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균형발전과 부·울·경 메가시티, 문화정책을 위한 제언
(재)지역문화진흥원 원장 차재근(현/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
부·울·경 메가시티,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아직 구체적 실체가 없는 이 말에 대한 등장 배경과 이해가 필요한 것 같다. 우선 대한민국 헌법은 제9장(경제)에서 균형성장과 균형발전이라는 헌법 가치를 규정하고 있다. 제119조 2항은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당한 소득의 분배”로 영역과 계층 간 균형을, 제123조 2항에서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라고 조문하여 지역균형발전을 국가의 의무로 명시하였다.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헌법적 가치는-비록 헌법전문이나 별도의 장(국가균형발전)을 두어 좀 더 견고한 장치를 하지 못했지만-제123조 2항이 지역 간 균형발전의 헌법 가치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균형발전정책은 2003년 참여정부를 시작으로 역대 정부에 따라, 비록 경중의 차이는 있었으나 그나마 정책 일관성으로 유지되었던 대표적인 국가정책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국가 주도의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른 지역발전 모델과 수도권 중심의 불균형 성장전략은 인구와 자원을 비롯한 모든 것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지역 간 불균형과 경제, 사회적 격차를 심화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1월 29일 국가균형발전시대 개막을 선포하고 균특법제정과 균특회계 도입,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구성, 5개년계획 수립,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매년 1월 29일을 국가기념일인 국가균형발전의 날로 지정하여 균형발전이란 헌법가치의 중요성을 상기하고 있으나, 이를 기억하는 지자체는 드물다.
역대 균형발전정책의 주요 성과를 요약하면 첫 번째, 공간분산정책 영역이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균특법에 법적 근거를 마련(2004.1월)하고 순차적으로 153개 1차 공공기관 이전을 완료(2019.12월)하였다.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을 제정(2005.3월)하고 44개 중앙행정기관 및 소속기관을 이전하고, 이와 더불어 정주 인구 23만 명 이상의 성장거점으로 혁신도시 10개를 건설하였다. 두 번째는 지방재정확충 영역으로 균특회계를 신설(2004)하여 지역특성과 우선순위의 사업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지역상생발전기금을 조성(2010)하고, 지방소득세·소비세 등을 도입, 확대(2010)하여 국세 일부를 지방세로 이양하였다. 세 번째 영역은 지역혁신역량강화 영역이다. 지역특성을 살린 전략산업 육성과 광역경제권 정책으로 도입하여 지역의 산업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고 지역별 혁신협의회를 구성(2004), 주체 간 협치 역량을 향상시켰으며, 혁신역량강화와 교육여건 개선, 지역의 R&D 예산 확대를 위한 지방대학 혁신을 강화해 왔다.
