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아카이브

HOME 정책아카이브 문화정책이슈페이퍼

해당메뉴 명

메뉴 열기닫기 버튼

문화정책이슈페이퍼

[이슈] 문화분권시대, 문화재단 구성원의 자치역량은?

발행일2021-08 발행처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첨부파일

문화분권시대, 문화재단 구성원의 자치역량은?

 

조선희 제주문화예술재단 전문위원

 

#1

20171, 제주재단은 재단 사상 최초로 3개의 본부를 설치하였다.이는 두 가지 획기적인 변화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01년 설립 이래 25명 내외로 묶여 있던 정원이 47명으로 증원된 것과 17년 동안 제주도 정기 인사에 맞추어 파견되던 사무처장제의 폐지가 그것이었다. 제주재단의 숙원이나 다름없었던 이 두 가지 이슈 혁파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그나마 증원 문제는 설립 당시에 비해 엄청나게 증가한 업무량과 예산액을 근거로 풀 수 있었지만 본부제 도입은 예산담당관실 공기업계의 반대로 한 달 가까이 정체를 겪어야 했다. 정원 51명부터 1본부 편제가 가능하다는 지방공기업법을 들어 기껏해야 정원 47명인 재단의 경우 3본부 설치는 있을 수 없다고 기염을 토하는 공기업계를 설득하는 일은 지난한 과정이었다. ‘재단은 공기업이 아니, 정원 규모와 상관없이 이미 본부 체제를 갖춘 타 광역재단의 사례를 제시하고, 늘어난 사업량과 예산안을 근거로 효율적 관리와 책임경영을 위해서는 본부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 재단의 주장이었다. 동시에 지자체 출자출연기관 운영법에 따라 주무부서인 문화정책과와 이미 협의를 마친 사안에 대해 공기업계가 태클을 거는 것은 재단을 칸막이 행정의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며, 기관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파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변했다. 어쨌거나 공방은 일단락되었고 제주 재단의 사무처 폐지 및 공무원 파견 폐지와 본부제 도입, 정원 증원 등은 제주재단 17년 역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평가될 만 했다.

 

#2

20217, 재단 경영기획실장에 제주도 공무원이 파견되었다. 2020 8월 기존의 본부제를 폐지하고 경영부서 3팀을 총괄하는 경영기획실장을 신설하는 등의 조직개편과 동시에 직원의 약 80%를 이동시키는 인사발령 이후 11개월만이었다. 외부인사 영입설, 공무원 파견설 등이 파다했으나 이렇다 할 조치 없이 1년 가까이 공석으로 방치되다가 전문성을 갖춘 외부인사 공모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사측이 제주도에 공무원 파견을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올해 3월 출범한 재단 노조는 사측의 공무원 파견 요청은 리더십 부재와 자립 경영의지 박약에서 빚어진 경영부실의 단면이라고 판단, 4차례의 성명서 발표, 1인 시위, 집단 시위 등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견 요청은 철회되지 않았고, 사측에 손을 들어 준 제주도는 원활한 업무 추진을 명분으로, 72일자 정기 인사에서 재단 경영기획실장으로 4급 서기관 공무원을 파견하였다. 이로써 파견 공무원 신분의 경영기획실장은 인사, 조직, 예산, 대외협력, 경영평가 등 기관 경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경영기획부서 업무를 총괄하게 되었다. 제주재단이 자율성이니 독립성이니, 광역문화재단의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이니 등등을 부르짖으며 혁파했다고 믿었던 이슈들은, 20218, 다시 우리 코앞에 버젓이 버티고 있다. 눈 깜짝할 사이, 우리는 과거의 시간으로 퇴행하고 있는 중이다.

