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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1제곱미터의 우주

발행일2022-10 발행처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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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제곱미터의 우주

 

창파(실험실 C 아트 디렉터)

 

#다대포를 수집하기

  다대포는 어떤 곳인가, 또는 무엇으로 이뤄진 장소일까. 당신은 다대포라는 도시에 대해 어떤 기억을 지니고 있는가. 이 글은 1제곱미터의 우주프로젝트로 2021년 가을부터 2022년 여름까지, 부산 사하구에 위치한 다대포를 오가며 몽글몽글 피어올랐던 장소의 면모나, 만났던 이들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매서운 바람이 불던 날 몰운대에서 겨울눈을 기록하고 내려오다가 인상적인 풍경을 마주하였다. 성창기업에 산더미처럼 쌓인 통나무와 아파트 병풍 사이로 자그마한 해안에 한 무리의 채집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들은 모두 허리를 숙인 채 열중하여 무언가를 줍는 중이었는데, 미역인지 조개인지 알 수 없었다. 저렇게 줍는 것들을 과연 먹을 수 있을까. 여러 날 동안 그곳에 가면 같은 모습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궁금증을 키워가던 어느 날, 바다가 낮아지는 사리에는 해변에서 미역과 파래를 채집할 수 있다는 것과 이를 아는 사람만이 이곳에서 과감하게 해초를 줍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봄이 깊어지자 그들의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해초 채집의 계절이 막을 내린 것이다. 다른 물엣것의 시기가 돌아오면 홀연히 다시 모습을 드러내겠지. 바다와 삶의 시계를 맞추어 살아가는 법을 아는 고수들, 어촌의 계절 시계를 정확히 아는 존재를 깨닫게 해준 일화였다. 그들에게 자연의 시계를 헤아리는 법을 배우고 싶다. 기술이 고도화된 현대사회는 무엇이든 데이터로 예측할 수 있으며, 유튜브라는 새로운 정보의 바다에선 타인의 지식을 쉽사리 습득할 수 있다. 그러나 몇 번의 클릭과 달리 자연의 철과 때를 기다리는 일은 놀라운 경험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장을 걷기로 했다. 동네 골목이나 시장에서, 마을과 가까운 숲이나 바닷가에서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기억에 의존해 장소에 새겨진 생활사와 그곳만의 특수한 자원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것들의 흔적에 대해 수집한다. 우리의 도시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된 이야기가 산재해 있다. (불을 밝히면 서서히 밝아지는 방처럼) 지역에 생활사와 식물문화사의 교차점을 연결하다 보면, 그곳의 고유한 맥락이 서서히 드러난다.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해초 줍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지난 6, 1제곱미터의 우주프로젝트에서 몰운대라는 생태공간과 다대포 1사장이라는 생활사 공간을 중심으로 현장과 자료 연구의 과정을 거친 후에 해당 공간에서 장소특정적 전시를 열었다. 숲속의 오솔길과 몽돌이 자글자글 소리를 내는 바닷가 그리고 횟집 골목 사이를 거닐면서 관객은 다대포에 자생하는 식물에 대해 알아가고, 작품을 감상하거나 체험하며, 다대 토박이 주민의 이야기에 다가선다. 이때 관객은 그곳에 자연을, 예술 작품을, 지역에 요소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행동력을 요구받게 된다. 이것은 이번 프로젝트의 중요한 주제이자 개념인 ‘1제곱미터와도 연관되어 있다. ‘1제곱미터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한사람 정도 앉아있을 만큼의 작은 공간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무한의 이야기가 잠재되어 있는 소우주이기도 하다. ‘1미터는 한 팔을 쭉 뻗었을 때, 사회적으로 개인이 고유성이 지켜지면서 타인과도 친밀함을 유지하기에 적절한 거리이다. 나와 타인, 나와 동네, 나와 동식물처럼 다양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간격이다. ‘1미터의 공간에는 무수한 생명이 깃들어 있다. 몰운대에서 어느 곳이든 가만히 앉아 1미터의 공간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곳엔 엄청나게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땅속에는 씨앗과 뿌리가 들어 있고, 이와 연결된 곤충과 동물도 그 장소를 드나든다. ‘1미터는 생명을 움트게 하는 에너지와 자양분의 공간이다. 우리는 1제곱미터의 우주라는 렌즈를 통해 다대포 속 다양한 ‘1미터를 관객과 함께 찾아보고자 하였다. 1제곱미터의 우주는 장소가 지닌 생태적인 가치와 생활사적인 의미를 밝히는 문화예술의 실천이다.

