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자치 토양화를 위한 작은 미술관
구본호(동대문문화재단 대표이사)
국토교통부에서 지난달 팍세권·슬세권·욕세권 등 요즘 나온 ‘○세권’이라는 용어를 정리해서 보도했다. 몇 가지를 보면, ‘역세권’은 지하철역이 대략 반경 500m이내, 도보 7~8분 거리에 있는 가까운 거리를 말하는데, 이는 대부분 알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욕을 먹었으나 나중에는 인근지역에서 가장 선호하는 단지가 된다는 ‘욕세권’은 처음 듣는 말이다. 이런 말이 생기는 것은 우리 삶의 편리와 경제적 논리에 몸과 마음이 쉼 없이 움직이니까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한다. 또 공원(PARK)을 근처에 두고 있는 ‘팍세권’, 스타벅스가 근처에 있는 ‘스세권’이다. 은행, 행정기관이 가까운 지역인 ‘행세권’, 백화점, 마트, 복합쇼핑몰이 가까이에 있는 ‘몰세권’도 있다. 이 외에 ‘숲세권’, ‘쿠세권’, ‘쓱세권’, ‘컬세권’, ‘다세권’, ‘옆세권’ 등 다양한 말들도 생겼다. 필자가 간혹 사용하는 ‘슬세권’도 있다. 슬리퍼 신고 편안하게 다닐 수 있는 거리에 도서관, 문화센터 등이 다 있는 곳을 ‘슬세권’이라 한다. 대부분 육체적, 물질적, 경제적 편리에 생겼다면 유독 문화적 충족을 위한 ‘세권’이라 생각이 들어서다.
‘○세권’이면 뭐하라. 수도권이 아니면 그림에 떡이다. 고령화·인구유출이 가속화 된다는, 인구감소로 인한 지역소멸 위험은 수년 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지방소멸’ 위기가 현실로 닥쳤다. 정부가 전국의 시군구를 대상으로 인구감소지역 89곳을 처음 지정하고 지원책을 내놓은 것도 이런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막연한 불안이 아닌 현실로 닥쳐왔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되었다. 국토연구원은 지방 인구의 현저한 감소, 인구의 지역적 편재로 지방의 자립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이 늘고 지방소멸위험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무엇보다 연령별로는 수도권 유입 인구의 4분의 3 이상을 20대가 차지한다는 내용은 충격적이다. 인구감소지역에 부산의 동구, 서구, 영도구가 포함되어 있다. 부산도 소멸지구에 들어가고 있다.
지방자치제도가 생긴지 어느덧 30년이 지났다. 중앙정부 사무기관 400여개가 지방정부로 일괄 이양되었고, 이제 자치분권2.0 시대가 도래되었다고 한다. 저출산 고령화와 함께 지역소멸 문제는 차기 지방정부의 핵심과제가 될 것이다. 그럼, 문화예술인은 지방정부 핵심과제의 안정된 안착을 위해 무엇을 하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큰 과제에 작은 답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존속근린, 준한계근린, 한계근린 등 근린유형별로 맞춤형 대응전략을 국토연구원(2018)이 제안하였다. 여기에는 지속적 거주를 위해 최저수준 이상의 삶의 질 유지 및 공간복지 실현을 위한 생활서비스 접근성 개선과 거주민들의 지속적 거주 보장을 위한 지역사회 기반의 통합적 생활서비스 제공이 포함되어 있다. 일명 슬세권이다. 중소도시 또는 마을에서 편리한 문화복지를 누리게 한다면 정주의식은 향상 될 것이다. 슬리퍼를 신고 인근 도서관, 복지관, 문화센터를 드려는 여유를 가진다면, 이것만한 정신적 문화향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속적 거주 보장을 위한 문화생활서비스의 하나인 작은 미술관을 더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보건, 복지, 의료, 교육 등 정책의 중심분야에 힘을 기우려도 바쁠 시기에 왜 미술관, 그것도 작은 미술관이 왜 필요한가에 관한 질문이 생긴다. 지방자치는 주민 행복 증진이 목적이기 때문에 주민의 삶의 질 개선에 초점을 두고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원론적 답을 내리면서 정부지원 현황과 지자체의 필요성을 보자.
우선, 우리가 미술품을 본다는 것은 ‘어디서’라는 장소와 어떤 미술이라는 ‘내용’이 공존하다. 장소적 측면에서는 시립미술관, 현대미술관, 갤러리·화랑, 전시실 등의 전시작품과 공원이나 광장에 설치된 조형물과 건축물미술작품 외에도 감천문화마을, 영도흰여울문화마을, 닥밭골벽화마을 등 다양한 곳에서 조형물, 벽화작품을 만날 수 있다. 내용으로 접근하면 장소적 측면이 불편을 가져온다. 사실화, 추상화, 벽화 등 어떤 내용이든 미술과 친해지고 싶은데, 미술관과 같은 특정장소까지 가야만 미술품을 만날 수 있는 불편함이다. ‘○세권’이라는 단어의 친근성은 나와 5분거리,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도 만찬가지다. 예술이 “~ 이런 것이다.”는 특정인이 향유하고 주창하는 예술 이야기는 이제 통설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슬세권에 미술관이 필요한 이유다.
