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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문화는 청년들의 업(業)이 될 수 있을까

발행일2022-12 발행처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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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청년들의 업(業)이 될 수 있을까

 

김미양(문화기획자, 작가)

 

#1. 문화가 밥 먹여주나요.

  “선생님은 본업이 뭐예요? 지금 이거는 그냥 취미로 하시는 일일 테고.  돈은 따로 벌고 계실 거 아니에요, 맞죠?”
  “…….”
  몇 달 전, 부산진구의 한 생활문화공간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의 일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생활문화시설 인문프로그램 지원’ 사업을 통해 인문전문가로서 사례비를 받으며 5개월 간 프로그램을 이끌어오고 있었는데, ‘취미 아니냐’는 물음과 맞닥뜨리니 순간 당황스러웠다.
  내게 질문을 한 이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청년이었다.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잠시 휴식기를 택한 그는 부산 곳곳의 문화프로그램을 찾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부산광역시, 부산문화재단, 부산진문화재단, 부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 부산청년센터, 청년작당소, 청년월동기지 니트플레이스 등등 워낙 많은 기관과 공간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니 그것들만 찾아다녀도 그의 하루일과는 24시간이 모자랐다.
  현재 부산 내 청년대상 문화예술프로그램은 대부분 무료로 운영된다. 어떤 취지에서 무슨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어느 정도 규모의 사업인지 참가자 입장에선 속사정을 일일이 다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는 아마도 향유자 본인이 무료로 여가생활을 누리고 있으니, 프로그램을 진행자들 또한 재능기부 내지는 무보수의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는 거라 생각한 듯했다.
  “저도 사실 이런 일을 하고 싶은데, 생계유지가 안 될 것 같아서요…….”
  그의 말에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나에게 사실 이번 인문프로그램 운영은 최근 1년 중 가장 큰 보수를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경력을 쌓아간다면 앞으로는 정말 좋아하는 일로 밥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쌓여가던 중이었다. 그러나 희박한 희망이었다. ‘굶어죽지는 않으니까 도전하세요!’라는 말로 눈앞의 청년을 끌어들이기에는 아직 풀어야할 숙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2. 향유자에서 창작자로 변화는 했지만

  나는 외식조리학과를 졸업해 현재는 문화기획자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예술 계통의 전공자가 아닌데도 지금의 삶을 택하게 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계기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부산문화재단의 청년예술가 창작활동지원제도 중의 하나인 ‘청년예술가 생애 첫 창작활동’ 지원이다. 이 지원을 통해 2021년에 첫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2021년 초, ‘청년예술가 생애 첫 창작활동’ 지원 사업 공모 소식을 접했을 때 머릿속에 처음 든 생각은 ‘내가 청년예술가인가?’라는 의문이었다. 몇 년간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고 또 자발적으로 운영하기도 하며 글을 써오고 있었지만, 스스로를 ‘예술가’로 여겨본 적은 없었다. 해당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사업일 거라 지레짐작하고 포기하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부산문화재단이 생각하는 ‘청년예술가’의 범주가 내 예상보다 훨씬 넓게 열려있음을, 나는 이 사업에 선정되며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독자에서 책을 쓰는 작가로, 문화예술 향유자에서 문화예술 창작자로의 변화를 겪으며 나는 한 차례 성장했다. 이건 책을 얼마나 잘 썼는지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취미로 책을 읽고 글을 쓰던 청년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발간하고 인세를 받는 경험. 이 사소한 경험이 내 삶의 궤도를 완전히 틀어놓았다. 
  그 후로 1년이 지나 다시 공모사업 시기가 되자, 주변 청년들에게 지원 사업에 신청해보라며 등을 떠밀었다. 그러나 막상 도전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나는 수혜를 입은 입장이었으나, 사람들에게 권하기 위해 돌이켜보니 아쉬운 점도 눈에 보였다. 가장 큰 것은 홍보의 문제. ‘청년예술가 생애 첫 창작활동’ 지원 사업 자체를 아는 청년들이 거의 없다. 내가 지원했던 2021년엔 경쟁률이 2대 1도 되지 않았다. 울어야할지 웃어야할지 알 수 없는 씁쓸한 수치다. 아마 정보를 알았더라도 나처럼 ‘예술가’의 정의 앞에 망설이며 포기하는 경우도 많지 않을까.

 

#3. ‘맛’만 보여주지 말고 ‘밥’을 주세요.

  나는 부산문화재단의 수혜를 받아 청년예술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케이스지만, 나를 포함해 많은 청년들이 문화예술로 밥 벌어 먹고 살기 위해선 앞서 말한 ‘홍보’외에도 많은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많은 청년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이 ‘진입 장벽 낮추기’이다. 공모사업 정보를 접한 이후, 지원서 작성 단계에 들어가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 공모 취지에 맞게 자신의 기획의도를 설명하고 상세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문자로 정리해 설득시키는 일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서류 작성 자체를 힘들어하기도 한다. 부산문화재단의 ‘아이컨택’ 제도나 부산시의 ‘청년이음도서관’ 등을 활용해 지원서 작성법에 관한 도움을 얻을 수 있으면 어떨까. 또한 처음 공모에 도전하는 청년과 이미 지원 사업을 경험해본 청년 사이의 갭 차이가 존재하므로, 공모의 규모나 사업의 난이도를 단계별로 세분화하여 어떤 청년이든 부담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사업을 늘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부산문화재단의 지원 사업은 아직 문화기획보다는 기초예술분야에 치중되어 있는 듯하다. 기존에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문구와 함께 홍보되었던 ‘청년 UNIVERSITY’가 청년문화기획자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실험적인 도전을 응원하는 사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2022년에는 청년 기획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지 않아 아쉬웠다. 반면,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된 영도에서는 ‘기획자의 집’을 포함해 문화예술기획자를 양성하고 다양한 실험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문화기획은 문화예술창작자와 향유자 사이를 매개하는 판을 깔아주는 일이다. 향유자를 위한 무료 프로그램만 운영해서는 자생력을 높일 수 없다. 문화예술이 성장하려면 기획의 역할이 중요하다. 부산문화재단도 기초예술분야 예술가 육성과 함께 문화기획자 육성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실적인 ‘돈’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삶의 전환점에서 취업 압박에 시달리는 청년세대에게 생계는 절박한 문제다. 부산문화재단의 ‘청년예술가 생애 첫 창작활동’ 지원사업과 달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청년예술가 생애 첫 지원’ 사업은 본인 사례비 책정이 가능하다. 내가 쓴 글에, 내가 그린 그림에, 내가 짠 기획에 ‘사례비’를 책정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변화를 가져온다. 문화예술을 계속하기 위해 별도의 돈벌이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 어째서 당연한 일이 되어야할까. 청년들이 문화예술의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부산문화재단이 더 고민해주길 바란다. 언젠가, ‘이건 취미로 하시는 거죠?’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아니요? 이건 제 업인 걸요!’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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