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사회적 가치,
검색하기 또는 대화하기
김 해 보
서울문화재단 정책협력실 전문위원
챗-GPT가 답하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는...?”
부산문화재단에서는 2021년에 『사회문제 완화를 위한 문화예술활동 조사연구』(조정윤 외, 2021) 보고서를 발간하고 <건강과 치유>, <고령화 대응> 등 7가지 실천 과제를 제시하였습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도 2022년에 정신건강문제, 세대갈등, 지역갈등 등 <13대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문화예술의 역할 확대와 평가모델 필요성을 강조한 『사회문제와 문화예술정책』(정보람 외, 2022)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외에도 유사한 연구결과들이 문화예술의 사회적 가치 확산을 통해 예술가들의 활동기회도 넓히고 공적투자의 정당성도 높일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그런데 “문화예술의 사회적 가치”란 무엇일까요? <문화>도 <예술>도 <사회>도 <가치>도, 어느 것 하나 논쟁적이지 않은 게 없는 말입니다. 사람들의 논쟁으로는 답을 낼 수 없을 듯하여, 요즘 핫한 챗-GPT에게 물어봤습니다.
예술은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지닙니다. 이에 대한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문화적 이해와 감상 촉진: 예술은 다른 문화, 생각, 관점을 알리며, 이는세계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공감과 동정 심리 촉진: 예술은 감정을 일으키며, 다른 사람의 경험과 공감할 수 있게끔 돕습니다. 이는 우리와 다른 사람과의 연결과 동정심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사회적 주제 전달과 변화 도모: 예술은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표현하고, 사람들의 사고를 자극하여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 규범을 도전하고, 정의와 평등을주장하는데 효과적인 수단이 됩니다.· 정신 건강 촉진: 예술을 즐기고 참여하는 것은 삶에서 여유와 영감, 목적감을 느끼게 해줌으로써 정신 건강에 좋은 영향을 끼칩니다. 경제적 영향: 예술은 직업 창출과 문화적 행사를 통한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전반적으로 예술은 이해, 공감, 사회적 변화를 촉진하고 개인적 성장과 경제 발전에 기여함으로써 개인과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치 있는 분야입니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가?” 에 대한 챗-GPT의 답변
‘하이젠버그 원리(Heisenberg Principle)’와 예술의 가치
사실 수많은 연구자들과 정책가들이 문화예술의 가치를 모델링하고 측정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문화예술의 가치를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문화예술에 대한 공공투자의 정당성이 지속적으로 의심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문화의 정의만큼이나 다양하고 예술의 정의만큼이나 논쟁적인 모델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Understanding the Value and Impacts of Cultural Experiences – A literature review』 (John D. Carnwath·Alan S. Brown, ACE, 2014)이나 『예술의 가치와 영향연구 : 국내외 담론과 주요 연구결과 분석』(양혜원 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9)에서 찾아보시기를 권합니다.하지만 챗-GPT는 “가치는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렵고”, “공개적인 토론과 토의를 통해 다양한 시각과견해를 수렴, 분석하고...교육과 문화적 활동을 통해 가치의 중요성과 함께 가치가 어떻게 형성되고 평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법률과 제도를 통해 가치를 보호하고 유지” 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기계의 대답을 인간이 종합하면, 예술의 가치는 그것을 인식하는 인간들이 만드는 것이고, 그것을 보호하는 것은 정책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런가요?
독일의 문화경제학자 Arjo Klamer는 “재화의 가치를 측정하기 위한 그 어떤 시도도 그 가치에 영향을 미치므로 측정방법의 채택에 유의를 기해야한다”며, <경제학의 하이젠버그 원리(Heisenberg Principle of economics)>를 제안했답니다(양혜원 외, 2019 재인용). 물리적인 것들이 그러한데, 하물며 사회적인 것들은 그것의 (소위 객관적) 존재 자체보다는 관찰자와의 관계 또는 인식에 의해 그 존재성이 결정됩니다. 최근에는 예술의 가치 연구에서 “사회적 가치”라는 말이 흔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결국은 행정에 필요한 성과계측이나 시민들과의 소통을 위해, 주로 경제적 가치로, 정량적으로측정하거나 환원하려고 합니다. 이런 측정은 예술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인식의 한계뿐만 아니라, 문화정책에 결코 득이 되지도 않는다는 현실도 간과됩니다. 김세훈 교수는 “문화예술분야의 경제적 가치측정 연구 경향 분석”에서 경제적 가치 측정이 “역으로 경제적 파급효과가 적다고 나타날 경우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를 줄여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도” 있는 “양면의 칼과 같은 성격”(김세훈, 문화산업연구 제15권, 2015)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가치 이해하기(understanding value)와 영향 측정하기(measuring impact)
어쩔 수 없이 공적투자의 정당성 찾기가 숙제인 행정가들은 종종 “가치(value)”와 “영향(impact)”
과 “효과 또는 성과(effect 또는 outcome)”을 혼용합니다. 일반시민이 공감하기 어려운 예술의 본질적(intrinsic) 가치 보다 사회적 또는 도구적(instrumental), 경제적 “가치”라는 말로 예술에 대한 공적투자의 “효과”를 설명하려다 보니 말이 섞이는 것입니다. 게다가 기대한 도구적 가치가 충분히 계측되지 않으니, 인간사회 어디에선가 작동하고 있는 것의 당연한 사회적 가치를 굳이 증명해야 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런 프레임 안에서는 예술이, 그 효과가 아니라 가치 차원에서도, 예술향유자들에 의해서만 수용되기 쉬운 “본질적 가치”로는 모자라서 모든 사회적인 것들이 투쟁으로 확보해야 할 “존재적(existence)” 가치를 “주장”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립니다.
