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보고서 톺아보기: 「사회문제 완화를 위한 문화예술 활동 조사 연구」
이지훈 (필로아트랩 대표)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가 또 하나의 연구 보고서를 펴냈다. 주제는 「사회문제 완화를 위한 문화예술 활동 조사 연구」다. 일 년 남짓 정책연구센터가 애써 들인 공력이 만만치 않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정책적 시사점> 항목이다. 사실 문화정책의 관점에서 ‘현황 조사’를 한다는 것은 문화 활동가들이 본받을 만한 ‘모범 사례’들을 발굴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장기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정책 개발로 귀결된다.
이 관점에서 보고서는 정책 개발의 패러다임을 가다듬느라 노력한 흔적이 뚜렷하다. ‘연구배경 및 목적’에서 정책적 시사점을 밝히고 ‘국내외 사례’의 시사점에 이어, ‘부산 특화 사회문제 유형화’와 ‘유형별 문화예술 활동 사례 및 시사점’을 정리하고, 결론 부분에서 ‘정책적 제언’과 ‘향후 과제’를 분명한 논점으로 제안한다. 연구팀의 노력과 공력이 돋보이는 이유다.
보고서는 먼저 ‘문화정책이 시대와 함께 바뀌고 있다’고 전제하고, 문화정책에서 핵심 가치가 변해온 흐름을 시대별로 요약한다. 1940년대 치유 가치, 1960년대 향유 가치, 1990년대 경제적 가치, 2000년대 교육적 가치, 2010년대 도시재생 가치, 2020년대 사회적 가치. 이때 정책 연구자와 현장 활동가들을 괴롭히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사회’란 단어의 포괄성에서 기인할 것이다. ‘사회’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사회적 가치는 새로운 가치인지, 아니면 기존의 핵심 가치들을 모두 포괄(해야)하는 것인지.
보고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로 현재의 사회적 가치를 1940년대 치유 가치와 연결한다. 이 연결의 매개가 되는 것은 코로나 19다. 말하자면 “코로나 19 위기를 문화예술의 사회적 영향 확산의 애드보커시 기회로 활용하자”(13쪽)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대별 핵심 가치의 스펙트럼은 1940년대와 2020년대가 치유 가치로 맞물리는 형태의 둥근 원을 이루게 된다.
분명 이 논리는 설득력이 있다. 코로나 19는 하나의 동일한 위협에 대한 전 지구적인 집단 경험이다. 이 집단 경험의 범위는 1940년대의 세계대전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고서는 오늘날 문화 활동의 초점을 코로나 19의 정신적 상처 치유에 맞추며, 문화 활동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자고 제안하는 것 같다. 1940년대 영국이 예술 활동의 중심을 세계대전의 정신적 상처 치유에 두며 예술위원회를 출범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보고서는 문화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치유로 제한하지 않는다. 문화예술이 도시 정책의 중심에서 도심부 활성화, 지역커뮤니티(마을만들기), 산업, 교육, 복지 정책과 연동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이 대목에서 보고서는 사회적 가치 속에 기존의 가치(치유, 향유, 경제, 교육, 도시재생)를 모두 포함시킨다. 또 미국 AFTA(Americans for the Arts)의 ‘지역 예술 기관에 투자해야 하는 10가지 이유’를 인용한다. 이때 치유 개념을 통해 구체화되고 예리해진 사회적 가치 개념이 ‘뭉뚝한’ 개념으로 되돌아온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요컨대 보고서는 2020년대 사회적 가치의 특수성과 기존의 가치들에 대한 포괄성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다소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즉 [ ‘문화정책이 시대와 함께 바뀌고 있다’ ⇒ ‘사회적 가치는 2020년대 패러다임 변동에 부합한다’ ]며 2020년대 사회적 가치의 특수성을 말해놓고, 그 뒤에 기존의 가치들을 모두 한데 묶어 포괄하는데, 이것은 논리적으로 상당히 어색하다는 말이다.
이런 혼란은 아무래도 2020년대 사회적 가치의 특수성을 좀 더 분명하게 서술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오늘날의 사회와 과거의 사회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단지 양적인 발전의 문제가 아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며 ‘세계화’가 진행되고, 인터넷 상용화 서비스가 시작된다. 이에 따라 1995년을 기점으로 전 세계의 사회(공동체)는 확연히 바뀐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오늘날 사회란 것, 공동체란 것 자체가 거의 와해된 상태에 이르렀다.
