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아카이브

HOME 예술아카이브 기본DB

해당메뉴 명

메뉴 열기닫기 버튼

기본DB

문장원

문화예술인 전통예술인 전통예술 동래야류

NO.AGD329최종업데이트:2015.12.03

자료등록 : (재)부산문화재단 본 내용은 등록자에 의해 작성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프로필

문장원

  • 분류문화예술인
  • 이름문장원 / 文章垣 / Moon jang won
  • 생년월일 1917년 08월 15일
  • 출생지 부산, 동래구 안락동
  • 사사 (師事) 이두상, 김기조, 이규삼
  • 데뷔년도 1934년
  • 데뷔작품 동래야류 마부역
  • 홈페이지 http://www.pusanminsok.or.kr/

인물소개

  • 문장원(文章垣)


    ○ 부산춤의 역사인 '마지막 동래 한량'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 명예보유자인 문장원은 1967년 동래야류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은 1세대 전승자다. 동래학춤과 동래한량춤 등이 부산시 지정 무형문화재로 인정되고 이를 복원하는데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문장원의 삶 그 자체가 부산 춤의 역사였다.

    '소리는 전라도, 춤은 경상도, 그중에서도 제일은 동래'란 말은 바로 문장원을 두고 한 말이나 다름없다. 1990년대 초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지팡이를 짚고 다녔지만, 춤판에 오르면 언제 앓았느냐는 듯이 춤으로 판을 압도했다. 노경의 경지에 오른 그의 춤은 슬쩍 팔 하나만 들어 올렸을 뿐인데 백 근의 무게감이 전달됐고, 가볍게 한 발 내디뎠을 뿐인데도 감동이 전해졌다. '노름마치'를 쓴 진옥섭은 고인의 춤을 '구순의 텅 비운 몸으로 여백과 만나는 한 폭의 세한도'라고 했다.
    일제 치하에선 민족성을 고취한다는 이유로 금지당하고, 해방 직후에는 극심한 사상적 대립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으로 연행되지 못하던 동래야류가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문장원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 그래서 그는 흔히 동래야류의 산증인 혹은 동래야류의 역사로 불린다.

    동래에서만 6백년 넘게 살아온 집안 내력으로 인해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보고 익힌 춤들은 그의 흥미와 자질과 어울리면서 문장원을 평생 춤꾼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의 전통예술에의 입문은 다소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다. 문장원이 우리 전통예술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25년 동래 제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동래고등보통학교 진학시험에 낙방하면서부터이다. 두 번이나 동래고보에 낙방한 그는 동래학술강습소 고등과에 입학하게 된다. 그는 이때부터 친구들과 함께 기방을 출입하면서 자연스레 전통춤을 접하기 시작했다. 열일곱살이던 1934년 동래 줄다리기에서 소사령기를 흔드는 역인 소사령 총사와 동래야류 동서부 합동놀이에서 팔선녀의 마부역을 맡아 단역이나마 동래들놀음에 직접 참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때마침 시작된 일제의 전통문화 말살정책으로 중단된 동래야류는 65년 복원될 때까지 전통의 단절을 겪어야 했다. 지배계급에 대한 조롱과 질타가 풍자의 방식을 이용해 벌어지는 동래야류의 연행방식이 관중들을 흥분시키고 민족성을 고취한다는 것이 일제의 탄압구실이었다. 해방과 함께 동래들놀음은 1946년 한때 재연되기도 했으나 이어진 한국전쟁과 좌우대립의 사상적 혼란으로 다시 묻혀버렸다.

    동래들놀음은 60년대 들어 군사정권이 우리 전통문화 복원정책을 펼치면서 단절됐던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으며 어릴 적부터 이를 몸소 익혀왔던 문장원을 필연적으로 그 현장으로 이끌어냈다. 65년 5월 동래 기영회가 주축이 되어 펼쳐진 동래야류 복원사업에 박덕업, 양세주, 노진규, 이남선 등의 원로와 함께 참여해 연출을 맡았다.

