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공유] 함께 하는 방법들 – 예술로 공감하기
문화기획 올아트22 대표 김미희
“새로운 작품은 항상 우리를 설레게 합니다.”
지난겨울 끝자락 새봄이 오는 즈음에 북구에 있는 우리 동네 미술 작가들과 함께한 전시회의 소개 글 마지막 문장이다. 그렇다, 새로운 작품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호불호를 떠나 우리를 긴장시키며 작은 설렘과 동시에 떨림을 준다. 예술이 그런 것 아닐까. 그러면 우리? 여기서 우리는 누구일까.
예술가, 특히 시각미술 장르의 특성상 개인 작업이 주를 이루고 있어 이 예술가들은 모여서 무엇인가를 함께 하는 것들에는 무척 당황해 한다. 혼자 하는 작업에 익숙한 시각장르 예술가들에게 필수적인 능력치 또한 얼마나 혼자 잘 감당하며 견뎌내느냐 하는 것이다. 외로운 고독과 현실적인 난관들을 홀로 헤쳐 나가는 일들이 이 예술가들에게는 힘들지만 익숙하다. 고통마저 감미로운 그 창작의 세계, 이렇게 예술을 스스로 즐기며 홀로 공유한다. 고흐와 고갱과의 불화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고 외로이 작업하며 고난한 삶을 이어가다 쓸쓸히 홀로 생을 마감한 고흐가 마치 예술가의 전형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 예술가들도 인간인지라 사람이 그립고 누군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상대가 있었으면 하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다. 그들에게 평범한 대화는 쉽게 피곤해 하고 그 대화는 일방적이거나 불통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엄청나게 많은 말을 쏟아내는 다변가인 예술가이거나 아무리 물어도 대답 없는 목석처럼 앉아 있는 과묵한 예술가일 경우가 다반사이다, 자연스러운 경우들이다. 이런 예술가들에게 대화의 기술을 알려 줄 필요는 없다. 그들은 작품으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강력한 매체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이미 월등한 의사표현의 수단이자 무기인 작품이 있다. 그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오고가는 대화들은 실로 어마어마한 시간의 축적들이자 엄청난 양의 자료들이 된다. 지난 ‘공감의 시작, 아트 감동진’ 전시는 북구 공공미술을 위해 모인 35인의 작가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누군가는 아기를 재워두고 밤잠을 설치며 창작해낸 이야기들을 그려 냈고, 이제 막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아무 보호 장치 없는 사회로 던져진 어느 젊은 작가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구석진 공간의 모서리들을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장치로 표현하여 이야기했고, 30년 넘게 홀로 창작 작업이라는 것을 계속해 온 중년의 작가는 새로운 실험과 시도를 선보이는 작품을 완성했다. 화업 60년을 이어오신 작가는 거의 매일 전시장을 찾아 다른 작가의 작품과 대화를 나누었다. 작품은 언제나 청춘이며 새로운 작품은 예술가들도 설레게 한다. 예술가들은 서로를 공감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예술가들이 예술을 공유하는 방법, 예술가들은 이렇게 작품을 통해 서로 공감하며 함께 이야기 나눈다.
