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예술적으로 살기
정영수(대천마을학교 활동가)
#어느 마을활동가의 일상
돌콩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잠시 미적거리다가 출근 준비를 한다. 얼마전부터 소리쟁이 풀삼푸를 쓰기 시작했다. 대천마을학교에서 특강으로 마을의 쌈지공원 곳곳에 자라나고 있는 소리쟁이 풀을 채취해 말려 데친 액으로 삼푸를 만든 적이 있는데 그때 득템했다. 두피와 탈모예방에도 좋다는데, 효과가 극적이진 않아도 건강한 느낌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세수를 하고 난 뒤엔 역시 직접 만든 스킨과 크림을 바른다. 마을에 풀 전문가가 있고, 천연물품 공방이 있는 덕이다.
그녀가 출근하는 곳은 화명2동에 자리한 대천마을학교. 마을사람들의 평생교육문화공동체를 꿈꾸는 사랑방 같은 공간인데, 십시일반 후원으로 올해 14년째 이어져오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마을공동체의 많은 일상을 바꿔놓았고 마을학교 역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부산문화재단의 예술동호회 지원사업을 수행하며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던 수업 일부를 구성원의 주체성을 더 높이려 동아리 형태로 전환해 보았고 마을학교 동아리 중 고참격인 바느질동아리는 개인 소품 만들기에서 나아가 공동작업, 전시, 예술성과의 접목을 꾀하는 중인데 마을 내에서 문화활동을 기획하고 다시 마을로 나누는데 취지가 있다. 돌콩은 마을학교의 공간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일상을 챙기다 보니 동아리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거나 곁눈질을 하는 일이 잦다.
월요일 저녁은 연극동아리가 연습을 한다. 작년에 활동을 거의 쉬다시피 했는데 모임을 재정비하고 11월 연극 공연을 앞두고 맹연습 중이다. 마을에서 연극을 하고 싶은 사람이 모인 터라 대부분이 아마추어임에도 이미 두 번의 자체 공연을 하며 평범한 직장인이, 주부가, 학부모가 저녁이 되면 마을배우로 변신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1인당 천명을 모을 수 있는 천명배우(천만배우가 아닌)임을 자신한다.
수요일 1시 즈음 바느질 동아리 회원들로 마을학교가 북적북적해지면 슬그머니 끼어 수다를 얹기도 하고, ‘금손’들이 만들고 있는 뜨개질, 옷, 인형 등을 보며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같은 날 저녁 8시가 넘으면 주로 직장인들로 구성된 마을학교 밴드동아리 사람들이 하는 악기 세팅이 시작된다. 대천마을학교 초보밴드를 구성한다고 홍보지를 띄웠을 때 거의 하루 만에 마감이 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자리 나면 끼고 싶다는 대기자만 열 명이 가까이 되는데, 악기 대수와 강사 등의 문제로 마을사람들의 열망을 채워주지 못해 아쉽다. 드럼연주가 로망이었던 사람들, 20년 전에 대학동아리로 통기타를 잡아 보고 새삼스레 베이스 기타를 잡은 사람,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사람, 피아노를 아주 잠깐 배운 건반 연주자 등 다들 일상을 바쁘게 보내는 직장인들임에도 어느덧 노래 세 곡 정도는 연주하게 된 경지라 초보밴드의 장족의 발전이 신기할 따름이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밴드가 롤모델이다.
목요일 오전 캘리그라피 동아리 세팅도 돕는다. 캘리는 다른 활동에 비해 정적이긴 하나 그래서 번잡한 마음들이 가라앉고 좋은 문구를 쓰며 글 따라 기분도 정갈해 진다고 다들 입을 모은다. 정작 쓴 본인은 만족하지 않아도 폭풍 칭찬과 격려로 코로나 시대 위안이 되는 시간을 함께 한다.
금요일은 주로 마을학교에 가족프로그램이 펼쳐지는데 재능 있는 마을 사람을 강사로 초빙해 목공, 꽃꽂이, 요리 같은 문화프로그램에 마을사람들이 참여하거나 함께 영화를 본다. 이미 극장에서 본 영화라도 이웃들과 친한 친구들과 마을학교 거실에 편안 자세로 함께 보는 영화는 각자에게 또 새롭다.
마을학교에서 하루를 보내는 돌콩은 마을사람들과 문화, 예술활동을 함께 하며 이런저런 많은 업무들 속에서 최대의 문화적 수혜를 누리며 지낸다.
#마을에 재밌는 꺼리들과 함께 지내기
인문학적인 경험과 사고를 넓히고 문화예술을 자주 접하고 즐기며 심미안과 감수성을 가지는 것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됨을 믿는다.
