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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세 번째 문, 만덕

문화예술작품 시각예술작품 사진

NO.APD7807최종업데이트:2016.01.27

자료등록 : (재)부산문화재단 본 내용은 등록자에 의해 작성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프로필

  • 제·작자 이준욱 [사진]
  • 작품제목 <문> 세 번째 문, 만덕
  • 작품장르 문화예술작품 > 시각예술작품 > 사진
  • 발표일 15.11.13~27
  • 발표지역 북구
  • 발표주체 524

작품설명

  • < 기획 의도 >

    부산은 한국의 근대를 집약시킨 공간이다.
    근대 이전의 부산은 왜적의 침략에 맞서야 했고, 일제 치하에서는 일제 대륙 침략의 첫 출발지가 되었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한국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피난민들이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모여들었고 그들은 생존을 위해 산으로 산으로 집을 짓고 올라가 산복도로를 형성하였다.
    60,70년대 눈부신 경제 개발로 부산은 많이 발전했으나 아직도 산복도로에는 한국 전쟁 당시 지어졌던 무허가 집들에는 경제 발전의 주역들이 살고 있다.
    그 당시에 지어졌던 집과 마을이 이제 수명을 다하여 '뉴타운 건설'이라는 이름으로 점점 사라지고 있다. 눈부신 경제 발전의 이면에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문'이라는 소재를 통해 기록하고자 한다.
    <문> 프로젝트는 2013년 '기장의 문', 2014년 '영도의 문'을 기록하였고 2015년에는 장소를 북구로 옮겨 '만덕의 문'을 기록하고자 한다.

    < 사업 목적 >

    만덕이라는 지명은 먼저 고대 시대에 이 마을에 세워졌던 만덕사라는 절이름에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 중략 -
    그런데 이 곳 만덕동 뒷산에 임진왜란때 만명이 넘는 사람이 피난해 와서 있던 곳이라서 만덕동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만덕사를 지나 동래로 넘어가던 만덕고갯길에는 도둑들이 들끓어 여기를 오르내리던 장군들의 물품을 털어 갔는데 이 고개를 넘으려면 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넘어야 했기 때문에 만등고개라고 했는데 그것이 만덕으로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 북구 구청 홈페이지 '만덕동 이름 유래'에서 발췌

    기존에 작가가 사진으로 남겼던 '기장'과 '영도'도 근현대사를 응축시킨 역사의 현장이었듯이 '만덕' 또한 수많은 왜침 속에서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이 겪었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과거에는 침략, 노략질 등을 피해 도망쳤고, 지리적으로는 도둑들이 많아서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망 갔던 곳이었다. 현재는 반대로 그 곳에 편안하게 정착하고 살고 있지만 '뉴타운'이라는 이름 아래 또 다른 형태의 '수탈'을 당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발전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포장될 수 있지만 정들었던 고장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픈 기억이 될 수도 있다. 부산은 현재 곳곳에 뉴타운 건설이 진행되고 있고 원주민과 지자체와의 갈등과 개발을 원하는 주민과 개발을 원하지 않는 주민들 간의 갈등이 공존하는 곳이다. 보상을 받고 서둘러 그 마을 떠난 사람들과 끝까지 남아서 버틸려는 사람들이 만든 마을의 모습은 을씨년스러우면서도 저녁이 되면 노란 불빛이 집 안에서 반짝이는 그런 공간이 되었다. 사람이 드나든 집이라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물건은 다름 아닌 '문'이다. 문 틈에 자라난 잡초, 거미줄, 퇴거를 뜻하는 경고문구 등이 한 개인, 마을의 역사를 서서히 단절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 기억들을 과거에는 짧은 글로 기록 되었다면 작가는 '사진'이라는 도구를 통해 기록하고자 한다. 그들이 수년간 드나 들었던 '문'을 기록함으로써 사라져가지만 잊혀지면 안 되는, 그 무형의 가치를 남기는 것이 이 사업의 목적이다.

주요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