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왜? 무엇을? 어떻게?
박재율(지방분권균형발전 부산시민연대 상임대표, 지방분권전국회의 공동대표)
최근 정부는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소유의 기증 미술작품들을 소장할 미술관 건립 장소로 서울을 선택,발표하였다. 서울에 지역구를 둔 현직 국회의원이기도 한 문화체육부 장관이 ‘국민 접근성’을 주요 고려 요소로 삼았다며, 당연하다는 듯 서울 건립을 공표하였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촉발된 4차 코로나 대유행 사태는 11.8%의 국토 면적에 50%가 넘는 인구가 몰려있는 수도권 과밀이 곧 위기임을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46%에 이르는 105곳이 인구소멸 위험지역으로 이 가운데 97곳, 92%가 비수도권이고 부산 조차도 위험지수 0.5에 가까운 0.69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국가적 혼란도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수도권 집중에서 비롯되는 악순환이 아닌가. 지속되는 ‘공정’ 논란도 특권적 사교육을 통한 부와 신분의 세습이 서울 중심의 대학 서열화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이른바 ‘이건희 미술관’의 서울 건립은 불난데 기름 붓는 격으로 대한민국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행위다. 또한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약 40개 지역이 유치 의사를 표방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선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중앙정부의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결정,통보만 있었다. 적나라한 중앙집권의 모습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국가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수도권이라는 한 지역 집중의 일원적 국민 접근성이 아니라 여러 지역 분산의 다원적 접근성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일극적 발전에서 다극적 공간 발전을 위해 중앙집권,수도권 집중에서 지방분권과 권역별 분산,분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치,행정,경제,사회,문화, 제반 분야의 총체적인 분권,분산,분업의 3분 전략, 실행이 절박한 시대적 과제인 것이다. 이는 우리만이 아니라 80년대를 거쳐 동서냉전이 와해되는 90년대를 지나면서 본격화된 ‘세계화,지방화’(글로칼리제이션)라는 세계적 흐름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핵심은 사람과 업무와 재정이다. 부산은 세계 5위의 컨테이너 물동량을 가진 해양도시다. 그래서 동북아 물류중심지로 나아가는 해양수도를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해양부시장도 없다. 법령상 부산은 두 명의 부시장 밖에 둘 수 없다. 인구 800만 이상만 3명을 둘 수 있어 서울과 경기도만 해당된다. 부산시 실,국 단위 등 주요 조직을 새로 늘리려면 일일이 행안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사람과 업무를 자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그에 걸맞는 제도,규정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조례가 그것이다. 그런데 조례는 지방자치법 28조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그 사무에 관하여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는 규정에 얽매여 있다. 이른바 중앙정부와 국회에서 만들고 고치는 법과 시행령에 규정된 내용 안에서만 지역의 모든 운영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자치입법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부산을 비롯한 전국 광역시?도에는 법제처에서 파견한 직원이 조례 제,개정 과정에 중앙법령에 저촉되지 않는지 사실상 감독에 해당하는 사전 점검을 하고 있다.
자연히 고유한 자치업무의 비중도 중앙정부 업무에 비해 적다. 중앙정부 사무와 지방사무가 대략 6:4 정도인데, 공동사무,기관위임사무 등으로 되어 있고 지방사무는 집행 중심으로 되어 있다. 스스로 기획하고 조정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자율적인 체계의 작동이 원활하지 않는 것이다. 재정 역시 중앙정부에 종속되어 있다.수입은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76.4:23.6(2019년 결산 기준)이다. 지출은 지방정부가 60, 중앙정부가 40의 비율이다. 더 많이 쓰는 지방정부가 수입은 적으니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게 되고 일종의 갑을 관계가 형성될 수 밖에 없다.
