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아카이브

HOME 정책아카이브 문화정책이슈페이퍼

해당메뉴 명

메뉴 열기닫기 버튼

문화정책이슈페이퍼

[이슈] 기초단위 문화현장에서 공공과 민간이 함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발행일2021-10 발행처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첨부파일

기초단위 문화현장에서 공공과 민간이 함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문화예술 플랜비 송교성 지식공유실장

 

기초단위 문화예술 지원 강화의 흐름

문화예술을 공공적인 영역으로 인식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시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수한 예술 창작이나 고유한 문화유산에 대한 지원만큼, 지역문화나 생활문화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고,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삶의 터를 중심으로 문화적 환경을 개선하고 삶의 만족도를 높이려는 것이다.

최근 새롭게 나타나는 문화예술 사업들은 기초적인 생활권 단위의 문화현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주요한 사업들의 공모 내용을 살펴보면, 시민들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접근성이 좋은 장소를 프로그램 내용 못지않게 핵심적인 평가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문화예술 사업의 효과를 높이고, 나아가 주민들이 직접 사업에 참여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생활권의 범위는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도시를 기준으로 집과 직장이 있고 평상시 이용하는 식당이나 여가 공간 등을 고려할 때 1~2개의 구()나 동() 단위 정도로 범위를 설정할 수 있다.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는 범위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기초단위 문화관련 기관이나 시설, 프로그램/콘텐츠가 집적되어 있다. 부산을 예로 본다면 구 단위의 문화회관이나 문화원, 문화재단이 있고, 동 단위로는 생활문화센터 등이 있다. 또한 도서관, 평생학습관, 청소년 문화의 집,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관, 생활SOC시설이나, 도시재생 거점 시설 등의 유관시설도 있다. 여기에 구에서 개최하는 대규모 축제에서부터 소규모 마을 축제, 공연행사를 비롯하여 주민 센터 문화예술 프로그램, 혹은 마을잡지나 지도, 서적 등의 콘텐츠들도 상당하다. 더군다나 민간의 서점, 전시공간, 공방, 인문학 단체 등을 고려하면 상당히 많은 문화기관과 자원들이 생활권에 밀집되어 있다. , 주민의 참여를 능동적으로 이끌고, 지역문화를 활성화 하는데 있어서 활용 가능한 기초단위 문화자원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실례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신나는예술여행’, 지역문화진흥원의 생활문화공동체’, ‘지역문화생태계구축’,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기초 단위 문화예술교육 거점 구축 지원사업과 같은 중앙 기관의 최근 사업들은 기초단위의 시설, 공간, 프로그램, 예술가와 기획자, 시민들이 서로 연결되어 지역사회 중심의 자생적인 문화적 생태계를 일구어 나가도록 지원하고 있다.

문화예술 사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영역의 일이자, 공공적인 부분과 사적인 부분이 혼재되어 있어 상당히 복잡다단하고 섬세한 일이다. 예를 들어, 어르신을 대상으로 간단한 글쓰기 프로그램도 제대로 운영하려면 많은 손길과 자원의 결합이 필요하다. 어르신들이 걸음 편하게 쉽게 오고갈 수 있는 지역의 문화공간을 찾거나, 지역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가지고 어르신들과 소통하며 강의를 이끌 수 있는 예술가를 선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 일이다. 공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는 만큼 나는 몰랐다라는 어르신이 없도록 널리 알리고, 망설이는 분이 있다면 상당 시간을 들여 참여를 유도하기도 한다. 때때로 수업이 끝나면 자식 자랑이나 세월의 무상함을 한탄 하시는 이야기도 들어드리고, 어려운 강의를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는 일도 필요하다. 당연히 공공기관의 담당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런 일들에 적합한 전문성을 가지고, 시간과 노력을 투여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진 민간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현장의 문제점과 과제들

그런데 문화정책 관련 연구나 사업을 수행하면서 현장의 의견을 듣다보면, 공통으로 지적되는 문제점이 있다. 기초단위로 내려올수록 공공기관의 사업이나 공간 운영이 대체로 비효율적이고 현장의 수요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 구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축제, 전시, 공연, 강연 등의 문화예술 사업들이나 공간들을 지자체 담당 공무원이나 혹은 산하 기관이 직접 기획을 하고 직영을 하면서,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민간이 결합할 여지가 거의 없다. 필요에 따라 일부 사업의 경우 위탁이나 용역이 진행되고는 하지만 이 경우에도 민간의 참여가 상당히 제한적이고 이미 사업의 방향이나 내용이 정해져서 단순 대행 수준으로, 민간의 창의성을 발휘하기도 힘들다. 물론 담당자의 특출한 능력에 따라 좋은 사례가 나올 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늘 해오던 사업의 반복에 불과하거나, 과도한 예산이 사용되면서도 정작 변화되는 시대에 뒤떨어진 질 낮은 프로그램이 부지기수다. 지역문화 생태계에 기여하지 못하는 보여주기식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공모사업을 통해 보조금 형태로 민간이 수행하는 경우도 한계가 뚜렷하다. 사업의 목적과 취지에 맞게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 까지는 공공과 민간이 그럭저럭 합의를 하지만, 그에 맞는 예산사용이나 운영에 있어서 제약들이 상당히 많다. 실제 사업 실행에 맞지 않게 예산을 사용해야 하거나, 보고서 작성이나 정산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물론 전에 비해 많은 부분이 개선이 되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지적한다. 사실 이 문제는 기초단위에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도 하다.

