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부터 일상을 지키는 힘
정수진(부산시민운동지원센터 기획실장)
다섯 이상은 안된다고 해서 조심스레 만든 자리였다. 넷이 앉아 쌓인 이야기 타래를 풀어내는 것도 잠시, 그마저 밤 9시가 되자 누구랄 것 없이 하던 말을 멈추고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치 마법이 풀릴까봐 서두르는 신데렐라처럼 부랴부랴 자리를 파하고 나오니 거리에는 택시를 잡기가 힘들 정도로 사람들로 붐볐다. ‘아, 다시 통금의 시대를 살고 있구나! ’ 묘한 기분이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의 삶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일상을 맞이하고 있다. 일상의 시간들이 쌓이면서 잠시 겪고 지나갈 상황이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삶의 양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멈추고 기다리던 공연이 취소되고 어울릴 축제가 사라지고 동네의 문화예술강좌가 문을 닫았을 때, 일상 속에서 누리던 즐거움이 사라진 자리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연결되지 못함으로서 느끼는 소외와 무력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활동이 ‘멈춤’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안전망으로서 전환을 통해 더 촘촘하게 지속되어야 한다.
새해도 되고 했으니 몇 가지 바람을 품어 보자면, 시민들의 삶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식이면 좋겠다. 지역의 예술가를 활용하고, 지역의 자원을 엮어내는 방식, 지역의 예술인들이 지역의 문화를 활용해 지역민을 엮고, 큰 공간을 찾아 멀리 가지 않아도 동네마다 작은 문화공간, 찾아가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지역을 풍성하게 하는 일상의 만남이면 좋겠다. 소규모가 모이는 예술 활동, 개인과 개인이 직접 마주하는 경험이야말로 문화의 토대를 다지는 전환이 될 것이다. 이 전환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시민의 참여를 확장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지역예술가와 주민이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동호회와 커뮤니티예술, 그리고 이를 매개하는 네트워크를 넓게 많이 지원하면 좋겠다.
얼마 전 그림책 작가 10명이 준비한 ‘일상의 예술, 그림책 전 Picturebook: play and link’을 온라인 전시로 즐겼다. 늘 새로운 연결을 모색해 온 작가들이 영상, 인터랙티브 아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준비한 전시회였는데 온라인이어서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문화예술의 현장에서 다양한 고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어떻게 만날까, 어떻게 다가갈까? 고민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경험은 풍부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모두에게 공평할까?
재난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는 말처럼 재난 상황에서 소외와 단절의 경험도 다르게 다가간다. ‘모든 시민은 문화 창조의 주체로서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정치적 견해,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 등에 관계없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 는 시민문화권은 그래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공동체를 지탱하는 문화 가치는 사람과 생명의 존중, 상생과 환대의 정신, 타자에 대한 배려와 선의, 공정성과 관용, 공공선의 추구, 자연과의 상생이다. 재난의 상황을 겪으면서 더 소외되고 더 배제될 수 있는 취약계층이 누구인지, 새로운 접근도 잊지 않아야겠다.
제 아무리 코로나라도 봄이 오는 것을 어쩌지는 못한다. 바람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하는 지금, 사람들의 마음에도 온기를 돌게 할 문화예술의 힘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