작은 미술관 지원 사례를 보자.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민체육진흥공단과 함께 2015년부터 작은 미술관 조성 및 운영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작은 미술관은 지역의 공공유휴공간을 활용한 지역밀착형 소규모 미술 공간으로서, 전시와 교육, 주민 참여 창작 활동 등을 통해 지역 주민과 예술가가 함께 만들어 가는 문화공간이다. 문화예술 소외지역의 공공유휴공간과 기존 전시시설을 작은 미술관으로 조성·운영하도록 지원하여 전국 곳곳에 미술문화가 도달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국민의 시각예술향유기회를 확대하자는게 사업의 목적이다. 공공유휴공간이란 중앙부처, 지자체, 공공기관이 보유한 유휴공간으로 민간 소유 유휴공간은 제외되며, 신규 작은 미술관 조성비(공간 리모델링) 및 시설 관리 운영비는 공공기관의 자체예산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조성된 공간이 작지만 내실 있는 지역 내 공간으로 자리잡아 지속가능성을 갖도록 지속운영지원의 단계도 있다. 시설 운영뿐 아니라 지역미술관으로서의 콘텐츠 확보를 위한 전시활성화지원 사업까지 단계별 지원을 하고 있다. 실제 문화소외지역의 일상 속에서, 생활밀착형으로 지역현장의 최전방에서 지역주민들과 만나게 되는 지역의 공간조성에 그 의미는 크다. 현재 유휴공간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콘텐츠나 예산 확보가 원활하지 않은 자치단체 기관들이 예술창작집단과 연계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지원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작은 미술관은 사립미술관이나 비영리 전시공간처럼 민간 영역의 전시기획과 매개활동을 지원하는 사업과 달리 공공공간과 민간 기획매개활동이란 양쪽의 협력을 통해 지역에서 시각문화예술의 전망을 타진하는 중요한 사업이며, 이는 지역의 예술매개주체를 위한 기회 부여, 예술단체들의 안정적인 프로그램 운영, 미술이 특정 집단의 독점 대상이 아닌 삶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장치를 제공해준다고 언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앙부처가 지원하는 작은 미술관이 문화소외지역의 생활밀착형 문화공간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장소와 지원의 한계는 있다. 지자체 차원의 작은 미술관 조성 및 지원이 필요하다. 작은 미술관의 공간과 전시 활동이 지역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생길 수 있는 가능성과 의미가 크다. 지역의 공동체가 지역의 가장 생활밀착형이 된다는 의미가 포함되는 부분이다. 슬세권이란 내 생활 반경에서 이루어진다. 생활과 밀착된 문화활동이다. 노인정, 작은도서관 등이 내 생활 반경에 있듯이 작은 미술관 역시 반경에 있어야 지역 주민과 시각문화예술의 새로운 접점을 찾을 수 있다. 문화는 예술 향유의 생산과 소비를 목적으로 한다. 수익창출이 목적이 아니다. 이를 위해 친숙한 문화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친근감이다. 친근감은 상호 앎을 전제로 한다. 이때 앎은 고상하고 전문적인 지식 또는 유명인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 마을에서 소통하고 있는 전문가가 기획한 전시 및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 공유하며 지속성과 역량을 강화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갤러리, 미술관, 아트페어 등 특정장소로 이어지는 문화활동을 소산시키는 것이다.
작은 미술관은 전시공간이 없는 지역의 주민들도 미술을 경험하고 문화예술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작은 문화소비 공간이다. 작은 미술관을 통해 미술에 대한 문턱을 낮추고, 지역 주민들의 일상을 예술로 물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향유하는 공간이다.
지자체에서는 작은 미술관이라 명명하지 않더라도 지역 전문가 또는 지역 공동체 기획 전시 및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첫째, 작은도서관, 복지관 등 기관운영 공간 활용. 둘째, 지역의 기존 사립 갤러리·화랑 연계. 셋째, 마을공원 활용. 넷째, 빈집이나 유휴공간 활용 등을 이용한 작은 미술관 형태의 지원 및 활성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속적 지원이 되어야만 한다. 국세 대비 지방세 비율이 7:3으로 올랐다고 하지만 빠듯한 지자체 예산으로 이를 위한 출현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나 작은 미술관은 지역이 가장 필요로 하는 문화공간임은 자명하다.
작은 미술관이 왜 필요한가? 라는 질문을 다시해도 지방자치는 주민 행복 증진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주민의 삶의 질 개선에 초점을 두고 정책의 고민하기에 작은 미술관은 지역의 문화예술 복지를 위한, 문화예술 발전을 통한 지역분권, 문화자치의 토양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지만 토양의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