그런데, 어떤 문화프로젝트의 “효과” 측정연구자가 그 효과를 발견하지 못하면 거기에 투입된 예술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정되어야 할까요? 예술을 활용한 문화프로젝트의 효과는 그것을 기획하고 실행한 주체의 역량과 상황에 따라 발현되기도 하고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Klamer가 지적하듯이, 그것을 측정하는 계측자가 잘못 선택되었을 수도 있고, 양자물리학의 하이젠버그 원리대로, 효과를측정하는 순간 그 가치는 사라지거나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가치”는 각자의 세계관에따라 “이해”하는 것이 빠르지,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계측”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계적 세계관의 한계
<예술 활용 문화프로젝트의 효과 측정>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우선 <예술의 가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미국의 NEA는 2012년에 시스템 이론(system theory)을 적용하여 예술생태계 안에서의 가치 생성과 흐름을 “이해”한 『How Art Works』(NEA, 2012)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이에근거하여 2017년까지 5년간 세부 분야별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런 접근은 단기적인 효과 “측정”에만 목을 매는 연구보다 훨씬 본받을 만합니다. 그런데 결과로 내놓은 시스템 맵은 꽤 복잡해 보입니다. 저는이 그림을 보면서 인간의 합리성을 존재의 기반으로 생각하고 그 위에서 기계적 세계관을 추구했던 데카르트의 한계를 지적한 글이 떠올랐습니다.
데카르트는 당시로서는 이해할 수 없어서 “마력”으로 이해되었던 자력을 본인의 기계적 세계관으로기어이 설명하기 위해 아래와 같이 무리한 상상을 하였답니다. 이 위대한 철학자의 저작인 『철학원리 :Principia philosophiae』에 “지구 내부에는 그 축에 평행한 많은 통공이 있으며, 한쪽의 극에서 나온 나사입자들이 통공을 통해 다른 극으로 자유롭게 흘러간다고 생각된다...”는(『과학의 탄생 : 자력과 중력의발견, 그 위대한 힘의 역사』, 야마모토 요시타카 저, 동아시아, 2005, p.709) 어이없는 말들이 나열된 것은, 결국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설명하려는 합리주의자의 아집 때문이었습니다. 바야흐로 현실화 될 양자컴퓨팅의 시대에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더 쉽게 사실을 설명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 주위에 엄연히 존재하고, 직관적으로 이해되지만 보이지는 않는 예술의 가치를 기어이 복잡한 시스템 맵이나 공식으로 설명한 지금의 문화경제학 연구노트가, 혹시 데카르트의 철학원리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검색이 아닌 인간의 대화로 예술의 가치 공유하기
챗-GPT는 자신이 학습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다시 검색하여 확률적으로 적절한 말을 뽑아서 대화처럼 들려줍니다. 사람들은 그 내용의 진위보다도 검색을 대신한 대화라는 형식에 매력을 느낍니다. 제이컵 브라우닝 박사 등은 언어자체가 지식은 아니기 때문에, 그 “얄팍한 이해력”과 심지어 “언어자체의 한계”로 인해 인간처럼 말하지만 이 AI에게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합니다(“AI와 언어의 한계”, 제이컵브라우닝·얀 르쿤, 머니투데이, 2023.2.11). 하지만 보통의 인간들이 예술의 가치에 대한 얄팍한 이해라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소통하는 인간의 대화는 충분한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감히 인간 성현들을 갓태어난 기계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공자나 소크라테스도 대화로 지혜를 가르쳤습니다. 예술의 사회적가치를 얘기하니, “제자들아 왜 시를 배우지 않느냐?”며 시의 효용을 조목조목 얘기한 공자의 대화를 떠올려 봅니다. 그 안에 우리가 지금 고민하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다만 몸 없는 인공지능이 잘 요약해서 들려준 대답 속에 들어 있는 “경제적 가치”는 없었습니다. 공자는 예술의 가치를몸에 “체득”하고 스스로 시를 노래하며 거문고를 타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