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부산국악원 개원 13년, 그리고 그 후
춤문화연구소 소장 최찬열
1951년, 피난 시절 부산에서 처음 개원해, 전쟁 후 서울로 옮겨 간 국립국악원은 전통춤과 국악을 계승하는 대표적인 국립예술기관이다. 국립부산국악원은 부울경 지역의 전통 공연예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2008년 10월 28일 개원한 국립국악원 소속 국립예술기관이다. 국립부산국악원은 국립국악원과 국립민속국악원(전라북도 남원), 그리고 국립남도국악원(전라남도 진도)과 차별성을 가지면서 다소 성격이 다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국립부산국악원은 부산 지역의 특성과 문화 트렌드를 반영한 공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말이리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브랜드 공연 ‘자갈치 아리랑’(2011-2013년), 6.25 전쟁을 피해서 부산에 온 국악인들의 삶과 생활을 다룬 ‘대청여관’(2016년), 구포 당산나무 설화를 무대화한 ‘구포당숲-안아줄 수 있다면’(2020년)과 같은 공연들이 이에 해당한다. 기실, 국립국악원이 정재와 정악을 중심으로 한 공연을 펼치고 있다면, 국립민속국악원은 창극과 판소리를, 그리고 국립남도국악원은 굿과 같은 전통 연행을 활용한 공연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립부산국악원은, 전라도는 소리의 고장이요, 부산은 춤의 고장이라는 말에 걸맞게, 전통춤 공연을 주축으로 해서 전통 기악과 성악 공연을 아우르고 있다. 그런데 국립부산국악원의 활동 영역은 부산시립예술단과도 어느 정도 겹친다고 볼 수 있다. 부산시립무용단이 한국창작춤과 전통춤, 그리고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이 전통음악을 중심으로 한 공연 활동을 펼치고 있기에. 그래서인지, 국립부산국악원은 민속춤과 민속음악을 중심에 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춤극 형식의 야류 ‘문디야 문디야’(2014년), ‘굿이로구나’ ‘연희야 굿이야’(2018년) ‘통영춤의 본질과 미학’(2013년), ‘영남춤축제’(2017-2019년), ‘영남춤진경화’ 등이 부산국립국악원의 이러한 성격을 잘 보여준 공연이었다. 이러한 활동은 지역의 전통춤과 국악을 활성화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2015년부터 시작된 ‘왕비의 잔치’ 시리즈는 많은 관객을 동원했음에도 지역의 전문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공연이었다. 많은 예산이 들어갔음에도 레파토리 공연으로 삼을 만한 예술성을 갖추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되었다. 그 외, 국립부산국악원은 지역민을 위한 공연도 지속적으로 펼쳤는데, ‘정원의 풍류’(2014-2018년), ‘연지마을 연희마당’(2014-2017년) 등과 청소년과 수험생을 위한 공연, 어린이를 위한 음악극 ‘알콩달콩 우렁친구’ 등도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공연은 국악원 인근의 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지역민들이 삶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데 일조했다. 이는 국립부산국악원이 지역주민들과 소통하고자 다각도로 노력했음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개원 후 13년 동안 국립부산국악원은 기획공연과 상설공연, 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공연과 대외 협력 공연 등을 통해 시민들의 삶과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자 노력했고, 부울경 지역의 전통예술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데 주력했다. 또한, 해외 공연을 통해 지역의 전통음악과 전통춤이 가진 멋과 흥을 세계에 알리는 데도 한몫했다. 특히, 디아스포라 전통 예술인들에게 무대를 마련해준 점은 높이 살만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지 않은 점이 크게 아쉽지만, 국립부산국악원은 그동안 지역예술가와 단체가 교류하고 디아스포라 예술가와 단체가 교류하고, 지역주민이 교류하는 전통예술 플랫폼 역할을 어느 정도 했다고 보여진다.