    그해 8월 부산일보사 프레스홀에서는 문장원(원양반과 영감역)과 박덕업(말뚝이역) 노진규(차양반역) 김영현(모양반역) 이남선씨(제대각시) 등이 참가한 가운데 시범공연이 펼쳐져 마침내 동래들놀음이 복원되기에 이른다. 같은 해 10월 서울 덕수궁에서 열린 제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동래야류는 최우수상인 대통령상을 차지, 그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그는 동래야류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가 되면서 박덕업, 이남선씨와 함께 인간문화재(동래야류 원양반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인간문화재 지정 이후에도 동래야류의 전승에 힘을 아끼지 않았던 그는 66년 이전의 동래민속연구회를 사단법인 민속예술보존협회로 이름을 고쳐 체계적인 전승과 보급이 가능하도록 기틀을 마련했다.


    ○ 동래 한량춤의 명수 문장원

    “통영갓 쓰고 도포차림인 문장원이 연행판에 나와 선다. 양팔을 든 흰 도포 자락이 파르르 떨린다. 부채를 든 오른팔이 서서히 올라갔다가 무릎을 치고 다시 양팔 사위로 이어지면서 버선 디딤으로 옮아간다. 왼팔을 허리에 얹고 부채 쥔 팔을 조용히 머리 뒤로 치켜들어 살푼 뛰면서 배김사위를 매긴다. 결코 서두르지 않는 춤사위들이 조용히 반복된다. 부채 든 팔과 어깨선들이 유연한 허리선과 더불어 정·중·동을 받쳐준다. 맺고 푸는 사위들이 동(動)에 얹혀서 즉흥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더딘 듯 품새가 깊은 속내의 장중한 부드러움으로 변해 가볍게 풀어진다. 흥에 겨운 신바람도 몸속 깊이 삭여서 손끝으로 풀어낸다. 가볍게 디디며 내미는 버선발이 천근 무게를 실은 듯 긴장을 머금고 눈이 부시다. 금강공원의 나뭇잎이 움직임을 멎고 새들이 숨을 죽인다. 아흔 살 노인네의 춤이라고 믿기에 어려운 춤사위이다.”(주경업)

    동래한량춤 명수 문장원은 며칠을 앓아눕더라도 일단 춤판에 섰다 하면 몸속 깊이 우러나는 신명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춤의 마력을 가진 사람이다. 동래에는 망순계라는 큰 계모임이 있어 봄 가을로 정과정 주변에서 질펀한 놀이판을 벌여 끼 많은 동래한량들은 그들의 장기를 한껏 자랑해왔다. 멋진 춤판이 벌어지고 소리판이 무르익을 때 구경꾼의 눈을 황홀경으로 몰아넣는 것은 단연 동래한량춤이었다. 그 춤 한가운데 문장원이 서 있었다.

    "남자는 보통 강한 춤이 제격이지만 나는 고요하고 부드러운 춤이 좋아. 배기더라도 부드럽게 배기는 것이 좋단 말이야. 어쩌면 그것이 내 춤의 특징이 될지도 모르지만…."


