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1장 서론
제2장 예술-기술 융합의 이해와 정책 현황
제3장 예술-기술 융합 지원정책 관련 주요 사례분석
제4장 예술-기술 융합 지원정책 심층 분석
제5장 예술-기술 융합 지원정책 개선방안
□ 연구배경
가. 예술과 과학, 그리고 이 두 개념을 연결하는 기술
ㅇ 흔히 예술과 과학은 서로 차별화된 속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사실 예술이 미학적인 순수예술로 개념화된 17-18세기 이전부터 예술은 과학적 성과를 바탕 으로, 과학은 예술가적 상상력과 미적 창조의 원리를 바탕으로 함께 발전해 왔다(이정은· 김상욱·박연숙, 2024). 예를 들어, 인간의 눈에 3차원적으로 보이는 물체나 공간을 2차 원적 평면 위에 표현하기 위해 원근법과 소실점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활용하여 회화 작품을 창조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해부학에 대한 이해는 사람의 몸을 더욱 생동감있 게 표현하는 그림이나 춤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렇듯 예술은 이성적 합리성에 뿌리를 둔 과학과의 연계 속에서 표현의 방식과 기법(technique)을 발전시켰고 더욱 창의적인 방식으로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방향들을 모색해왔다. 한편 예술 또한 과학의 발전에 있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예로, 예술은 과학기술 의 발전이 낳을 수 있는 윤리적 부작용의 문제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과학이 도출할 수 있는 결과들에 대해 미리 상상하거나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게 도와주기도 했다. 그래서 예술은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찬양하거나 극단적 으로 비판하는 태도를 완화시켜줄 수 있는 역할을 해왔다(홍성욱, 2005). 이렇듯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발전하는 관계 속에서 공생해 온 예술과 과학을 연결 시키는 중요한 고리가 바로 기술(technology)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기계 기술은 사회·경제 전 영역에 거대한 변화를 불러일으켰고 인간에게 필요한 재화의 생산 방식이 기계 기술을 통해 새로워졌다. 당시 기술은 예술에도 큰 영향을 미치면서 작품이 갖고 있던 유일성(uniqueness), 독창성(orginality), 현장성(liveness)을 뛰어넘어 대량생산과 복제를 통한 예술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또 예술가는 기술을 활용하여 관객의 상상을 자극할 수 있는 새로운 작품 생산 방식들을 탐구하고, 관객은 기술력이 적용된 작품들을 통해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대 표적인 예로 뉴미디어 아트가 전자매체, 컴퓨터, 멀티미디어, 정보기술, 사이버스페이스 등의 첨단 디지털 매체기술을 사용하여 작품의 새로운 시각적 표현 방식을 선보였고, 관 람자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경험을 누렸다(심혜련, 2010; 이정 은·김상욱·박연숙, 2024). 이렇듯 기술의 등장은 이제까지 예술을 이해하고 정의했던 법 칙들을 초월하여 새로운 작품을 통한 예술의 진화를 추구하게 해줬다. 그리고 예술은 기 술을 만나 새로운 상상력과 표현 방식의 원리를 찾게 되면서 점차 새로운 기술과 과학의 발견을 작품의 새로운 소재나 재료로 사용하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나.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 변화가 예술에 미치는 영향
ㅇ 산업혁명 이후 수 세기가 지난 현재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세계 경제포럼 회장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은 2016년 다보스 포럼에서 “4차 산업혁 명은 인터넷, 컴퓨터 중심의 3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물리적, 디지털, 생물학적 영역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들의 융합이 이루어지는 디지털 혁명”으로 정의하였다(클라우스 슈 밥, 2016).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성’, ‘초지능성’, ‘융합’에 기반하여 모든 것이 상호연결된 지능사회를 추구하면서 이제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빠른 속도의 획기적 인 기술 변화와 발전으로 전 산업 분야의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기술인 빅데이터(Big data statistical analysis), 인 공지능(Artificial Intellegence, AI),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 IoT), 로봇공학 (Robotics), 3D 프린팅(Additive manufacturing)등이 우리 사회와 인간의 삶의 영역 에 미치는 영향은 꾸준히 커지고 있으며, 이는 예술의 창작에서부터 향유의 전 과정에도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2022년 8월, 인공지능 도구인 ‘미드저니(Midjourney)’ 로 제작된 작품이 미국 콜로라도주의 미술대회에서 ‘디지털아트·디지털합성사진’ 부문 1등을 받았고, 인공지능이 쓴 단편소설이 일본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예술과 기술의 융 합이 인간보다 더 뛰어난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은 이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 되 었다(임희윤, 2023). 이러한 예술과 기술의 만남은 예술의 대중 접근성과 참여를 강화시키고 기술에 대한 인간주의적 성찰을 가능케 하며 기술을 통해 예술의 사회적 영향력을 제고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는 새로운 함의를 제공한다(박신의, 2023). 반면,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예술계에 가져오는 혼란이나 갈등도 매우 크다. 가장 흔히 나타나는 현상은 예술과 기술이 융합된 결과물에 대해 이를 진정한 예술 작품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의 혼란이다. 