두 아이가 초등, 유아일 때 사는 곳 주변의 문화회관, 도서관,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눈여겨 보았고, 한 때 해운대, 금정구, 동래구, 심지어 김해까지 문화회관 같은 공간에서 월별로 진행하는 프로그램 섭렵하며 소비하던 때가 있었다. 영화의 전당, 현대미술관이 있는 동네에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물론 문화거점 시설이 가까이에 들어서는 건 언제나 환영할 일) 지금은 화명금곡동과 북구지역에 펼쳐지는 다양한 활동과 공간에서의 일들을 미처 다 누리지 못할 때가 많다.
특히 생활의 주무대인 화명2동 대천마을에는 다양한 공동체들이 각자의 고유한 활동들을 다채롭게 펼쳐나가고 있는 터라 번지르르한 하드웨어가 아닌 북구의 자연자원, 공동체, 공간 등을 일상에서 만나는 것 또한 바쁜 활동가의 삶 속에서 다행스런 일이다. 물론 각자 원하는 바가 달라 문화접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에 순전히 나의 경험에 의한 만족도다. 그럼에도 마을학교에 친구들과 놀러왔다가 치유음악가 봄눈별의 리허설 장면을 만난 아이가 “돌콩, 제가 걱정이 있었는데 아까 음악을 듣고 진짜로 걱정이 좀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퇴근하는 길 마을극장에 들러 들었던 노래 한 자락에 발걸음에 힘을 보탰던 나의 경험과 견주어도 이렇게 일상에서 예술을 만나는 접점을 만들고 엮는 일이 의미 있음은 분명하다.
#예술+마을?
협치, 분권, 자치 이런 이야기를 곳곳에서 많이 한다. 아직은 문화자치라는 말도 낯설지만, 의료도 문화도 십년 이상 차이난다는 서울과 부산을 더이상 비교하지 않고 부산내에서 해운대와 북구를 비교하지 않고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경험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가 혹은 얼마나 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가로 이야기 한다면 어떨까. 전문공연장에서 본 유명 뮤지컬 공연도 멋졌지만, 내 옆의 마을 사람이 연극연습을 하며 숨겨진 끼를 발산하고 퇴근길에 마을학교에 들러 드럼연습을 하며 로망을 풀고 간다는 말에서 문화자치의 씨앗을 본다면 너무 좋게만 해석한 것일까.
대천마을학교가 평생문화교육공동체를 지향하며 나름의 시도를 하듯, 마을 곳곳에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마을 안에서 문화를 향유하고 주체가 되는 거점들이 많아지는 것은 필요하다. 작은 단위라도 그 기능을 수행하는 문화공간 있다면 거점에 대한 지원, 거점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한 인력에 대한 지원, 지속적인 컨텐츠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이 이뤄졌으면 한다. 문화재단 지원사업 종료 이후, 마을학교는 마을밴드를 어떻게 운영해 나갈까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지역문화 예술인들과의 교류나 지역내 자원의 네트워킹이 방안이 될 수 있다.
다만 마을마다 상황은 다르고 가진 자원이 다르니, 지역의 사정에 밝은 구단위 문화재단 같은 주체나 중심축이 필요한 것 같다. 무엇보다 마을단위로 문화예술 저변이 확대되는 것에 대한 인식이 있는지, 문화자치가 주어진다 해도 주민들이 그 준비가 되어 있는지, 마을 사람들이 원하는 일상에서의 문화예술의 경험은 무엇이고 활성화 되기 위해 뭐가 필요한가 이야기는 아래로부터 나왔으면 하고 필요하다면 그 이야기가 지금이라도 시작되면 좋겠다. 지역에 따라 문화예술교육 시설이 시급한 곳도 있고, 주민들의 연령과 구성원 관심도에 따라 원하는 문화예술의 영역도 다를 것이라 필요한 것을 물어봐 주는 누군가도 있으면 좋겠다.
공동체들이 마을에서 문화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권한? 솔직하게는 그런 권한이 우리에게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서 겨우 7년간 활동한 마을 새내기 활동가로서 뭐가 필요한지 묻는다면 앞서 했던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겠다. 마을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행정적으로 경제적으로 지원을 할 테니 자원이 있는 마을부터 시작하자고 판이 펼쳐지는 것에 대한 조심스러움도 있다. 굳이 문화자치라고 명명하지 않더라도 마을사람들의 소소한 문화수요를 읽고 엮어가는 일을 하고 있는 단위들이 있음과 공동체나 마을은 어떤 논의든 무르익는데 시간이 필요함을 고려해 주길 바란다. 바느질동아리가 10년 넘게 활동하며 구성원들이 공방을 차려 성장해 나가고 올해 예술적 비상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은 초기 몇 년간 한두 명이 동아리를 지켜갔을 때도 있었고 사람의 드나듦에도 활동을 이어가고 쌓아가고 숙성해간 시간이 있었음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사람들의 삶에 온기를 더하는 문화의 순풍이 마을에 골고루 불기를 바란다. 내가 사는 곳에 뭐가 좋냐는 물음에 한참 뜸을 들이다가 “공기가 좋지”라고 답할 게 아니라 “아이도 어른도 하고 싶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이 ‘가까이’에 있어 좋지!”라고 답할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