    ○ 동래 덧배기춤의 명수 문장원

    문장원은 동래에서만 26대째 살아온 문익점공의 26대손이다. 증조부 때부터 큰 포목상을 하여 부러울 것 없이 큰소리깨나 치던 토반집안에서 태어났다. 일본유학까지 보내려던 외아들이 공부는 뒷전이라서 동래고보 시험에 두 번이나 낙방을 하고도 얄궂은(?) 천석꾼 사촌 또래들과 어울려 기방출입부터 하니 집안 어른들은 초비상이 걸렸단다. 그 시절 기방의 출입은 돈 있다고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어서 먼저 풍류와 멋을 알아야만 했다.
    기생들의 기예수업도 높아서 악가무(樂歌舞)는 물론이고 시서화(詩書畵)에도 높은 경지를 이루던 시절이었다. 소년 문장원이 이때 만난 분들이 김기옥(말뚝이춤, 아버지 친구), 김귀조(양반춤), 이규태(말뚝이), 신재근(양반춤)들이었다니 그저 소리가 좋고 춤이 좋아 나이와 관계없이 교분을 터고 멋진 춤을 배웠던 것이다. 강창범(가야금, 아쟁, 북), 강태홍(가야금),최창술(판소리) 등 당시 부산 국악계의 쟁쟁한 교방 기악선생들의 반주로 추는 춤은 신바람이 났으리라. 이 시대 최고로 꼽히는 선생의 허튼춤 덧배기춤은 이 시절 최소학한테서 배웠다.
    “자지러지다가 숨을 멎고 다시 잇는 동래 굿거리 장단에 맞추어 오른팔과 다리가 번쩍 치켜들리면서 왼손이 등허리에 닿았다가 배기면 멋진 덧배기춤이 엮어진다.”

    당시 동래기생의 명성은 대단했다. 오죽했으면 평양기생 치마폭은 벗어나도 동래기생 치마폭에는 묻혀 버린다는 말까지 생겼을까. 그런 예기들을 30년 넘게 거느렸으니 얼마나 대단한가. 그의 수첩에 적힌 동래기생만 200명에 달했다. 그는 춤추는 예기들의 버선발 움직임 하나 놓치지 않았고 결국 '입신의 경지'에 들었다. 팔을 가만히 들어올려도 멋과 흥이 뚝뚝 흐르고, 그 추임새는 풍류의 진정한 의미를 절묘하게 풀어낸다.

    "(입춤은) 첫 발짝을 떼는 춤이고 일생을 송두리째 바쳐 완성해 가는 춤이다. 그의 입춤은 텅 비운 몸으로 나아가 여백과 만나는 한 폭의 세한도다. 걷노라면 자연스레 밟히는 엇박은 관객의 허리를 곧추 세우고 남은 폐활량을 한데 모아 추임새를 뱉게 하니. 보라! 마지막 동래한량이다."
    "흔히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는 헐뜯고 자신의 이야기는 과대포장해 미화합니다. 그러나 저는 거짓말을 안 합니다. 나 같은 한량재인이 있어 우리 문화의 유산인 전통민속이 맥을 이어가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하는 문장원은 그동안 직계 제자만 60여명을 배출한 올곧은 예인이다.


    글쓴이 : 최찬열(춤 평론가/부산문화정책연구소 소장)