“미술작품이 왜 그렇게 비싼지 조금 알 것 같아요.” 미술 실기 강의를 진행하면 종종 듣게 되는 우리 동네 주민의 이야기다. 어디서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예술을 함께 공유하는, 우리가 잘 아는 흔한 방법 중의 하나인 미술실기 프로그램은 이렇게 주민과의 공감을 만들어 낸다. 전시회에 갔을 때 그리기 쉬워 보이는 작품을 보며 느끼는 막연한 감상, ‘이 정도는 나도 그릴 수 있겠는데...’라는 일반적인 상상은 막상 하얀 캔버스 앞에 서면 망망대해 무인도에서 바라보는 무한한 하늘처럼 넓은 화면에 막연하기만 하다. 시간과 열정을 투자하여 열심히 내 일상을 예술의 세계로 이끌어 본다. 조금 익숙해 졌다. 하얀 캔버스에 과감히 검은 선을 그려보는 것, 붓 잡는 것, 물감을 섞어 새로운 색을 만들어 보는 것, 재료의 특성과 회화의 기술 등도 실력이 늘어 간다. 그런데 뭔가 부족한 듯 보인다. 결국 인생을 걸고 그림을 그리는 것과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즐기며 그림을 그리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림이 비싼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소회를 종종 하게 되는 우리 동네 주민은 예술가인 강사 선생님의 그림을 다시 보고 예술을 공감한다. 다른 모든 예술 장르가 이렇게 주민과 공감될 수 있다. 예술을 공유하는 방법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우리 동네 주민은 외고집으로 소통불가이며 혼자서 작업하는 이기적인 예술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작업과정을 살짝 경험해 보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시간과 열정을 투자한다면 창작의 고통을 이해할 수 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영역에서 예술가의 작업결과물을 공유하는 여러 방법들이 있다. 전시회, 음악회, 공연 발표회 등을 통하여 관람대상으로써 우리 동네 주민들이 대다수이겠지만 이제는 1인 1예술 시대로 예술의 향유방법이 좀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팬데믹 시대를 지나오며 우리 동네 주민들의 예술향유의 갈망과 요청들이 진심으로 절절하다는 것을 느꼈던 지난 겨울 북구에서 진행했던 우리 동네미술 주민 실기프로그램 ‘아트클래스-아트감동진’이 있었다. 우리 동네 작가들과 우리 동네 주민들은 예술로 공감하며 더 오래, 더 많은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원한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 예술을 공유하며 서로 깊게 공감하였기에 그 아름다운 공감을 계속 나누기를 바란다.
예술은 생활 속에서 공유하고 공감되어야 한다. 예술을 생활문화 속에서 향유하기 위해서 모든 예술 활동들이 우리 곁에 어디나 있으며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직접 만지고 듣고 보고 느낄 수 있으면 더 할 나위 없겠다. 1인1예술의 생활문화시대는 사회가 발전하면서 반드시 함께 열어야 하는 아니 반드시 열릴 수밖에 없는 필연의 문화사회이다. 이러한 생활문화 확대를 위해서는 행정의 섬세한 배려가 필요하다. 1인1예술 시대를 열어보겠다는 결정권자의 의지와 여기에 강력히 동의하는 실무진들이 필요하고 예술가와 지역 주민들의 열정과 열망이 모여져야 한다. 예술가에게는 창작에 필요한 현실적인 제반환경과 제도적인 지원이 지속되어야 하고 주민들에게는 열려있는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문턱 높아 보이는 위압적인 공간이 아닌 우리 동네 사랑방 같은 그런 작업실, 연습실, 전시장, 공연장 등등이 규모는 작아도 많이 만들어 지면 좋겠다. 행정과 지역주민, 예술가의 공감을 위해서는 지나치게 과한 설명과 안내들이 필요하다. 서로의 영역이 무척 다름을 먼저 인정하고 자신의 각 영역의 특성과 바램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들을 자세히 아주 섬세하게 서로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지나고 나면 공감이라는 결론을 다함께 공유하게 될 것이다. 예술, 멀리 있지 않다, 우리 동네 여기에서 하면 된다.
오늘날 예술이 어렵고 멀게 느껴질 때도 있고 공감하지 못하는 예술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예술에서 실패는 없다. 모든 열린 상상과 기발한 창의성으로부터 사회는 발전해 왔고 두려움 없이 실천하는 예술가들의 의지는 인간과 자연, 사회를 풍부하게 했다. 예술을 하는 이유는 대단하고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의지, 인간과 자연, 사회를 이해하려는 것이다. 예술가와 예술가의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 예술가와 주민과의 공감, 자연 앞에 겸손한 예술가와 대자연과의 공감을 통해 지역에서 일상과 함께 누리는 예술, 누구에게나 열린 예술로 공감하기는 예술을 공유하는 함께하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