이러한 역대 정부들의 균형발전전략은 문재인 정부를 지나면서 사람·공간·산업의 3대 전략으로 갱신화되어 진행되었다. 그 주요 성과를 3대 성과목표인 분권·혁신·포용에 따라 정리해 보면, 첫째 분권 영역이다. 시, 도별 혁신협의회 운용, 시도 중심의 기획이 가능한 지역혁신성장계획, 수평적 지위를 보장한 지역발전투자협약 등의 지역 주도 추진체계로의 개편을 통해 지역 주도의 지역균형뉴딜 정책을 확산하고, 23개 사업, 24.1조 원 규모의 예타면제와 초광역협력 프로젝트(13개) 기획 지원, 예타조사에 있어 균형발전 비중을 40%까지 높이고 균형발전지표를 도입하여 부처별 공모사업에 반영하게 함으로써 실질적인 선행 프로젝트를 시행하였다. 둘째로는 혁신영역이다. 14개의 국가혁신융복합클러스터를 육성하고 29개 규제자유특구를 지정하여 미래 신산업의 발굴 육성과 지역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였으며, 국가경영그룹이 총11회의 전국경제투어를 진행하며 현장성을 높였다. 광주 형 일자리로 대변되는 노·사·민·정 사회적 대타협에 기반한 상생형 일자리 모델(광주/부산/밀양/구미/군산/횡성)을 제시하고 혁신도시 시즌2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 셋째 포용영역이다. 201개 지자체 488곳의 도시재생뉴딜 사업 진행, 국정과제인 법정문화도시 30개 지정, 5개의 관광거점도시를 선정하여 매력 넘치는 지역 생활환경을 조성하고, 100원 택시 등 지역 교통체계를 보완하고 11개의 사회서비스원을 설립함으로써 양질의 사회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하며, 지역민이 모세혈관 가장 가까이서 문화,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3년간 32.9조가 투입되어 진행되는 생활SOC사업은 19.9만 명의 고용 창출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이러한 3대 전략과 성과목표의 성과를 위한 추진과제 중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초광역협력 지원전략과 인구감소와 및 지역소멸 대응이다. 수도권 과밀화와 지역소멸 위기를 개선하기 위해 수도권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제2, 제3의 경제·생활권 형성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지자체 간 경계를 넘어선 연계·협력·공유가 가능한 법(2022.1.13.지방자치법전부개정)·제도(규약의결/행정부승인/협약 등)적인 장치를 마련했다. 2020.9월부터 2021년 6월까지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초광역협력 프로젝트 기획지원이 진행되었고, 2021년 2월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에 대한 대통령 보고회를 통해 작금, 균형발전정책의 최대 이슈인 부·울·경 메가시티의 필요성이 수면 위로 등장했다. 같은 해 4월에서 10월까지 관계부처·균형위·분권위가 참여한 메가시티 지원 범부처 TF가 구성 운영되었고, 10월 14일 초광역협력 지원전략에 대한 대통령 보고회를 거쳐 최종 방침을 확정했다. 이러한 초광역협력을 통한 균형발전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인식한 지역이 동남권으로 일컬어지는 부·울·경이다. 3개 지자체장들과 지방의회가 뜻을 모았고, 오피니언, 지역언론 등 도시경영 관계 그룹이 그 중심에서 여론을 주도했다. 그 결과 부·울·경이 마련한 부산경남울산특별연합규약(안)은 부산(4/13), 경남/울산(4/15) 의회의 의결을 거쳐 4월 18일 행안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공식적인 설치를 완료, 19일 중앙정부와의 ‘분권협약’과 ‘초광역권 발전을 위한 공공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 연합의 출범 시기는 2023년 1월 1일이다. 그동안 연합의 장을 선출하고 집행기관과 행정기구, 청사를 마련해야 하며, 각 9명씩, 27명의 연합의회를 구성해야 한다. 규약이 정한 연합의 대상 업무는 각 지자체로부터 위임받은 18개 업무와 중앙정부로부터 위임받은 3개의 업무로 특정한다.
여기서 각 지자체가 위임한 18개 업무 중, 초광역 문화 ·관광체계 구축에 관한 업무에 관한 운영 방향과 철학, 가치에 대해 깊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위임된 처리사무는 3가지다. 문화예술진흥법 제3조에 따른 지역문화예술 상호협의체 구성·운영에 관한 사무, 관광진흥법 제48조 4항에 따른 관광 홍보 및 관광자원 개발 사무, 관광개발계획 수립에 관한 사무 등이다. 이중 문화예술진흥법 제3조에 따른 지역문화예술 상호협의체 구성·운영에 관한 사무에 대해 먼저 고민했으면 한다.