    <경력 및 이력>

    1931 15세 동래제일공립보통학교 졸업
    1932 동래학술강습소 고등과 1년 수료, 동래음악연구회 참가
    1934 18세 <동래야류>에 애기탈로 처음 참가
    1934 이후 동래의 민속놀이에 참여하고, 놀음방을 드나들면서 김귀조(金貴祚, 1886~1956), 서부의 이두상(李枓祥, 1884~연도미상), 예기 최소학(崔素鶴, 1913~연도미상)에게 사사
    1940~1942 대련에서 데이치쿠(帝蓄)레코드사 출장원
    1944 부산부 노동과 취직, 일본인 주임과 다툰 후 10월에 징용
    1945. 9. 21 해방으로 오사카제련소에서 귀국
    1946. 3. 1 3·1절 기념 <동래야류> 부활 공연 참가
    1947 부산시 세무과 입사
    1948 부산시 세무과 징수계장
    1953 동래산업주식회사 상무로 입사
    1954. 3 한국고공품주식회사 취체역 부사장 취임
    1956. 7 한국고공품주식회사 경남지사장 취임
    1965 ≪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동래야류> 참가
    1966 ≪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동래야류> 시연 (남산 야외음악당)
    1967 ≪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동래야류> 시연 (부산)
    1967. 12. 21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의 ‘원양반’과 ‘가면 제작’으로 예능보유자 지정
    1968. 5 ≪제1회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 발표공연≫ (동래금강공원)
    1969. 3. 24 (사)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이사 취임
    1971. 2 ≪1회 부산민속연날리기 대회≫ 개최
    1971. 10. 3 ≪1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동래지신밟기> 참가 (전주시 공설운동장)
    1972. 10. 3 ≪1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동래지신밟기> 참가 (대전시 공설운동장)
    1976. 10. 3 ≪1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동래학춤> 참가 (진주시 공설운동장)
    1977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가 복원한 <동래학춤>과 <동래지신밟기>가 부산시 지방무형문화재 3호와 4호로 지정
    1981. 10. 24 ≪2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동래학춤> 참가 (인천)
    1982. 4. 10 로타리클럽 연차행사에 <동래학춤> 초청공연
    1982. 12. 8 부산시립무용단 주최 ≪부산민속무용제≫에 <동래학춤> 공연
    1983. 4. 22 대만 고응시장 초청으로 <동래야류>, <동래학춤> (고응)
    1983. 4. 22~5. 1 대북, 대남, 대중 4개 도시 공연
    1983. 6. 25 한국일보 주최 ≪1회 명무전≫ <동래입춤> 참가 (국립극장)
    1983. 8. 18~23 일본 시모노세키 시장 초청 마관제에 <동래야류>, <동래학춤> 공연
    1984. 1. 21 한국일보 주최 ≪2회 명무큰잔치≫에 출연 (국립극장)
    1985. 10 ≪2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동래학춤> 참가 (강릉)
    1986. 1. 1 동래야류보존회 회장 취임
    1986. 7. 26 일본 구마모도 연날리기대회에 참가 (아소시)
    1986. 9. 11 ≪86아시아경기대회 경축행사≫에 참가
    1986. 10. 1 <동래야류>, <동래학춤>, <동래지신밟기> 공연 (충렬사, 구덕운동장,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놀이마당)
    1986. 11. 17 ≪이윤자 한국무용발표회≫ 찬조출연
    1987. 5. 3~5. 5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세계 평화를 희구하는 꽃잔치≫에 <동래학춤>, <동래고무>, <동래야류> 공연
    1987. 10. 5 ≪부산시민의 날≫ 행사 <동래 줄다리기> 참가
    1988. 8. 18 ≪올림픽 성공 기원축제≫에 <동래야류>, <동래학춤> 참가
    1988. 9. 28 올림픽 민속공연 <동래야류> (서울 석촌 놀이마당)
    1988. 10. 30 ≪올림픽 성공 축하공연≫에 <동래야류> 출연
    1989. 7. 2 롯데 자이안트 초청공연 <동래학춤>(사직야구장)
    1989. 10. 2 ≪동래JC향토문화에술제≫에 <동래학춤>, <동래지신밟기> 공연
    1989. 10. 29 ≪서울올림픽 1주년 기념 경축공연≫에 <동래야류> 공연
    1990 ≪KBS 명무전≫에 출연
    1990. 10. 9 일본 하마다 시장 초청 <동래야류>, <동래학춤> 공연
    1990. 12. 7 KBS-TV ‘한국의 미’에 <동래야류>, <동래학춤>, <동래지신밟기> 녹화출연
    1991. 5. 25 ≪동래구민의 날≫ 축하공연에 <동래야류>, <동래학춤>, <동래지신밟기> (사직 보조 경기장)
    1991. 8. 3 일본 NHK방송국, 부산 KBS방송국 양국문화교류공연 <동래학춤> 참가
    1991. 9. 17 유엔 가입 경축공연 <동래야류> 외 2개 종목
    1992. 4. 12 <동래야류> 부산 10가지 자랑 순방공연 (부산시 주최)
    1992. 9. 25~9. 26 ≪1회 전국무용제 축하공연≫ <동래야류>, <동래학춤>, <동래지신밟기>
    1992. 10. 8 ≪13회 부산시민의 날 민속축제≫에 <동래학춤>, <동래지신밟기> 출연
    1993. 5 ≪24회 중요무형문화재 인간문화재 중앙 발표공연≫ 참가
    1994. 5. 21 ≪25회 중요무형문화재 인간문화재 중앙 발표공연≫ 참가
    1996. 5. 5 <동래야류> 창설 31주년 기념 공연
    1996. 10. 18 ≪3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동래한량춤> 참가
    1997. 2 (사)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이사장 취임
    1997. 5 ≪28회 중요무형문화재 인간문화재 중앙 발표공연≫ 참가
    1998. 9. 19 사단법인 한국무도(댄스스포츠) 교육협회 고문
    1998. 10. 16 ≪3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동래한량춤> 참가
    2000. 4. 19~4. 22 ≪四人四色 나흘간의 춤 이야기≫ 출연 (국립극장)
    2001. 3. 20『동래들놀음지』 1000부 재발행
    2002. 9. 6~9. 7 ≪男舞, 춤추는 처용아비들≫에 <동래입춤> 공연 (호암아트홀)
    2002. 9. 30 ≪5회 서울세계무용축제≫에 <동래입춤> 공연
    2003. 10. 4~10. 5 ≪동래별곡≫에 공연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놀이마당)
    2004. 1. 31 부산지 지정 무형문화재 <동래학춤>, <동래고무> 반주음악 CD제작
    2004. 10. 15 ≪男舞, 춤추는 처용아비들≫ 통영 공연에 <동래입춤> 출연(통영문화예술회관)
    2004. 11. 2~11. 3 ≪男舞, 춤추는 처용아비들≫ 울산 공연에 <동래입춤> 출연 (울산광역시문화회관)
    2004. 11. 16~11. 17 ≪男舞, 춤추는 처용아비들≫ 고양 공연에 <동래입춤> 출연 (고양시 덕양문예회관)
    2004. 12. 20 ≪男舞, 춤추는 처용아비들≫ 순천 공연에 <동래입춤> 출연 (순천시문예회관)
    2005. 3. 8 ≪男舞, 춤추는 처용아비들≫에 <동래입춤> 출연 (LG아트홀)
    2005. 10. 2~10. 4 ≪46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 <동래학춤> 참가
    2005. 10. 8~10. 9 ≪전무후무(全舞珝舞)≫에 <동래입춤>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2005. 12. 27 부산시 무형문화재 14호 <동래한량무> 예능보유자 지정
    2006. 11. 현재 사단법인 부산민속보존협회의 이사장 , 중요무형문화재 18호 동래야류보존회 회장 , 중요무형문화재 18호 <동래야류> 예능보유자 , 부산시 무형문화재 14호 <동래한량춤> 예능보유자