이제는 사회 성원들의 신체적인 ‘공통 감각’도 거의 없고, 공동체에 대한 ‘공통 기억’도 거의 사라졌다. 현재 20대(1995년 이후 출생) 청년 가운데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과 함께 뛰놀았던 기억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이처럼 사회(공동체)가 와해된 원인으로는 앞서 말한 세계화와 함께 사회 시스템의 ‘전문 관료화’와 정보기술(IT) 발전이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이야기된다(관료화와 IT는 상호작용·결합한다). 이 관점에서는 코로나 19 이후의 비대면 기술·문화, 또 4차 산업혁명 기술 발전이 사회의 몰락을 한층 가속화할 수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의 몰락은 몰인격화, 곧 인간성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그 결과가 이른바 ‘사회문제’다).
2020년대 문화정책에서 사회적 가치의 특수성은 이 맥락에서 설정돼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이러저러한 사회문제들의 해결보다 <사회라는 것 자체를 재건>하는 것이다. 이때 문화예술이 레저(여가), ‘리-크리에이션’(재충전), 오락(엔터테인먼트), 테라피와 다른 이유다. 여기서 문화예술은 단지 심신을 쉬게 하고 상쾌하게 사회로 되돌려 보내는 활동이 아니라, 이 삭막해진 사회에서 함께할 ‘동료’를 만나게 하고, 나름대로의 작은 공동체를 만들며, 현재 사회의 ‘외부’를 함께 꿈꾸게 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이 같은 ‘사회(공동체)의 재건’이 말 그대로 과거 사회의 복구일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은 현재 사회의 몰인격화 과정에서 저하된 인간의 감성·감정을 드높이고, 공통 감각, 공통 기억을 새로, 함께 만들어간다. 이 활동을 넓은 뜻에서 ‘커뮤니티 아트’로 부를 수 있다. 이때 커뮤니티 아트는 기존의 지역 커뮤니티(마을)에 들어가는 활동이라기보다 <새 커뮤니티를 만드는 활동>이다. 그것은 인식 활동(문학, 영화)에서도, 신체 활동(음악, 무용)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기존의 예술 활동과 다른 점은 공통 감각, 공통 기억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공동체)적 지향성에 있다.
또 2020년대 사회적 가치의 특수성은 기술 발전에 있어 대안적 기술 마련을 과제로 포함한다. 지면이 한정되어 길게 쓸 수 없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IT를 중심으로 하는 현대기술이 공동체의 몰락을 가속화하는 면이 있는 반면 공통 감각, 공통 기억, 공동체성을 살리는 기술 개발에 대한 논의도 현재 이뤄지고 있다. 특히 문화예술과 기술의 융합에 맡겨진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 관점에서 2020년대 사회적 가치는 기존의 가치들을 포괄할 수 있다. 물론 과거와는 다른 차원에서 말이다. 1940년대와 2020년대의 치유 가치는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그때는 나름대로의 사회가 있었고, 지금은 사회가 거의 와해됐다. 그럼에도 코로나 19에 관한 보고서의 제안은 분명 유효하다. 이 세계적인 집단 경험은 확실히 유대감, 공감, 연대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레베카 솔닛의 말처럼 “재난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뒷문”이 될 수도 있다(『이 폐허를 응시하라』). 재난은 그보다 더 강한 도움, 연대, 돌봄, 즉 사회(공동체)가 자라는 현장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코로나 19는 말 그대로 사회 자체를 재건하는, 사회적 가치 관점에서 중요한 계기다. 이 계기를 지렛대로 삼아 다양한 영역(이른바 사회문제들 영역)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문화와 타 분야 정책 간의 “관계 황단적 관점”(72~75쪽)일 것이다.
반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문화예술이 일반 시민 입장에서 재미가 있는지, 몰입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질 법하다. 특히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나름대로 문화 수준이 있는 젊은 세대에게 기획자들이 무리하게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것은 거부감을 줄 수 있다. 문화예술 기획자의 수준이 상승하지 못한다면, 외면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보고서 구성을 보면, 사례(국내외, 부산지역) 조사가 총 127쪽으로 전체 분량 163쪽의 78%에 해당한다. 하지만 상당수가 문헌 조사이거나 ‘우리는 이렇게 활동한다’는 수행 단체의 자기 선언을 그대로 인용한 조사가 많은 데 비해, 실효성 조사는 많지 않다. 참여 당사자들의 의견 청취도 없고, 제3자의 의견, 평가도 거의 없다. 앞으로 이런 문제가 개선, 보완된 후속 연구가 나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