첫째, 문예진흥법의 한계에 있다. 우리나라 제 법률 중에 가장 누더기 법률이란 오명을 가진 이 법이 가진 위상이 문화 관련 39개 법률 중 최상위 개념이 아닌, 일반 법률의 하나일 뿐이다. 법 제2조 ?의1이 정의하고 있는 문화예술의 정의를 보면 “문화예술이란 문학, 미술(응용미술을 포함한다),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演藝), 국악, 사진, 건축, 어문(語文), 출판 및 만화를 말한다”로 규정되어 있다. 이는 고전적인 문화정책의 두 축인 전통문화계승발전과 예술지원 정책, 그마저도 예술지원이라는 한 축만이 대상일 수 있다. 더구나 느슨한 형태의 각 ”지역 간 상호협의체의 구성, 운영“이라는 제한된 사무는 처음부터 섣부른 기대를 가지기엔 난망하다. 당연히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 문화예술교육진흥법 같은 지역과 밀접한 법은 물론 문화 관련 제반 법률에 규정된 관련 사업들이 연합의 규약 안에서 통섭 될 수 있는 보완이 필요하다. 현재 위임 사무로는 실효적 성과보다는 향후 방향성과 개선방안을 제기하는 정기적 협의체 기능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는 부·울·경 특별지방자치단체의 정체성이 아직은 통합이 아닌 연합의 단계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실질적 이득이 없는 옥상옥의 장치, 대도시 중심의 또 다른 중심부의 등장 등의 비판이 여기서 시작된다. 그렇다고 통합으로 가기란 그리 만만한 과정 또한 아니다. 연합 형태인 부·울·경 특지단의 초유의 실험이 긍정적이고 가시적 성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느슨한 연합의 과정을 지나면서 다음 단계에 대한 준비를 했으면 한다. 가령, 연합의 준비과정을 소수의 스페셜리스트들이 주도했다면,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는 다양한 제너럴리스트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규칙과 과정을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셋째, 모든 것을 블랙홀로 빨아들이는 수도권이란 현존 괴물의 독점에 대응하고 쟁취하기 위한 동남권 메가시티라는 새로운 중심부를 모색하는 것은 변증법적 지역주의의 대표적 현상임에 틀림없고, 지역 입장에서도 미룰 수 없는 고육지책이다. 다만, 또 하나의 중심부 권력 혹은 동남권 이기주의가 태동하고, 대도시 중심부에서 밀려 다시 존재할 농산어촌(경남지역)의 소멸위기 등 제기되는 위험요인을 제거하기 위해선 비판적 지역주의 관점의 개념이 동남권 메가시티 즉, 부울경 특지단의 경영철학에 자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내용과 방안은 지면상, 다음 기회로 미룬다.
넷째, 문화의 개념과 문화정책의 범위를 고전적인 정책 개념이나 규약이 정한 문화예술진흥법 제3조에 가둔다면 메가시티에서 문화정책의 역할은 매우 협소하다. 문화는 문화영역만이 아닌 정치, 경제, 사회 등 우리 삶 모든 영역에서 작동되는 공통원리이다. 우리는 팬데믹이 가져온 이동제한, 고립과 외로움, 소통단절과 갈등 등으로 점증되는 지역화와 동시에, 급격한 정보시스템의 발달이 가져온 세계화와 정보사회의 병리현상인 극단성을 함께 경험하고 있다. 부·울·경 메가시티의 지향점이 또 하나의 중심부를 꿈꾸는 변증법적 지역주의에 머물지 않고, 지역이 가진 자산과 특성 곧 문화다양성을 주목하되 결코 지역에 가두지 않고, 세계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와 관통하게 하여 로털 투 로컬, 글로컬이 가능하게 했던 1970년대 세계 건축계의 혜성들이 추구한 비판적 지역주의의 관점을 추구해 주기를 바란다.
다섯째, 이제 문화정책의 언어 자체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인류세의 끄트머리 시기를 살아가고 있고, 현존 인류의 삶의 트렌드 변화 또한 매우 빠르다. 사회구조변화에의 대응, 문명치유, 문화적 도시재생, 인구감소와 소멸위기, 탈근대적인 삶의 추구, 고립과 외로움의 문제, 동네 지식인과 사회적 여가 등 새롭게 요구되는 언어들은 결국 그 당위성을 다음 부연에 바탕한다. 인간의 기본적 생존권 보장, 즉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만으로는, 앞으로 도래할 인류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다. 문화일류학자들의 예측대로 유일한 통로가 문화적 방식밖에는 대안이 없다.
작년 가을, 국제심포지움에서 만난 EU의 정책고문과 OECD의 문화 및 지역발전센터장인 피에르규 샤코는 이런 증언을 해 주었다. “EU, OECD, G20 같은 국제적 연대체는 물론 이에 속한 주요 국가들의 최상위 정책의 중심이 문화정책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놀라울 일이 아닌 급격히 촉진될 일이다.” 이 말을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