    [수상경력]
    1965. 10. 31 ≪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동래야류> 대통령상
    1968. 7. 5 부산 눌원문화상 <동래야류> 단체상
    1970. 12. 31 전국문화예술 공로상 (문화공보부 장관상)
    1971. 10. 30 ≪1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동래지신밟기> 단체 장려상, 개인상
    1972. 10. 3 ≪1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동래지신밟기> 문화공보부장관상
    1976. 10. 3 ≪1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동래학춤> 단체 장려상
    1978. 10. 31 ≪1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동래지신밟기> 장려상
    1980. 10. 20 ≪부산시민의 날≫ 공로상 부산시장상
    1981. 10. 24 ≪2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동래학춤> 장려상
    1985. 10 ≪2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동래학춤> 장려상
    1993. 11. 3 3회 부산늘솔희 문화상
    1996. 10. 18 ≪3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동래한량춤> 문화체육부장관상 수상
    1998. 9. 4 ≪3회 공주아시아 1인극제≫에 1회 소민연극상 수상
    1998. 10. 16 ≪3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동래한량춤> 문화부장관상, 개인지도상
    1999. 5. 13 2회 PSB 부산방송국 문화재단 예술부문 문화상
    1999. 12. 2 제129호 옥관문화훈장 수상
    2000. 10. 4 부산광역시 16회 자랑스런 시민상 대상
    2005. 4 ≪46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동래학춤> 동상 수상