 

문화분권 시대와 문화재단. 이런 주제라면 대체적으로 문화분권 시대를 맞아 문화재단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다루는 글이 되어야 할 성 싶다. 문화분권이란 무엇인가, 문화분권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문화분권과 문화자치의 상호관계는 무엇인가 등등의 뫼비우스띠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논의들의 가닥을 따라가다 보면 문화재단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동안 한국광역재단연합회를 비롯한 관련 기관 정책포럼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가 목 놓아 주장했던 내용들일 터이다. 그러나, 제대로 하고 있는가? 그래서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라는 질문에는 딱히 내놓을 만한 답변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우리가 그동안 유체이탈식 사고와 화법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문화재단은 이러저러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세워 문화재단을 주어삼아 사고하다보면 영혼 없는 기관 역할론에 빠지기 십상이다. 문화행정서비스 체계 속에 위치한 문화재단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면 그 수행의 주체는 누구인지, 문화재단을 실제로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어디에서 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탐구의 기억이 우리에겐 없다. 물론 이러한 탐구가 쉽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문화재단 대표이사 혹은 이사장이라는 이름의 기관장의 역할론과 자질론에 대한 언급 자체가 민감사항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문화재단 조직원에 대한 엄정한 분석과 평가에 직면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한 탓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실시된 지방자치제의 산물로서 설립되기 시작한 문화재단의 역사가 꺾인 반세기가 된 지금, 우리는 내부를 향해 질문을 던져야 할 때가 되었다. 문화재단이 주어(주체)가 아니라 문화재단 조직원이 주어(주체)가 되는 질문,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성찰에 바탕을 둔 질문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기관장의 리더십만큼이나 문화재단 구성원이자 지역문화예술 생태계의 일원으로서의 우리 스스로의 역량과 자질에 대해서도 엄격하고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진정한 지역 문화분권과 문화자치는 지역이 문화정책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을 때 실현될 수 있다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우선 우리는 스스로를 조직의 주체로서 인식하고 있는지, 우리의 조직 자치 역량은 충분한지 성찰해야 한다.

 

글의 첫머리에 제주재단 사례를 든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1#2에 나타난 기관장의 리더십의 양상과 역할 차이는 극명하다. 이를 두고 기관장의 자질론을 애써 강조할 필요는 없으리라 믿는다. 다만 문화재단 경영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거대담론에 의해, 사회적 가치 판단에 의해, 탁월한 리더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명백해 보인다. 더욱이,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리더(기관장)의 시간은 짧다. 이에 비해 지속적으로 순환되는 조직 구성원의 시간은 그보다 훨씬 길고 이는 곧 재단의 시간을 이룬다. 핵심은 조직 구성원의 시간이 갖는 확장력이다. 조직에 발생한 쟁점이나 현안에 대해 집단지성을 통해 스스로 해결의 주체로 변화해가며, 이 경험치를 바탕으로 자발적 위기해결 및 갈등조정, 지속가능 시스템을 구축해나가는 확장력이야말로 조직 구성원의 자치역량의 본질이라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2 과정에서 제주재단 구성원들이 얻은 성과는 결코 가볍지 않다. 결국 공무원이 파견된 결과만으로는 실패사례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재단 노조를 주축으로 한 적극적 현안 대응 경험이야말로 조직 구성원의 자치역량 필요성 인식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공무원 파견 이후 재단 노조는 제주특별자치도의회에 재단이 공무원 파견 요청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된 제주문화예술재단 설립 및 육성 조례개정을 청원하였다. 물론 그 결과도 성공적이지 않았다. 도의회가 청원을 수용하는 대신 제주도로 토스했고, 제주도는 도와 도의회 등과의 유기적 관계 형성과 원활한 업무처리를 위해 관련 규정 존치가 필요하다라고 회신하였다. 그러나 이 실망스러운 결과를 반전, 만회할 수 있는 힘 역시 조직 구성원의 시간에 있다고 본다.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문화정책은 변화하고 이에 따라 문화재단에 요구되는 역할과 기능 역시 변화한다. 변화할뿐더러 나날이 무게가 더해지고 있다. 유체이탈식 문화재단 역할론만으로는 그 무게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 지자체장의 정치적 성향이나 기관장의 리더십이 문화재단의 역량을 규정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 문화재단 구성원은 어디에 서 있는가, 누구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문해야 한다. 조직의 자율성(自律性)은 조직 구성원의 실천적 자강(自强)으로 학습 배양된 자치(自治)역량에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문화분권, 문화재단, 자치역량, 조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