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미디어 시대, 영상화를 통한 공연예술의 확장
지혜원(경희대학교 공연예술경영MBA 주임교수)
글로벌 팬데믹으로 위기 맞은 라이브 무대
2020년 전 세계를 관통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회 곳곳에 심각한 피해를 안기고 있지만, 문화예술 분야 그 중에서도 라이브 무대를 매개로 퍼포머와 관객이 동일한 시공간, 즉 ‘지금, 이곳(here and now)’에서 함께 소통함으로써 완성되는 공연예술 분야의 타격은 특히 심각하다. 국내에서는 코로나-19 대응단계가 최고수준으로 격상된 지난 2월 이후 다수의 공연이 중단 또는 취소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소 완화된 5월 이후 조심스레 공연장 문이 다시 열리는 듯 했지만 8월부터 다시 지역사회의 감염이 확산되면서 방역체계 강화를 위해 공연장 내 ‘객석 띄어앉기’ 의무화가 시행되었고, 이는 공연계의 막대한 손해로 이어졌다. 작품의 성격과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통상 대극장 공연의 경우 객석점유율 70% 안팎에서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 국내 공연시장의 구조에서 객석 거리두기는 공연을 할수록 오히려 피해가 가중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11월 7일 5단계로 변경된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잠정적으로 ‘객석 띄어앉기’ 조치가 해제된 공연계는 숨통이 트일 것을 기대할 겨를도 없이 전국적인 코로나 재확산 상황으로 인해 다시금 얼어붙었다. 그야말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서 공연단체와 예술가들은 갑갑하고 막막할 따름이다. 코로나 확산세가 거센 해외 공연계는 우리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 뉴욕 브로드웨이는 2021년 5월 30일까지 공연이 전면 중단된 상태이며, 런던에서는 1986년 개막 이후 34년 가까이 공연을 지속해온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마저 기약 없는 휴지기에 돌입하는 등 대다수의 공연계는 일시 멈춤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연극, 뮤지컬, 클래식, 무용, 콘서트, 페스티벌 등 장르나 규모를 가리지 않고 이렇듯 라이브 무대로 직접 관객을 만나는 것이 어려워진 전 세계 공연계는 일제히 영상 플랫폼으로 눈을 돌렸다.
디지털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공연예술
코로나 상황 초기에는 갑자기 취소된 라이브 공연 대신 기녹화된 작품을 공연단체의 웹사이트나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하거나 버추얼 콘서트 등을 통해 관객과의 단절을 메우는 양상이 눈에 띄었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라이브 무대를 꾸준히 생중계해 온 단체들은 신속하게 대응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유료로 서비스하던 “더 맷: 라이브 인 에이치디(The Met: Live in HD)” 프로그램을 “나이틀리 오페라 스트림스(Nightly Opera Streams)”라는 타이틀로 무료 공개했고, 영국의 내셔널 시어터는 유료 상영해 온 “엔티 라이브(NT Live)” 작품을 “내셔널 시어터 앳 홈(National Theatre at Home)” 프로그램으로 편성해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유튜브를 통해 무료로 제공했다. 베를린 필도 유료로 운영하던 “디지털 콘서트홀(Digital Concert Hall)”을 한 달간 무료 공개한 바 있다. 이 외에도 뮤지컬의 거장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는 유튜브 채널 “더 쇼 머스트 고 온(The Show Must Go On!)”을 통해 다수의 작품을 공연 팬들에게 제공했고, 유명 아티스트 레이디 가가(Lady Gaga)는 세계보건기구(WHO), 글로벌 시티즌과 함께 주체한 온라인 릴레이 콘서트 “원 월드: 투게더 앳 홈(One World: Together at Home)”을 통해 전 세계에서 약 1억2천790만 달러(약 1천558억원)의 기부금을 모으며 큰 호응을 얻었다. 국내에서도 2013년부터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으로 공연영상화 사업을 진행해 온 예술의전당을 비롯해 세종문화회관, 국립국악원, 남산예술센터, 경기아트센터, 국립극단, 서울예술단 등 다수의 공연단체들이 작품 영상을 공개했고,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다수의 단체가 무관중 공연을 진행해 온라인 스트리밍하는 방식으로 라이브 무대의 공백을 채웠다.
미디어 플랫폼으로의 확장을 본격화하면서 공연계는 점차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의 유료화를 시도하는 중이다. 특히 타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관객층을 폭넓게 확보하고 있는 뮤지컬 부문에서는 “모차르트”, “잃어버린 얼굴 1895”, “어쩌면 해피엔딩” 등의 작품이 실황 녹화한 공연을 온라인 스트리밍 관람 티켓을 유료 판매했고, “귀환”과 “광염소나타”는 라이브 무대의 온라인 생중계를 진행했다. 영상 제작의 퀄리티의 보완과 배우의 팬덤에 의존하는 한계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되지만 공연예술의 새로운 시장을 타진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시도이다. 한편, 공연을 웹 콘텐츠로 옮겨 영역을 확장하려는 노력도 눈에 띈다. 예술의전당은 숏폼 연극 콘텐츠인 “플레이 클립스(Play Clips)”를 통해90분 분량의 작품을 40분으로 압축해 5개의 비디오 클립으로 선보였고, EMK엔터테인먼트는 국내 대표적 MCN 기업인 샌드박스 네트워크와 함께 웹 뮤지컬 “킬러 파티(A Killer Party)”를 제작해 화제를 모았다. 이 외에도 AR, VR 등을 활용한 실감형 공연 콘텐츠 제작 사례도 증가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기술과 콘텐츠의 접목 시도에 머물고 있다.
미디어가 매개하는 공연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도 공연계는 미디어 플랫폼으로의 확장을 위한 여러 시도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해외에 비해 공연 영상화 사업의 기반이 약한 국내 시장에서는 여전히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산재해있다. 무엇보다 라이브 무대를 영상으로 옮길 때 세부 장르와 양식을 이해하고 차별화된 양질의 영상을 제작할 전문 인력의 확보가 시급하다. 또한 완성된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서비스할 수 있는 체계적인 유통 기반도 필요하다. 라이브 무대의 물리적 제약과 ‘비용질병(cost disease)’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상화의 장점을 배가하기 위해서는 전문 배급사 또는 스트리밍 플랫폼의 기능이 주요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수용자를 타깃으로 공연 기반의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미디어 기업과의 적극적인 협업을 통한 시장 확대가 요구된다. 단순히 라이브 무대를 영상에 담아내거나 웹 기반의 숏폼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만이 아니라 창작자의 양성과 신작 개발, 예술교육, 국제교류 등 오프라인의 한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시도는 공연예술 시장 확대의 의미 있는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미디어 플랫폼으로의 확장은 전통적인 공연관객을 넘어서 온라인 기반의 새로운 수용층을 확보할 수 있는 반면에 디지털 환경이 익숙지 않은 수용자에게는 낯설거나 불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라이브 무대에서 미디어 플랫폼을 매개로 확장하는 공연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더 많은 관객들과 가깝게 소통하기 위해서는 공연계의 다각적인 전략과 세심한 노력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