    <참고문헌>

    박진숙, <부산 춤의 역사인 '마지막 동래 한량'>, 부산일보, 2012년 8월 23일.
    주경업, <동래 한량춤 명수 문장원>, 부산일보, 2009년 1월 30일.
    주경업, <동래 덧배기춤 명수 문장원 옹>, 부산일보, 2009년 1월 11일.
    노정현, <소석 문장원,인간문화재,평생춤꾼으로 `우뚝`>,부산일보, 2009년 2월 14일. '마지최혜규, <'마지막 동래한량' 입춤 명인 문장원 선생>, 부산일보, 2009년 1월 11일,
    이상헌, <'노름마치' 속 동래입춤>, 부산일보, 2009년 1월 11일.



    중요무형문화제 제18호 동래야류(원양반)인간문화재 지정
    사)부산민속예술보존회 이사장 역임
    부산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한량춤 보유자

    <문장원의 작품세계>
    민속극- 동래야류
    민속춤- 동래학춤
    민속놀이-동래지신밟기
    전통춤- 입춤, 동래한량춤

학력사항

모바일환경에서는 좌우로 이동하여 내용(표)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학력사항 - 학습기간, 학교, 전공, 학위, 비고을(를) 상세히 나타낸 표입니다.
학습기간 학교 전공 학위 비고
1932. 3. 25 동래학술 강습소 고등과 1년 수료
1931. 3. 5 동래제일공립보통학교 졸업

주요활동사항

모바일환경에서는 좌우로 이동하여 내용(표)을 보실 수 있습니다.

주요활동사항 - 년도, 활동내역, 비고을(를) 상세히 나타낸 표입니다.
년도 활동내역 비고
2012 별세  
2010 부산광역시 전통예술부문 문화상 수상  
2008 3월
부산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한량춤(보유자)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원양반) 보유자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보존회 회장 재직
(사)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이사장 재직
 
2007 3~10월
부산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한량춤 공연, 동래한량춤 강습
 
2005 3월 8일
"남무" 춤추는 처용아비공연-LG아트홀

5월 8일
제40회 동래야류 정기공연

10월 2~4일
제46회 한국민속예술축제 참가(경기도 포천)
부산광역시 대표 "동래학춤"출연- 동상수상

10월 8~9일
"舞珝舞"-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입춤 문장원/태평무 강선영/ 승무 이매방/ 민살풀이춤 장금도/ 교방굿거리춤 김수악/ 양산학춤 김덕명

12월 27일
부산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한량춤(보유자)지정
 
2004 1월 31일
부산시 지정무형문화재 동래학춤, 동래고무 반주음악CD제작

5월 4~5일
제39회 부산민속예술축제 개최

10월 15일
"남무" 춤추는 처용아비공연-통영문화예술회관

11월 2~3일
"남무" 춤추는 처용아비공연-울산광역시 문화회관

11월 16~17일
"남무" 춤추는 처용아비공연-고양시 덕양 문예회관

12월 20일
"남무" 춤추는 처용아비공연-순천시문예회관

12월 2~15일
인도, 이집트 동래야류, 동래학춤 해외공연
 
2003 10월4~5일
2003무대공연작품 동래별곡 공연

11월 12~23일
동래야류 미국동부 4개도시 순회공연(시카고, 뉴욕, 워싱턴, 버팔로)
 
