과리·징·북소리가 더해지면서 풍물치고 춤추며 노래 부르는 농악은 가장 대중적이면서 가난한 농촌살림의 고달픔을 잊게 했던 민중놀이이자 민중음악이기도 했다. 농사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리듬에 맞춰 작업을 하던 것이 차츰 오락과 예술성을 띠게 되었다는 농악가운데서 전국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부산아미농악(부산지방무형문화재 제6호). 농악에 참여한 지하도 오래되어 기억조차 삼삼하다는 조성현(趙聖鉉)옹(80)은 그대로 청(靑)·홍(紅)·황(黃) 삼색띠를 허리에 두르고 고깔을 쓰면 장구장단은 절로 치게 되는 타고난 놀이꾼. 아미농악 총 인원 38명 가운데 4 명뿐인 기능보유자중 가장 연로한 어른이다. 전남(全南) 순천(順天)에서 났으나 언제 들어도 가슴이 설레이던 풍물(風物) 소리에 반해 10대시절에 부산까지 와서 지금껏 농악을 한다는 그는 거창에서 「선생님」께 상모돌리기·소고치기를 배웠다. 오방진감기와 풀기·엎어백·소고놀이·연풍대·자반뒤지기·북놀이·장구놀이 등을 함께 하더라도 가장기초가 되는 기능이 상모돌리기라고 한다. 상모부터 배워야 그 뒤에 호적·소고(小鼓)·버꾸(들소고)·장구 등을 맡더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 현재 조옹이 맡고 있는 장구채 잡이는 20여년쯤 된 것 같다고 어렴풋이 헤아려 본다. 옛날부터 아미(蛾 眉)동·토성(土城)동 등지에는 농악 기능이 뛰어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동래(東萊)쪽에는 지신(地神)밟기란 걸립(乞粒)농악과 야외에서 여럿이 어울려 춤을 추기 위한 장단으 로서의 농악도 성했다는 것. 음력 정초에 가가호호 돌아가면서 떠들썩하니 매구치며 고사를 지내고 복을 빌어 주던 걸립농악이 요즘은 1년에 겨우 몇 번씩 공식행사라도 하듯 일정한 장소에서 관중에게 선 보일 뿐이지만 장구를 안고 배지기로 돌아넘는 조옹의 기교는 아직도 젊은 사람들을 「기죽이는 솜씨」라고 귀띔하는 동료도 있다. 현재 아미농악에서 가장 큰 특징은 개인기가 뛰어나다는 점. 집단 놀이판이면서도 상모돌리기 등 폭발 하듯 돌아가는 개인기교 등은 남도(南道)지방특유의 박력과 남성들로만 구성된 농악의 통쾌한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장구잡이 조옹이 가장 신이 나는 순간도 박자가 빠른 영산 다드래 기가락이 몰아칠 때라고 검버섯 핀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떠올린다. 전라도·충청도 농악 등에 비해 4박 자의 느린 굿거리장단이 많고 춤이 많이 삽입되어있는 차이점도 있다고. 처음에는 부드럽게 시작해 모듬굿·길굿·인사굿·맞춤굿·마당굿·문굿·풍년굿·들버꾸·개인놀이 등에 이르기까지 15종의 판굿이 진행됨에 따라 갈수록 박력이 넘치고 활기가 나는 게 농악의 맛이자 멋이기 도 하다. 농악소리를 들으면 누구라도 도저히 가만 앉아 있을 수 없는 설렘과 흥취를 느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그 마력(?)을 설명하기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에게 지급하는 생계보조금 월 8만8천원이 전수입 이기도한 조옹은 중풍으로 앓아 누운 아내와 함께 힘겹게 살면서도 가장 고통을 느끼는 것은 현재 아미농악의 전수관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미동 언덕배기에 좁디좁은 사무실 한간밖에 없는 형편이어서 연습은 이웃 초등학교 운동장을 겨우 빌려 쓰거나 그나마 행사가 겹치면 연습조차 중단될 때가 허다하다는 것. 농악단원들이 이리저리 밀려 다니는 신세가 아직도 전세방 신세를 면치 못하는 자신의 생활 형편과 똑같다며 쓴웃음 짓는다. 아미농악 자체 운영비도 못 받고 있어 사무실 관리비까지 개인 생계보조금에서 제하는데 다 떼고 나면 3개월분 총수입이 고작 6만4천원. 지방문화재 기능보유자에게는 의료카드조차 발급해주지 않아 『앉아 누울 형편도 못된다』고 하소연이다. 주름진 손마디에 움푹 팬 검은 손등으로 장구채를 잡아도 요즘은 옛날같이 신이 안 나고 기력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고. 조옹이 현재 가장 소중하게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유일한 것은 노인우대증. 고깔쓰고 버드나무를 깎아 만든 장구를 가슴에 안고 두둥둥 장구채를 잡아도 어딘가 쓸쓸한 기운이 얼굴을 감싸고 있는 것은 비단 사라져가는 민속에 대한 서운함만은 아니다. 일을 하던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한바탕 뛰고 춤추며 놀던 아득한 옛 추억속의 풍요로움은 8순 노인에게 있어 영원히 장구를 메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김순(金珣) 기자>

    <출처-부산일보 1982년 08월 07일 07면>

주요활동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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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활동사항 - 년도, 활동내역, 비고을(를) 상세히 나타낸 표입니다.
년도 활동내역 비고
1980 02.20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6호 부산농악 장구 예능보유자 인정
10.29-31 제2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참가
 
1977 10.26 제1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참가 (수원공설운동장)  
1966 진주 삼천포농악단 창단 및 활동  
1953 아미농악단 창단 단원  
진주 솟대쟁이패 단원 활동  
별세  

해당장르

  • 장르 문화예술인 > 전통예술인 > 전통예술 > 부산농악
  • 역할 무형문화재
  • 키워드 #전통예술인#무형문화재#부산농악#조성현

주요작품

교육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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