 

  다대포는 우리나라의 가장 크고 긴 낙동강이 흘러 바다와 만나는 기수역이다. 강과 바다의 경계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민물과 갯물이 자유롭게 섞이고 어우러지며 다양한 농도의 염도가 분포하며, 덕분에 풍요로운 생태환경을 갖추었다. 덕분에 다대포 앞바다는 다채로운 종이 서식하고, 이러한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오래전부터 포구로써 어촌이 형성되어 사람이 정착하였다. 다대포 옛 포구의 모습을 다룬 기사(경향신문 19830204일 발행)에는 한 장의 사진이 실렸다. 봄철을 맞이해 배를 수리하는 두 어민의 모습과 뒷배경으로 꽤 많은 나룻배가 바다에 떠 있다. 현재는 볼 수 없는 광경이나, 다대포는 옛날부터 배가 드나드는 물류의 중심지였다. 포구, 군사지역, 여가시설과 산업시설, 밀항과 밀수, 황금어장과 활어시장처럼 바다를 맞댄 다대포는 부산의 끄트머리 항구이자 풍요를 상징하는 곳이다. 한 주민은 인터뷰에서 바다에는 캐도 캐도 황금이 계속해서 나온다.”라던 아버지의 말은 해주셨다. 황금어장. 다대포는 어민들에게 아낌없이 내어주고 기댈 수 있던 곳이고, 어울려 살아가는 공존의 토대였다. 1960년까지 다대포에서 멸치가 잡혔다고 한다. 그러나 다대포 앞바다에서 멸치가 사라지고, 후리소리(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7) 문화로 남아 전승되고 있는 것처럼 바다도 다대포도 사정이 달라졌다. 1967년 다대포 공설 해수욕장 개장, 1970년대 목재업체들의 설립, 1981-87년 다대지구 택지 조성사업으로 인한 대단지 아파트 건설 등 도시의 경관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고, 1990년대 거주 인구수가 2배 이상 증가하였다. 그 무렵 금속공장, 냉동창고, 수리조선, 신평·장림공단, 소각장 등 산업시설이 늘며 산업을 견인하는 도시의 역할이 더해졌다. 다대포는 생태환경과 산업도시의 모습이 뒤섞인 풍경을 갖게 되었다. 무질서하면서도 활기가 넘치는 경관 사이로 어촌의 일상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예술로 만나본 다대포

  실험실 C는 강은경, 고등어, 김경화, 김덕희, 김민정, 조혜진 작가와 다양한 전문 인력이 함께 하는 기획팀을 구성해 202111월부터 20224월까지 다대포에를 리서치 하였다. ‘1제곱미터의 우주에 관한 주제 스터디, 다대포의 거시사 조사 및 정리, 생활사 수집, 9명의 주민을 인터뷰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자의 생각을 전시에서 선보였다. 전시는 깔끔한 갤러리가 아니라 거친 생활의 공간으로 선택했다. 바로 우리가 걸었던 리서치 장소인 몰운대와 다대 제1사장을 중심으로 관객과 걸을 수 있는 루트를 물색했다. 작품을 보고 체험하고 듣기에 적합한 장소를 고르는 일은 꽤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전시 구성은 ‘1제곱미터의 우주’, ‘다대 포시즌(four seasons)’, ‘인 시즌(in season): 제철과 움직임들로 나뉜다. ‘다대 포시즌은 몰운대 속에서 1제곱미터의 우주를 찾아보고 감각하는 생태 체험 프로그램으로, 계절마다 다시 돌아오는 자연의 시스템이 선사하는 여러 장면 속에서 6월이라는 한 페이지를 함께 탐색한다. 현시대에 우리의 소통은 어떻게 달라졌으며, 관계의 회복이란 무엇인가를 다대포의 자연 속에서 사유하고 오감으로 감각하는 시간이었다. 몰운대 입구의 큰길이 아닌 사잇길을 30분 정도 걸어가면서 진행되었는데, 동백나무, 사스레피나무 군락, 새머루, 큰천남성 등 크고 작은 식물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어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1제곱미터의 우주에서는 예술이라는 렌즈를 통해 다대포의 비가시적 세계를 다루었다. 6명의 예술가는 다대포의 생태적 요소, 주민의 기억과 진술, 사회구조와 갈등, 시공간의 압축 등 도시의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인지하고 상상하도록 예술의 언어로 구체화하였다. 드넓고 풍요로운 바다와 산업시설, 폐소각장, 가덕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양지바른 터에 설치된 김경화 작가의 자유의 가능성(2022)은 다양한 존재를 보듬고 키워내는 어부림(魚付林)으로써 몰운대의 생태적인 에너지와 그에 못지않게 해안에 빼곡한 유리조각, 어업용 폐스티로폼 쓰레기를 채집하고 다듬어 사람과 자연의 경계에 선 다대포의 장소성을 간파한다. 높게 자란 참나무 군락과 사스레피나무 군락에 설치된 김민정 작가의 보이지 않는 루페(2022)는 리서치에서 수집한 자연과 도시의 이미지를 미시레벨로 확대한 드로잉으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드러나는 순간 인간과 무관하게 진화하고 변화해온 것들과의 관계를 세밀한 시선으로 쫓는다.