2002 9월 6일~7일
호암아트홀 " 男舞, 춤추는 처용 아비들" 동래입춤 공연

9월 30일
제5회 서울세계무용축제 SIDance2002 동래입춤 공연
 
2001 3월 20일
동래들놀음 지 재발행 1,000부
 
2000 4월 19일~22일
국립극장 대극장 四人四色 나흘간의 춤 이야기 공연
 
1999 5월 13일
제2회 PSB부산방송국 문화재단 예술부문 문화상 수상
 
1998 9월 4일
제3회 공주 아시아 1인극제 제1회 소민연극상 수상

9월 19일
(사)한국무도(댄스스포츠)교육협회 고문

10월 16일
제3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동래한량춤 문화관광부 장관상 수상, 개인지도상 수상
 
1997 2월
(사)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이사장 취임

5월
제28회 중요무형문화재 인간문화재 중앙발표공연
 
1996 5월 5일
동래야류 창설 제31주년 기념공연
 
1994 5월 21일
제25회 중요무형문화재 인간문화재 중앙발표공연
 
1993 5월
제24회 중요무형문화재 인간문화재 중앙발표공연
 
1991 8월 3일
일본 NHK방송국, 부산KBS방송국 양국 문화교류(동래학춤) 공연
 
1990 10월 9일
일본 하마다 시장 초청(동래야류, 동래학춤) 공연
 
1987 5월 3일~5월 5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의 꽃잔치 참석
중앙일보 초청(동래야류, 동래학춤, 동래고무) 출연
 
1986 1월 1일
동래야류보존회 회장취임

7월 26일
일본 구마모토 연날리기 대회 참석

11월 17일
제75회 무형문화재 정기공연 이윤자 한국무용발표회 찬조출연
 
1984 1월 21일
한국일보 주최 제2회 국립극장 명무전 출연

12월
동래야류지 발간
 
1983 4월 22일~5월 1일
대만 고웅시장 초청으로 부산시 공보담당관 인솔
고웅, 대북, 대남, 대중 4개 도시를 일본 동아예술단과 공동 출연(동래야류, 동래학춤)

~5월
제28회 중요무형문화재 지방발표공연

6월 25일
한국일보 주최 제1회 국립극장 명무전 출연

8월 18일~23일
일본 하관시장 초청으로 부산시 문화재계장 인솔(동래야류, 동래학춤) 공연
 
1975 5월~2003년 6월 29~30일
제28회 (사)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주최 전국 전통예술경연대회 개최
 
1970 5월~
제1회 중요무형문화재 인간문화재 발표공연
 
1969 3월 24일
사)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이사 등록
 
1968 5월~
제1회 무형문화재 발표공연
 
1967 10월 31일
제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동래야류) 시연

12월 2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원양반) 보유자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 인간문화재 지정 (문공부 장관)
 
1966 10월 31일
제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동래야류) 시연
 
1965 5월 1일
동래야류 민속예술연구회 설립

10월 31일
제 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동래야류 대통령상 수상
 
1956 7월
경남지사장 취임
 
1954 3월 1일
한국 고공품 주식회사 취체역 부사장 취임
 
1951 5월 10일
동래산업 주식회사 상무이사 취임
 
1948 4월 25일
부산시 세무과 근무

10월 30일
부산시 동래구청 승격으로 세무과 징수계장 임명
 
1947 6월 30일
부산시 동래출장소 세무계 근무
 
1940 10월 30일
대련 축음기 주식회사 출장원 입사
 
1934 2월
동래야류 동서부 합동놀이에 팔선녀의 마부역
 

해당장르

  • 장르 문화예술인 > 전통예술인 > 전통예술 > 동래야류
  • 역할 무형문화재
  • 연주악기/음악 동래야류
  • 키워드 #전통예술인#무형문화재#동래야류#문장원

교육활동

    등록된 교육활동이 없습니다.
자료등록:(재)부산문화재단 - 본 내용은 등록자에 의해 작성된 내용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