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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문화자치와 주민참여예산

발행일2020-10 발행처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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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자치와 주민참여예산

 

권경우(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지역문화의 현재를 살펴보고 미래를 진단한다면 전망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현재 펼쳐지고 있는 지역문화의 현실이 자율적이고 지속적인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보다 당장 눈에 띄는 성과에 급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누누이 지적되었던 문제였지만, 정치, 문화 등 다양한 현실 앞에서 사실상 무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다른 이유로는 정부가 앞장서서 자치분권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사회에서는 정책과 사업, 예산 등에 있어서 민간의 시민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나누는 방식의 자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지역문화 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예를 들어, 과거 문화예술회관을 비롯한 공연장과 전시장 등 시설운영을 중심에서 다양한 지역축제와 생활문화, 문화예술교육, 나아가 도시재생에 대한 문화적 개입, 청년문화창업에 이르기까지 지역문화는 말 그대로 생태계라는 말에 어울리는 전방위적인 확장을 이루고 있다. 또한 공간적으로 보더라도 규범적이고 형식적인 공간을 넘어 새롭게 발견하고 찾아내는 실험적인 복합문화공간이 지역문화생태계에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20세기 초중반 이후 급속한 성장과 발전을 이어온 대도시의 발달과 쇠락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도시 재편 혹은 재생과 관련되어 있다. 특히 인구 감소 등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중소도시의 급격한 공동화 현상은 도시문화의 중요한 변수가 될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달라진 문화적 욕구 또한 자신들이 생활하는 지역 공간을 변화시키는 데 한몫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소비 공간에서 먼저 감지되는 것은 맞지만, 결국 공공 공간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러한 공간 환경의 변화는 공간 조성 및 운영과 관련하여 문화자치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15년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으로 지역문화재단의 설립이 가속화되면서 지방정부는 문화재단에 공공문화공간의 운영을 위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이는 가장 안전한 선택이다. 문화예술전문기관으로서 전문인력이 모여 문화사업과 문화공간 운영을 맡는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인 셈이다. 더욱이 지역문화재단의 정체성은 공공과 민간의 사이에 존재하는 이중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공공의 한계를 넘어 민간의 자율성과 창조성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성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대부분 공공문화시설 또한 기존 지방정부가 운영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올해 초 시작된 코로나19 상황에서 공공기관 운영 현황을 보면 자율성이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율적인 판단이나 결정보다는 중앙정부의 지침에 따라 움직일 따름이다.

그런데 문화자치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공공문화공간이 어떠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질문은 크게 두 가지 측면일텐데, 설립과 운영의 부분이다. 무엇을 위한 공간을 만들 것인지, 그리고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 과정으로 시설이나 공간이 설립되고, 운영은 그 다음에 고민하는 수순이다. 그런 점에서 주민참여예산’(혹은 시민참여예산) 제도는 그러한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문화재단과 같은 공공과 민간의 사이에서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잘 활용한다면 어떤 효과로 나타날 것인가.

성북문화재단(서울시 성북구)에서 2018년을 전후로 주민참여예산의 특징을 활용하여 공공 공간을 새롭게 변모시킨 사례는 의미가 있다. 2002년 설립된 성북정보도서관지하 1층과 지상 5층의 공간을 주민참여예산으로 각각 극장과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주민참여예산은 말 그대로 주민(시민)이 직접 사업 제안을 하고 주민들이 직접 투표하는 과정을 거쳐 필요 예산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보니 사업 자체가 주민들의 관심과 필요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성북정보도서관은 성북문화재단 운영 시설로서 건물 자체의 노후뿐만 아니라 위치가 천장산이라는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어서 일반 주민들의 접근성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도서관 열람실과 같은 도서관 공간은 많은 이용자들이 있었지만, 지하 1층에 위치한 다목적홀(강당)은 다른 공간에 비해 활용도가 매우 낮은 편이었다. 이 과정에서 문화재단의 지역문화팀은 지역문화생태계 관점에서 성북정보도서관 지하1층 다목적홀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성북문화재단은 창립 초기부터 지역예술가들과 탄탄한 거버넌스를 만들어오면서 그들의 활동공간 및 거점공간을 마련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던 때였다. 그 중 공연예술인들의 필요와 의지가 부합되어 이 공간에 대해 구체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고, 도서관 유휴공간을 중심으로 지역예술인들이 공간의 활용가능성에 대해 성북정보도서관 사서 및 지역문화팀 담당자들이 거점공간으로의 변모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상태라면 지역의 문화공간은 점점 늘어날 것이고, 지방정부 재정은 한정적이다. 주민참여예산은 제안자의 적극성과 사업의 필요성이 잘 부각된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 성북정보도서관 지하 1층 다목적홀은 천장산우화극장이라는 이름의 블랙박스형 공연장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20193월 공공극장 등록까지 마친 상태이다. 이 과정에서 주민참여예산 제안 주체들을 적극 결합시켜서 지역 공연예술인(단체), 도서관 사서, 기획자 등 다양한 주체들이 공간 설계와 운영에 이르기까지 함께 하는 워킹그룹을 구성했다. 그리고 이후 극장 운영과 기획 등 관련해서 공동운영위원회를 꾸리고, 실제로 참여예술인들과 재단이 공동운영 협약을 맺어서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극장 운영 방식은 서울문화재단에서도 지역 공공극장의 새로운 실험 모델로 주목하고 있는 상태이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도서관 5층의 개인연구실 공간 역시 주민참여예산사업으로 미술관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과정에는 두 가지 배경이 담여 있다. 하나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개방적인 공간으로의 도서관 공간의 변화라는 흐름이 있고, 다른 하나는 성북정보도서관이 위치한 지역 자체가 문화예술공간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해서 문화취약지구에 해당되어 미술관과 같은 전시공간이 생긴다면 지역주민이나 아동청소년, 도서관이용자들에게 좋은 기회와 자극이 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이 사업 역시 선정되어 <성북어린이미술관 꿈자람>이라는 이름으로 20198월 개관했으며, 기획전시를 비롯한 미술교육 등 다양한 콘텐츠로 지역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이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예술가 커뮤니티와 재단 직원들 사이에 상호 논의와 협력하는 과정은 지난했으며, 미술관 공간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이전 개인연구실 이용자 일부가 강한 민원을 제기하여 감사원에서 조사를 나올 정도로 난관이 많았다. 그럼에도 지역공동체에게 정말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명확한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면서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문화자치는 공간이라는 물질적 조건을 잘 활용한다면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 문화자치의 핵심은 거버넌스’(협치)이다. 단순한 공간 조성이나 운영을 넘어 그 조성과 운영 과정에 민간과 공공이, 행정과 자율(창조)이 만날 수 있다면, 문화자치는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주민참여예산과 같은 제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지점은 민관거버넌스의 성공으로 가는 여정에 있어서 꼭 필요한 장치이자 도구이다. 지역문화생태계는 몇 가지 특정 요소로 이뤄지지 않으며, 물질적 조건과 환경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요인들까지 화학적 결합을 이룰 때 가능하다. 그것이야말로 지속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다.

부산문화재단, 문화정책, 권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