이렇듯 사람과 업무와 재정의 자율성이 매우 제한되어 있는 중앙집권 구조에서 지역민의 의사와 요구가 다원적으로 반영되기 보다는 모든 자원이 집중되어 있는 수도권 중심으로 주요 정책이 이루어지는 일이 반복된다. ‘이건희 미술관’도 그 중 하나인 것이다. 이러한 중앙집권 체계를 지방분권 체계로 탈바꿈 시키지 않으면 수도권의 삶의 질도 더 저하될 수 밖에 없다. 집중으로 인한 부동산 가격 상승, 사교육비 증가, 환경,교통 등 생활여건은 악화일로를 걸을 수 밖에 없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도시와 중소도시와 농어촌, 모두 점점 더 어려운 상황으로, 곧 국가적인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바로 지금,여기, 대한민국이 그 상황이다.
이런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 자치조직권, 주민참정권 등을 확대,강화해야 한다. 조례 제정범위를 최소한 “법률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정도라도 보장해야 한다. 지속적인 지방소비세 확대와 일정한 자주세원 확보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지역 간 세수격차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와 지역, 지역과 지역 간의 재정조정 장치를 병행해야 한다. 당장 일일이 사업항목과 범위를 중앙정부가 지정하고 국비에 맞추어 지방비를 배정해야 하는 국고보조금 지원 방식을 지역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포괄보조금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해양부시장,문화부시장 등 지역 조건에 맞게 행정조직 체계를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주민투표,주민발안 등 주민의 참정권을 강화하고 공동체의 책임을 제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조속히 지방자치법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국가운영 체계 자체를 중앙집권에서 지방분권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운영의 기본 틀인 헌법을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게 고쳐야 한다. 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은 30년이 넘는 세월의 역동적인 사회적 변화를 담지 못하고 있다. 그 중 핵심이 바로 지방자치,지방분권의 내용이다. 우리 헌법은 부칙을 제외하고 총 130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방자치 관련 조항은 117조,118조, 단 두 개 조항뿐이다. 91년 지방의회 부활, 95년 지방정부(법적으로는 지방자치단체) 구성을 통한 지방자치 시대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분권형 국가운영, 주민자치권, 국민참정권 등의 신설, 40조의 국회만의 입법권 독점, 59조의 조세의 종목과 세율에 대한 법률 독점권 개선 등의 헌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 2017년 대선 때 주요 후보들이 모두 공약하고, 지난 20대 국회에서 헌법개정특위를 운영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헌법개정안을 발의하였으나 국회에서 심의하지 않아 자동 폐기되어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한 내용에 정치권의 합의가 쉽지 않은 결과였다. 권력구조 개편은 민감한 사안이고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이미 예상된 것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중앙집권과 집중으로 인한 국가적 낭비와 위기를 두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합의가 안 되면 정파간 쟁점이 적은 지방분권을 중심으로 우선, 먼저 개헌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과거 헌법 개정은 집권자들의 권력유지,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도구화 되어온데 대한 거부감, 그리고 헌법은 법률과는 달리 아주 뜸하게 손보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인식이 남아있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제 독재적 권력이 대한민국에 발붙일 곳은 없다는 것은 자명하고, 사회변화와 시대전환의 역동성이 이제 10년이 아니라 1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세상을 살고 있는 상황에서 헌법도 좀 더 유연하게 접근, 현실과 다가오는 미래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내용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 동시 개정이 되면 좋겠지만, 이미 검증되었듯이 그 과정이 지난하기 때문에 지방분권형 개헌부터 1차적으로 추진하자는 것이다.
내년 3월에는 20대 대선, 6월에는 지방선거가 이어진다. 다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는 지방분권개헌, 관련 법령 제,개정을 통해 명실상부 지방분권형으로 국가운영 체계 혁신의 기틀을 마련하여 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와 같은 다원적이고 다극적인 지역 공간 창출로 주민의 삶,국민의 생활이 향상되고 더 성숙한 공동체 대한민국의 길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이 소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방분권 단체만이 아니라 각 계 시민사회의 강력한 연대와 집결이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
* 한국고용정보원 ,?전국 지역소멸 위험지역 현황?, 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