 
(왼) 김경화, <자유의 가능성>(2022), (오) 김민정, <보이지 않는 루페>(2022)
 

  고등어 작가는 몰운대에 있는 식물들이 듣는 소리를 사람들이 시각적으로 드로잉하는 방식으로 기록을 하는 사운드 스케이프 작업 다섯 개의 귀: 식물처럼 듣기(2022)와 상호 작용하는 두 종의 생물의 공진화와 다대포의 밀항을 연결한 영상작업 빛 먹이기(2022) 원화를 전시하였다. 김덕희 작가의 기억하는 바다(2022)는 수천만 년 동안 퇴적하며 형성된 몰운대의 자갈과 바위, 식물과 바다가 조우하는 무한한 시간 속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하여 사유하도록 제안한다. 몰운대 해안에서 관객은 바다를 기억하는 방법이라는 안내서를 따라 자연에 놓였을 때 느껴지는 감정과 몸짓이 지닌 의미를 생각하고 경험한다. 강은경 작가의 파래 떡: 바다와 나는 나누어 먹는다(2022)는 다대포에 환경적인 변화로 사라진 것들에 대해 인식하고, 또다시 헤아릴 수 없는 원인으로 사라질 수도 있는 것들의 안위를 바라는 식경험 퍼포먼스이다. 조혜진 작가는 합판에서 몽돌까지(2022)라는 제목처럼 합판공장부터 몽돌해변까지 오가며 나무를 모았다. 얇은 낱장의 나무가 겹쳐지고 단단해지며 쓰임새를 획득한 합판의 개념과 거센 조류의 영향으로 모든 것이 공평하게 둥글어지는 몽돌의 태도에 집중하며 이를 조각으로 설치한다.

(왼) 김덕희, <기억하는 바다>(2022), (오) 조혜진, <합판에서 몽돌까지>(2022)

 

  ‘인 시즌: 제철과 움직임들은 황금 어장이라 불릴 정도로 풍요로운 바다를 배경으로 형성된 다대포의 생활사를 다양한 매체로 찾아보고 체험하도록 제안한다. 지역사와 생활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마디 연결하기’, ‘파래’, ‘제절과 움직임들’, ‘그럼에도 다대포는 역사의 질곡과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계절마다 알맞은 것들이 존재하고 순환하는 다대포의 제철(in season)을 되새기며 상기하여 본다. 다대포의 장소적 특성, 어업의 생활상과 변화, 사시사철 반복되는 움직임에 대하여 거시사와 생활사를 교차하는 아카이브 형식으로 풀어내었다. 사운드스케이프 <다대포의 제철>은 전시 관람의 끝자락에 감상하는 작품으로 숲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이곳의 제철에 대한 주민의 인터뷰 목소리를 재편집한 음성 작업이다.

  몰운대 숲길과 다대포항의 공장들과 1사장의 상가들과 고운 모래 위를 걸으며, 때론 고요한 숲에서 솔바람 파도를 맞으며, 주체적으로 생활사를 구축해 온 아홉 명의 주민과 마주 앉아서 우리는 무수한 대화를 나누었다. 다대포라는 장소가 지닌 풍요롭고도 독보적인 환경과 그곳에 일어난 공간적인 변화를 세밀하게 찾고 생태와 예술과 생활사를 발견하려 했던 1제곱미터의 우주는 다대포에 감추어진 여러 우주를 비추어 준다

부울경, 문화공동체, 기후위기, 기후정의,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