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 권역 문예회관 콘텐츠의
제작과 교류 활성화를 위해 고민해볼 점
서종호(김해문화재단 공연기획팀장)
문예회관의 역할이 다양해지는 시대이다. 공간을 기반으로 시설을 운영하던 시기를 벗어나 그 극장의 정체성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나타내고 기획이라는 방법을 통해 단순한 콘텐츠의 중간 제공자에서 적극적인 제안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문예회관은 그 운영 주체에 따라 다양한 미션을 부여받는다. 그 미션 중 최근 몇 년간 많이 언급되는 것이 제작극장화, 문예회관 공연 콘텐츠의 제작이다.
공공문예회관은 안정적으로 사용가능한 공간, 음향과 조명 등 극장 보유의 기기, 그리고 극장 소속의 기획자와 무대전문인력 등 콘텐츠 제작을 위한 기본 구성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다 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이나 문예회관에 소속되어 있는 지자체 소속 예술단체 등과의 협업을 통해 콘텐츠 제작의 기본적인 이해가 형성되어 있었던 터라 그리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 있었다.
멀리 해외나 타 지역 사례를 찾아보지 않더라도 부울경 권역의 문화예관에서 제작하거나 기획하는 콘텐츠가 꽤 많이 생산되고 있는데, 제작방향과 목적에 따라 지역예술인 또는 청년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거나, 지역의 문화, 역사, 인물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 전문제작진과의 협업을 통해 작품을 제작하는 등 민간제작사에서 만들어지는 작품과는 다르게 지역성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콘텐츠의 제작 방식 또한 공공극장의 자체 예산을 편성하여 제작하는 방법 (지자체의 필요성에 의해 소속 문예회관이 제작 주관을 추진하거나, 문예회관이 직접 제작하는 방법)과 공모사업을 통한 제작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의 ‘문예회관,예술단체 공연콘텐츠 공동제작ㆍ배급 프로그램’,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전국 공연예술 창제작유통협력사업’) 등 다양한 방식이 적용되고 있다.
그런데 콘텐츠의 생산은 확대되는 반면에 콘텐츠가 유통되어 지속성을 가지고 관객과 만나는 일은 무척 드물다. 콘텐츠 제작을 위한 단계에서 제작의 목적과 방향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콘텐츠가 만들어진 이후의 출구전략도 함께 고민해야하며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
가야사 재조명과 함께 역사문화콘텐츠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수로왕과 허왕후’의 러브스토리를 소재로 김해시와 김해문화재단이 제작한 창작 오페라 ‘허왕후’(2020년 제작), 부산의 신진예술인 참여와 육성을 위해 부산시가 주최하고 부산시립예술단과 부산문화회관의 협업으로 제작된 2개의 작품 ‘MOTI/어디로부터’(2021년 제작), ‘수퍼타이거’(2022년 제작)는 극장 자체 제작으로 추진한 콘텐츠로 제작 검토 단계에서 작품의 지속가능한 활용을 위한 고민이 계획에 반영된 사례이다.
김해문화재단은 창작오페라 ‘허왕후’ 초연 이후 제17회 대구오페라축제(2021년), 2021 서울오페라페스티벌(2021년), 제13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2022년) 등 공연을 지속해가고 있으며, 2023년 가야역사문화권 도시 교류공연, 2024년 전국체전 주제공연 이후 김해예술인이 무대세트나 의상, 그리고 작품을 활용할 수 있도록 출구전략을 수립하여 추진 중이다.
부산문화회관은 한국문화예술회관의 방방곡곡문화공감 국공립예술단체 지원사업을 활용하여 ‘MOTI/어디로부터’공연을 2022년 11월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의 기획공연으로 초청받아 경남의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언급한 사례들이 제작단계에서부터 지속가능한 콘텐츠의 활용을 고민한 사례일 수는 있지만 콘텐츠 교류와 활용의 좋은 예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콘텐츠 활용 예산의 확보, 타 극장 관계자와 관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예술성과 보편성 등이 뒤따라야 하며, 공간(공연장) 중심의 사업을 운영해야하는 인적자원의 한계 등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문제점을 지혜롭게 해결하고자 한 사례도 있다.
해운대문화회관, 영도문화예술회관, 동래문화회관이 협업하여 제작하고 있는 연극 ‘왕국의 전설- 잃어버린이야기’는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의 공모사업‘문예회관, 예술단체 공연콘텐츠 공동제작ㆍ배급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추진하는 콘텐츠이다. 이 콘텐츠의 주목할 점은 위에서 언급한 공모사업이 주로 멀리 떨어진 지역의 문예회관과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부산이라는 지역 내 문예회관이 협력하여 지역예술인과 함께 만든 콘텐츠, 부산 내 문예회관을 순회하며 공연한다는 점, 그리고 이후 콘텐츠를 꾸준히 활용할 수 있도록 협의를 추진하였다는 것이다. 동일한 역사 문화권의 동질성과 함께 작품의 보편성을 고려, 콘텐츠를 공동으로 제작하고 보유한다는 점에서 극장간 동반성장의 좋은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운대, 영도, 동래 문예회관의 사례처럼 지리적, 문화적, 역사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부울경 권역의 문예회관이 함께 콘텐츠 제작과 유통에 대해 지혜를 모은다면 제작 이후 콘텐츠의 교류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부ㆍ울ㆍ경 권역의 문예회관은 부울경연합(부울경메가시티)의 출범 이전부터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의 부울경지회(총 34개 문예회관이 소속되어 있다.)라는 네트워킹을 활용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문예회관의 현안에 대한 논의들을 이어왔다. 특히 최근에는 실무자간 콘텐츠의 공동제작과 문예회관 간 콘텐츠 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부ㆍ울ㆍ경 권역 문예회관의 콘텐츠 제작과 교류 활성화를 위해서는 문예회관 간의 콘텐츠 제작 정보 공유를 통해 우수사례 뿐만 아니라 추진의 어려움, 아쉬웠던 점을 공유하며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콘텐츠의 제작과 유통은 문예회관의 입장에서 늘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행착오를 잘 공유하려고 하지 않는다.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보를 공유하고 또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상호 간의 이해와 존중, 가치의 실현이 업무 추진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콘텐츠의 제작과 교류가 문예회관과 지역 예술생태계의 이익을 바탕으로 양보와 합의가 뒷받침되고 공동의 이익을 우선한다면 부울경 권역의 예술인과 관객 그리고 문예회관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콘텐츠가 생산되고 지속가능한 콘텐츠 교류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