지난 13년 동안 국립부산국악원이 이룬 성과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해결해야 하는 숙제도 많아 보인다. 우선 지역 예술단체와 협력 공연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국립부산국악원이 부산시립무용단, 부산무용협회와 함께 9년 동안 송년 공연으로 진행한 ‘춤으로 갈무리하다’(2010-20`18년)는 이러한 시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들 단체보다, 소통이 더 긴밀하게 이루어져야 할 데는 따로 있는 듯하다. 동래야류보존회, 수영야류보존회, 고성오광대보존회, 통영오광대보존회 등 민속춤과 민속음악을 기반으로 한 단체들이다. 특히, 좌수영어방놀이와 남해안별신굿, 그리고 통영승전무와 동해안별신굿 등 바다와 어촌생활의 삶과 일상을 담은 전통 연행을 계승하는 단체와의 협력 공연이 무엇보다 필요해 보인다. 이를테면 이들 단체와 해양성을 주제로 한 연대 사업을 펼쳐보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겠다. 더 나아가 이들 단체와 국립해양박물관도 포함한 상시적 연대 시스템을 구축해 해양 예술 벨트를 조성하고 해양예술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데까지 나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또한 지역의 전통음악과 전통춤을 현대적 감각을 갖춘 포스트 전통예술로 개발할 필요도 있다. 이를 위해 지역의 젊은 예술가들과의 협업 작업도 이루어져야 하겠다. 이 또한 부분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듯하다. ‘뿌리춤전’ ‘젊은안무가전’, ‘영남춤축제’의 창작 춤판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들 사업은 일회성, 단발성 행사로 그칠 것이 아니라 지속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특히, 디아스포라 예술가들을 초청하는 경우가 그러한데, 단순한 교류 지원을 넘어 정기적인 공연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하고, 체계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면 훨씬 좋을 것이다. 이참에, 팬데믹이 끝날 때 즈음,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활동하고 있는 전통 예술인들은 한자리에 모으는 디아스포라 전통예술 축전을 개최하면 어떨까. 이는 전통예술의 미래 가치를 확장하고 새로운 전통예술 생태계를 구축하는 작업이기에 말이다. 학술 및 발간사업은 전통예술의 전승과 보급의 체계적인 기반을 마련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기에 국립부산국악원이 펼치고 있는 지역의 전통음악 음반화 작업과 지역의 원로 예술가의 삶과 예술세계를 아카이빙하는 작업 등도 눈여겨 볼 만한 활동이다. 하지만 이 또한 울산과 경남 지역으로 더 확대될 필요가 있어 보이고, 아울러 임시정부 시절 지역의 전통예술에 대한 연구와 아카이빙 작업, 디지털화 사업도 더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겠다. 또한 숨은 민속춤과 전승 민요 혹은 구전 민요 등의 채집과 보존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보존과 아카이빙, 이를 활용한 창조적 계승 방안과 기획을 세심하게 마련해 포스트 전통예술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시급해 보인다. 그리고 국립부산국악원은 옛 미군 부대의 땅을 개조해 조성한 부산시민공원 바로 옆에 있다. 장소가 가진 의미가 남다르다는 말이다. 장소성을 살리는 사업과 공연을 기획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리라.
국립부산국악원은 올해 연수센터를 착공했다. 하루에 400여 명이 이용할 수 있는 지하 1층~지상 5층의 꽤 큰 규모의 공간이라고 한다. 국악원 측에 의하면, 센터에는 대형 강습실 2개와 중형 강습실 2개, 그리고 작은 강습실 4개와 휴게실, 각종 연수 관련 공간 등이 들어서고, 아울러 시민들을 위한 서비스 공간 등을 마련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2022년에 완공 예정인 연수센터가 실질적으로 운영되면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체험과 연수, 교육 프로그램 등이 펼쳐질 것이다. 이는 국악과 전통춤의 대중화와 친밀성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뚜렷한 운영계획은 발표되지 않고 있다.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심하게 짤 필요가 있겠다. 무엇보다 소통과 참여의 장으로 활용되면 좋겠다. 즉, 센터를 중심으로 지역의 단체, 예술가와 더 긴밀하게 소통하고, 시민 스스로 문화적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자발적 참여의 장이 마련되면 좋겠다. 지역예술가를 배려하고 시민을 중심에 두는 운영계획이 수립되길 요망한다.
국립국악원은 중앙에 있고 국립부산국악원은 지역에 있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 느껴지는 거리감만큼 지역민과 국립부산국악원은 떨어져 있는 듯하다. 그러니 중앙과 지역의 관계성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가 중요해 보인다. 우선 팔길이 원칙은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지역은 중앙과 의도적으로 거리두기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화해 지역과 지역성을 재발견하라는 요구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국립국악원은 지역 분권화의 과정을 밟아 가는 게 좋을 듯하다. 이를 위한 첫걸음은 지역을 잘 아는 원장을 영입하는 일이리라. 국립부산국악원은 부산에 있지만, 부산광역시와 가깝지 않고, 문광부에 더 가깝다. 국립부산국악원이 지역에 쉬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인 듯하다. 지역 예술계의 이러한 우려를 말끔히 떨어 없애기 위해서라도, 원장과 일부 간부직은 실질적인 개방형 직위로 바꾸어, 지역을 잘 아는 지역 사람을 뽑아 그 자리에 앉힐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니면, 지역의 예술인력을 국악원 안에서 양성해 이들 자리에 배치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나 학예연구원 등이 지역 국악원의 원장을 비롯한 중요 보직을 차례대로 맡았다가 다시 원래의 일자리로 복귀하는 식으로 순환하는, 최근까지의 관행이 지속되는 한, 어쩌면, 국립부산국악원은 부산 예술계의 외로운 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