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 지역 예술인과 도모의 순간을 쌓아가기
원향미(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선임연구원)
※ 도모[圖謀] : (사람이 일을)이루려고 대책과 방법을 꾀하다
동질성과 차이로 엮인 부울경 지역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은 따로 또 같은 느낌을 가진 지역이다. 타 지역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로 한데 묶여버리는 독특한 언어세계를 공유하면서도 세 지역 간의 미묘한 언어차이로 서로를 구분할 수 있는 관계이다. e의 2승, 2의 2승, e의 e승은 대동단결하여 발음할 수 있지만 ‘뭐라카노?’ ‘뭐라카네?’ 와 같은 단어로 서로의 출신지를 확인할 수 있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지역적으로 인접해서 하나로 묶일 것 같지만 서로의 고유한 심지가 굳건히 서 있는 지역인 것이다.
부울경 예술인들에겐 이미 익숙한 경계 넘기
지난 해 정책연구센터에서 시행한 [2021 부산 예술인 실태조사]에서 부산지역 예술인들의 활동 지역에 대해 물어보았다. 주 활동지역 외 타 지역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2.1%가 타 지역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그 중 27.3%는 경남과 울산지역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타 지역 활동 이유를 물어보니 ‘협업 동료/네트워크가 많아서’가 가장 많은 응답으로 나왔다. 이미 예술인들은 지역 간 교류와 이동에 큰 이질감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올해 문화분권 연구조사 FGI(초점집단면접조사)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부울경 지역 간 다양한 네트워크를 만들기도 하였고, 함께 새로운 활동을 도모한 사례들도 적잖이 수집할 수 있었다. 부울경이라는 지역적 경계가 예술인들에게는 동료와 네트워크를 만날 수 있는 만남과 도모의 장인 것이다.
함께 상상하는 자리 – 부울경 문화분권 문화자치 상상토크
지난 7월 27일 영도 블루포트2021에서는 <부울경 지역 문화분권 문화자치 상상토크 “우리가 ○○할 수 있을지도”>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에서 추진 중인 [부울경 지역 문화분권·문화자치 기초연구] 중간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세 지역 예술인들과 함께 문화분권, 자치, 연대에 대한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예총, 민예총 관계자들과 지역 문화활동가들이 모여 문화분권 자치에 대한 생각과 실천사항, 핵심 가치 등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세 지역이 모여 협력하고 연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사항이지만 근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권한의 분산을 통한 수평적 관계맺음이기에 연대와 협력 이전 우리 지역에서의 분권과 자치 기반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도 함께 논의하였다.
참여자들은 문화분권과 자치에 대해 건강한 자립, 물리적 균형 등을 언급하면서 분권이 이루어지기 위해 제도적 기반뿐만 아니라 기초단위의 강조, 예술인 및 시민의 주체적 역량이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또한 부울경 지역 간 연대에 대해서는 큰 것이 작은 것을 지워버리는 구조가 아니라 다핵적 구조를 지향하면서 서로의 고유함이 잘 발현될 수 있는 토대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예술의 상상력으로 도모의 자리를 계속 이어나가기
이 자리는 그간 행정 영역의 단어로만 회자되던 분권, 자치에 대한 고민을 예술인들과 함께 나눠보고 예술인의 언어로 분권과 자치를 해석해보았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또한 연대의 가치에 대해서도 공통된 문제에 대한 공동의 해법을 모색하는 연대와 지역의 고유성을 더 잘 발현시키기 위한 연대 등 다양한 층위에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자리에서는 액션플랜이나 협력의 장을 당장 마련하기 위한 구체적 논의는 부족했다. 상상으로 시작한 자리이다 보니 가능성의 타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였을 뿐 방법론에 대한 부분은 논의가 잘 이루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상상토크라는 자리, 그리고 [부울경 지역 문화분권·문화자치 기초연구]라는 연구를 통해 만난 부울경 지역 예술인들은 연대와 협력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고, 함께 만나는 움직임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부울경 지역 예술인들이 새로운 것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가 다음 단계의 과제이다.
우선적으로 일단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보자는 의견도 있지만, 급하지 않고, 필연적이지 않은 만남의 자리는 생산적인 다음 단계를 만드는데 동력이 되지 못한다. 더욱 구체적인 의지와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도모가 지속가능성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부울경 지역의 공통된 문제들, 지역사회문제부터 예술환경의 고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지역 예술인들이 머리를 맞대어 서로의 장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들을 공유하는 것은 어떨까. 이번 토크와 FGI에서 제안되었던 예술인 권리보장에 대한 부울경 지역 간 공통 가이드라인 구축이나, 탄소중립실천을 위한 공동의 예술활동 등이 우선적으로 시도해볼 만한 연대의 씨앗이 될 수 있을거라 예상한다.
이러한 실천가능하고 지속가능한 도모의 자리는 문화행정 영역에서 깔아줘야 한다. 문화행정 영역에서는 이 도모의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그간 섣부른 협의체 만들기, 조직화, 과업 중심 활동으로 인한 참여주체의 소진 등 우리는 그간 도모의 자리에서 문화행정이 제대로 된 포지션을 잡지 못했을 때의 시행착오를 이미 알고 있다. ‘거리두기’라고도 표현될 수도 있고 ‘하는 일 없이 안 하는 일 없는’ 태도라고도 볼 수 있는 적절한 문화행정 영역의 준비가 성공적이고 지속가능한 부울경 예술인 간 연대의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역할임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