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혹은 상생? 부울경 공공미술관의 협력방안에 대하여
이진철(울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전국적으로 ‘이건희 미술관’ 유치가 쟁점이 되었을 때 각 지자체들은 상생의 방안을 찾지 않았다. 각 지자체는 나름의 타당성을 내세우며 유치경쟁에 뛰어들었다. 우리나라의 공립미술관들은 운영주체가 지방자치단체이거나 지방자치단체 소속의 문화재단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부산, 울산, 경남의 공립미술관도 예외가 아니다. 2022년 현재 부산, 울산, 경남 지역에는 부산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창원시립문신미술관,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김해문화의전당 윤슬미술관, 김해 클레이아크미술관 그리고 올해 개관한 울산시립미술관을 포함하여 모두 8곳의 공립미술관이 운영되고 있다. 또한 2025년 개관예정으로 창원시가 창원시립미술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경쟁 혹은 상생?
2021년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한국위원회에서는 「문화와 지역발전: 영향 극대화 - 지방자치단체와 공동체, 박물관을 위한 지침서」를 공개하였다. ICOM과 OECD가 공동으로 출간한 이 지침서는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변화의 주체로서 박물관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지침서에서 말하고 있는 ‘박물관’을 우리의 실정에 맞추어 ‘미술관’으로 이해하자면 미술관이 지역경제개발을 위해 지역의 관광개발, 도시재생 및 공동체 개발, 문화인식과 창의사회 촉진, 그리고 포용과 건강 및 웰빙을 위한 공간으로서 지역발전을 위한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오늘날의 미술관이 지역문화발전의 주도적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고 나아가 지역의 관광과 경제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의견은 미술관 관계자들에게 이미 널리 이해되고 있다. 그렇다면 부울경 메가시티 내 공립미술관들은 각 지역의 미술문화진흥을 주도하면서 광역경제권에도 기여하는 상생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우려하듯이 광역경제권이 되면 오히려 승자독식의 경쟁관계가 되지는 않을까?
만약 대중교통망의 확대로 부산과 울산, 그리고 경남의 도시들이 연결되고 이동이 쉬워지면 각 지역 공공미술관의 연간 관람객 수, 그리고 일일 관람객 수가 자연스럽게 증가될까? (사)문화다움 대표 추미경은* “메가시티에서의 문화전략은 지역문화를 수도권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남권 지역문화의 고유성을 독자적 가치로 포지셔닝하는 것이어야 하며, 이를 위한 지역문화의 내면적 역동성과 지속가능성을 주체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로컬문화의 고유성과 독자적 가치를 포지셔닝하는 기획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체불가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미술관
미술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메가시티 내 각 미술관들이 서로 협력하고 상생하기 위해서는 우선 독자적으로 대체불가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문화공간이 되어야 한다. 강력한 킬러 콘텐츠는 외피적이고 현란한 마케팅 기법을 넘어선다. 일례로 울산시립미술관은 개관에 앞서 소장품을 수집하면서 미디어아트 중심의 미술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백남준 작가의 「시스틴 채플」을 구입하였다. 「시스틴 채플」은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에 출품된 작품으로 백남준 작가에게 그 해 베니스비엔날레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쥐어준 작품이다. 「시스틴 채플」은 2019년 영국 테이트모던미술관 백남준 회고전에서 재현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을 비롯하여 싱가포르국립미술관을 순회하면서 백남준 작가의 대표작으로 소개되고 있다. 울산시립미술관의 소장품이 된 이후에도 「시스틴 채플」은 백남준 전시를 준비 중인 국내외 미술관으로부터 대여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백남준, 시스틴 채플, 1993/2021(installation view, Nam June Paik, SFMOMA, 2021) 울산시립미술관 소장
부산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그리고 울산시립미술관 등메가시티 내의 각 미술관들이 서로 대체불가한 소장품과 나름의 독자적 전시를 기획해 나갈 때 서로의 협력과 상생은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미술관이 각 지역의 미술을 재조명하고, 서울 중심의 미술사 서술을 보완함으로써 균형잡힌 한국미술사를 서술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각 미술관들이 고유하고 독자적이며 지금보다 더 매력있는 콘텐츠와 미술관 경험을 제공하지 못할 경우 반일 생활권 또는 일일생활권 내에 있는 메가시티 내 미술관들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 각 미술관들은 경쟁하지 않고 상생하기 위해 서로 차별화 되어야 한다.
부울경 메가시티만의 독자적인 문화예술진흥정책
국립현대미술관은 국가 대표미술관으로서 지역에 소재한 공·사립 미술관들의 진흥과 발전을 지원하는 역할이 주어져 있다. 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미술관 협력망 사업”이다. 부울경 메가시티 내의 각 미술관들은 국립현대미술관의 협력망 사업과는 별개로 수평적인 네트워크로 연결되어야 하며 부울경 메가시티만의 독자적인 미술관 지원프로그램이 운영되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향후에 만들어질 부울경특별지방자치단체 내에 미술관 운영, 연구 및 인력지원, 전시 및 교육프로그램 지원, 미술문화 향유자를 위한 서비스 제공 등 메가시티 내 미술관을 지원할 수 있는 재원이나 기구가 만들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또한 생각해 볼 수 있는 현안으로는 공동 수장고형 미술관의 건립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수장시설의 부족은 개별 미술관들마다 겪고 있는 어려움이다. 공동 수장고형 미술관이 만들어지면 소장품의 보관과 관리에 따르는 문제점들을 한곳에서 해소할 수 있다. 또한 부울경의 지역미술을 함께 연구할 수 있는 연구소의 건립도 제안한다. 한때 부산, 울산, 경남은 나뉘어져 있지 않았다. 모두 경상권이라는 한 지역이었다. 예술작품은 인위적인 행정구역을 따르지 않는다. 나아가 만약 재원이 확보될 수 있다면, 문화예술사업의 지역간 문화예술 교류 활성화가 목적인 프랑스의 지역문화예술위원회(CRAC) 제도와 미술은행처럼 소장품 확보의 형태로 지역 신인 작가들을 지원하는 현대미술지방재단(FRAC)의 운영 등 해외의 지역미술진흥 제도들을 벤치마킹할 필요도 있다. 부울경 메가시티만의 독자적인 문화예술진흥정책이 추진되는 즐거운 미래를 상상해 본다.
* 추미경, <동남권 메가시티 vs 작은 서사가 살아있는 창조적 로컬문화>,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웹진 34호,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