만일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유명한 미술전에서 1등을 했을 경우 ‘기술은 인간이 작동한 예술 표현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과 ‘인간 이 고유하게 가진 창의성을 기술이 대체할 수 없다’는 주장은 항상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이제까지 작품 생산의 주체였던 인간, 즉 예술가의 주된 역할을 기술이나 기계가 대신할 수 있게 되면서, 기술이 생산한 결과물의 예술적 가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해당 과정에서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원화, 2020). 최근 영국 공연계에서는 챗GPT 상용화 이후 예 술가들의 해고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가 보조 작가의 역할을 챗GPT가 대체하 고 배우들의 목소리 더빙이나 공연 포스터 디자인도 인공지능이 수행하게 되면서 더 이 상 작가나 배우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 이에 따 라 영국 공연계는 성명서를 통해 인공지능을 예술가들의 위협 존재로 인식하고 예술가들 의 역할 제고를 위한 노력을 더하고 있다. 또 다른 현상은 기존에 창작활동이 예술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에 비해 예술과 기 술이 융합된 창작활동은 다양한 참여자가 활동하는 공동제작 방식이 일반적이란 점이다. 특히 예술과 기술의 융합 활동은 예술창작집단 뿐만 아니라 기술자, 과학자, 법조인, 교 육가, 시장 유통 및 매개 관계자 등 이제까지 예술과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전문가 들과의 협업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각 참여자들이 기존에 우선시했던 활동 방식이나 추구하는 가치가 상이하다 보니, 예술-기술의 융합 과정에서 협업이 어렵고 각 주체들 간 서로의 생각과 활동을 이해하거나 소통하기가 어려운 문제점들이 실제 발 생하고 있다. 이는 곧 다양한 참여자들이 예술-기술 융합을 위해 서로 상호작용하고 교 류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음에 따라 하나의 ‘생태계’로서의 접근 의식이 부족한 결과로 간주될 수 있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1).
다. 국내 예술-기술 융합 활성화를 위한 지원정책의 개선 방안 모색 필요
ㅇ 예술과 과학의 상생적 만남과 첨단기술의 발전에 의한 예술 창작 및 향유 방식의 변화 는 이미 우리나라 예술계에서도 쉽게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이다. 또한 예술의 새로운 표 현 방식을 위해 기술을 단순히 도구로써 접목시키는 차원을 넘어, 예술과 기술의 상호작 용과 융합을 통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산물을 탄생시켜 예술의 창의성을 확 장시키는 작업을 위한 공공 및 민간의 지원정책도 다각도로 시행되었다. 대표적으로, 문 화체육관광부는 2003년부터 문화산업에 디지털 기술, 바이오 기술 등을 접목시킨 문화 기술(CT)의 연구개발 계획을 추진하였고, 서울문화재단은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 년간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지원사업을 통해 순수예술 분야와 기술의 융합형 창·제작 지원을 시도하였다. 또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17년부터 ‘아트앤테크 지원사업’을 시 작으로 시각, 공연, 문학 등 순수예술 분야와 기술의 융합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들을 시 행하였다. 하지만 예술-기술 융합을 지원하는 정책 및 사업들이 꽤 오랜 시간동안 다양한 곳에 서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외적인 가시적 성과를 나타내는 경우들은 드물었다. 또 해당 정책 및 사업들이 목표하는 바가 무엇인지, 특히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 의지의 핵 심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임이 지적됨에 따라 사업의 필요성과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려 운 상황도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 나아가 해당 분야의 정 책 및 사업들이 5년 이상 지속된 것에 반해 사업의 성과나 향후 정책 수요, 개선 방안들 에 대해 사업 참여자 및 이해관계자들을 통하여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도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관련하여 소수의 연구보고서 및 학술논문들이 존재하고 있으나 예술과 기술 융합에 대한 시론적 연구 및 사례 탐구, 특정 기관의 지원사업에 대한 개괄적 평가, 성과 지표에 대한 탐색적 수준의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다(민지은, 2023; 한국문화예술위원 회, 2020, 2021, 2023; 한하경, 2023). 그러므로 정부, 공공 및 민간 기관에서 실시하 는 예술-기술 융합 관련 지원정책 및 사업 현황과 이슈, 성과 등을 통합적으로 연구하여 창의적인 국가의 예술 발전 방향을 모색할 정책 방안을 재정비 할 필요가 크다.
□ 연구목적
ㅇ 본 연구는 빠르게 변화하는 첨단기술이 공존하는 사회 안에서 예술-기술 융합 지원정 책이 예술계에 미친 영향과 성과를 분석하고, 중앙 부처 차원에서 예술-기술 융합의 발 전과 지속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책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구체적으로 본 연구는 현재까지 논의된 예술-기술 융합에 대한 개념, 역사, 특징들을 살펴보고, 국내외 예술-기술 융합 지원정책을 통해 기대하는 성과들이 실현되는 과정 속에서 나타난 현안과 문제점들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향후 예술-기 술 융합이 예술 중심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발전에 있어 중요한 현장(scene)으로 성장 하는 데 뒷받침이 될 수 있는 정책 개선방안을 도출하는 데 의의를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