기초단위 공간이나 시설 운영도 현장의 수요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동아리나 연습공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공공기관이 직접 운영하면서, 정작 활동이 왕성한 퇴근 후 시간대나 주말에는 문을 닫아서 무용지물인 경우도 많다. 잘 만들어진 거점시설들도 운영 인력과 예산이 거의 시설관리 수준으로만 지원되어 폐쇄되거나 활용도가 떨어지는 텅 빈 공간으로 남아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문제가 해당 공공기관만의 문제는 아니다. 실제 담당자들을 만나보면 놀라울 만큼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분들도 많다. 더군다나 민간과 협력하기에는 배정된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혹은 예산 사용에 있어서 제약과 한계가 있어서 기관의 담당자 입장에서도 풀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

 

기초단위에서 공공과 민간의 관계와 역할

그동안 이러한 문제들은 끊임없이 지적되어 왔고, 해결책으로 민관 거버넌스 구축이 강조되어 왔다. 그래서 각종의 위원회 제도나 재단의 설립을 통해 민간 중심의 전문화?효율화를 추구해왔다. 최근에는 이를 자치와 분권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 예컨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제2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2020~2024)을 살펴보면 핵심 가치로 자치와 분권을 내세우고, ‘시민의 참여로 문화자치 생태계 구축을 첫 번째 전략 및 정책 과제로 제안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관련 법 제도의 제개정과 기본계획 수립 등의 지역문화 자치기반 구축 유연하고 통합적인 문화예산 및 보조사업 운용 추진 등의 지역문화 협력, 전달체계 개선 지역문화 재정의 민주성, 자율성 제고를 위한 지역문화 재정 확충 지역문화 전문 인력 양성 및 일자리 지원 등의 지역문화 역량 강화를 세부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번 계획의 중요한 점은 제도, 예산 체계 등의 개선을 통한 실질적인 분권을 강조한 데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기초단위 영역에서도 다양한 민간 위원회나 자문기구 등이 구성되어 형식적인 자치 체계는 잘 갖춰진 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요한 사업 결정이나 예산집행의 권한이 없다보니, 단순 의견 수렴 정도의 참여 수준에 그치고 있다. 민간의 판단과 결정권한이 중요하다는 점은 부산국제영화제나 부산비엔날레의 운영사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제 기초단위에서도 공공-민간이 상하의 관계가 아닌 대등하고 수평적인 관계로 설정되어야 한다.

그래서 공공이냐 민간이냐는 이분법적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무조건 문제인 것도 아니며, 민간이라서 잘하는 것만도 아니다. 배제가 아닌 상보적인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민간에게 권한을 맡기는 경우, 알아서 자생하라며 공공적인 지원을 끊어버리거나, 혹은 공공의 역할을 고루한 간섭이라고 배척하면서 문제들이 발생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특히 소규모로 잘게 쪼개진 형태의 사업일 수밖에 없는 기초단위 영역은 공공과 민간이 조화롭게 협력할 때 비로소 하나의 지역문화로 연결될 수 있다. 이상적인 소리라고 들릴 수도 있겠지만,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의 법정 문화도시 지정 사업이 바로 이러한 공공-민간의 협력을 전제하고 있다. 공공-민간이 서로 신뢰를 가지고 파트너쉽을 형성하여, 공공은 제도와 예산의 안정적인 운영과 지원을, 민간은 공공의 시야를 확장하는 사업의 개발과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문화공동체 형성을 목표로 협업하고 있다.

특히 기초단위 현장에서의 사업은 플랫폼 형태를 지향해야 한다. 교육, 복지, 가족, 세대, 다양성, 도시재생, 지역 기록 등 문화예술 영역은 갈수록 확장되고 있다. 단순 참여에서 창작과 기획의 역할까지 시민의 문화 수요도 복잡다단해지고 있다. 한 명의 예술가가, 하나의 문화단체가 접근하기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각 영역에서 전문성을 가진 다양한 문화 인력과 자원이 서로 결합하는 플랫폼 형태의 사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공공은 일반적인 위원회의 수준을 넘어, 총괄기획자 선임이나 컨소시엄 등 다양한 형태로 민간의 참여구조를 확장하는 형태로 사업을 펼칠 필요가 있다. 민간의 경우 주민, 예술가, 전문가, 행정 담당자 등 다양한 주체들의 이해관계를 효율적으로 조율하고, 매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인력 한계와 담당자 변경 등으로 공공에서 지속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네트워크 구축과 같은 장기적은 일은 반드시 민간의 힘이 필요하다. 생활이 이루어지는 가장 기초적인 현장에서부터 공공-민간의 협력으로 지역문화의 생태계가 더욱 튼튼해지길 기대해본다.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지역문화, 지역문화생태계, 분권, 문화분권, 문화자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