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문화를 되살리는
민간 문화공간 활성화를 기대하며
최 시 내
가야트라 대표
부산지역 생활권 문화공간 활성화 지원 연구(2022) 보고서에 대한 단상
부산이라는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문화공간을 필요로 할까? 퇴근길에 한두 시간 밴드동호회 활동을 할 수 있는 연습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학부모들과 독서모임을 할 수 있는 단골 카페,주말이면 이웃에 사는 미술가가 소개하는 그림을 보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작은 전시장, 마을축제를 준비할 수 있는 회의실 등 그 요구는 다양할 것이다. 집과 집이 마주하는 사이, 사적 공간에서 공적 공간으로 이어지는 길, 개인에서 지역사회로 열리는 공간이 골목이다. 이 골목에서 어느 날 새로 생겨 반짝이는가게의 불빛을 발견하면 궁금해진다. 뭐 하는 곳일까? 저기서 뭘 할 수 있을까? 상상하게 된다. 이웃과 인사하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담벼락 아래 공동 평상에서 어른들이 담소를 나누던 골목의 정감을 매일 다니는 골목에서 다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현대 대도시의 삶이 다양하고 복잡해진 만큼 문화공간의 형태도 매우 다채로워지고 있다. 인접 지역과 먼 지역을 연결하기도 하고 예술가와 비예술가 또는 이웃과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하고 비상업과상업을 섞어 놓기도 하는 등 기존의 경계를 허물어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공간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카페가 공연장으로, 도서관이 놀이터로, 서점이 영화관으로, 낡은 주택이 전시장으로 변신하는 민간 문화공간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규정화된 예술문화 향유뿐만 아니라 가족, 사교, 일 등의 일상생활 영역 안에서 펼쳐지는 문화 활동이 필요하며 자발적으로 충족할 수 있는 공간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가 발간한 『부산지역 생활권 문화공간 활성화 지원 연구』 보고서는 비공식적인 생활문화공간에 주목하여 이를 활성화하는 것이 지역 문화예술 환경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전략이 될 수 있음을 제시했다.생활문화의 공식 공간으로서 생활문화센터 조성 사업이 추진된 이후 2022년 현재까지 전국 단위로 172개소 개관하였고 그 중 부산이 21개소로 가장 많다. 부산의 생활문화센터는 19개소가 기초지자체가 직영하고 있는데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운영 주체가 마련되지 않아 동주민센터 부속 시설로 머물고 있거나 수동적인 참여만 가능한 단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자원과 협력하고 주민이 참여하는 운영이나 공동체문화 조성 및 주민의 일상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운영시간도 야간과주말을 제외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공식 생활문화공간이 시민 접근성이 낮고 커뮤니티 거점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면, 생활권 내 문화적 행위가 발생하는 기존의 공간을 활용·발전시킬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기존 공간이란 민간에 의해 조성·운영되는 곳으로 기초지자체 내의 범위에서 주민들의 이용이 가능한소규모의 공간들이다.보고서에서 다룬 공간들은 부산의 사례들을 중심으로 1)클래식 음악 중심 소공연장, 2)개인 운영 미술갤러리, 전시장, 3)소규모 민간 예술집단 운영 소극장, 4)동네 책방, 5)카페 같은 여가 시설을 겸한 문화공간 - 5개 영역으로 구분하여 조사되었고 전문가 집중 인터뷰(FGI)와 스터디 세미나를 통해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과제를 도출했다. 공간 운영자들이 직접 현장 연구자로 참여하여 실태에 충실히 접근하고 현장성에 기반한 연구가 진행되었다.각 영역별로 참여한 현장 연구자이자 공동연구원들은 각 공간을 운영하는 특색있는 사례를 소개하면서 운영상 고충을 토로하는 한편, 문화공간 운영에 대한 사명감과 함께 민간문화공간의 공공적 의미를짚고 이를 토대로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예술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고, 예술가와 시민이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는 일상의 공간에서 예술가들은 예술 활동의 장을 펼치고 시민들은 문화예술을 향유함으로 정서적으로 안정을 얻고 있음을 늘 목격하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김은숙 스페이스 움 대표의 글은 이같은 공간들의 기능과 역할을 명확히 한다.
인천시에서 발간한 연구 보고서에서는 소규모 민간문화공간이 창조, 교류, 집적, 전달의 기능을 가지며 이러한 기능들이 복합적이고 융합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하면서 문화·예술적, 사회·복지적, 경제·산업적 측면에서 가치와 기대효과가 크다고 하였다. 또한 문화를 매개로 한 지역민들의 공동체성 함양 및 일상의 문화향유 기회 확대 등의 역할을 수행하기 적합하여 그 중요성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부산의 미술관, 박물관, 문화회관, 도서관 등의 공식적 문화 기반 시설이 광역시 중 가장 수가 적다고하여 새로운 대규모 시설을 구축한다 해도 시민의 접근성, 개인적 문화 향유 차원을 넘어 문화의 사회적가치 실현과 공동체성 회복으로 이어지는 커뮤니티 거점으로 그 기능을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조성한 생활문화센터가 시설 유지에만 머물러 있고 규모와 시설을 갖춰 등록 문화시설로 조성된 문화공간들은 일상적인 시민문화활동을 충분히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운영중인 문화공간에 대한 적절한 지원을 통해 지역문화의 다양성과 자생력을 높이는 전략이 시민의 일상적문화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더 타당해 보인다.
『부산지역 생활권 문화공간 활성화 지원 연구』에 참여했던 안지현 싸이트브랜딩 이사는 문화예술생태계가 조성되어 있는 카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그동안 새뜰사업, 도시재생사업 등의 하드웨어 구축 사업을 통해 마을 공동체를 위한 문화예술 거점시설들이 다수 조성이 되었지만손쉬운 토지 매입을 위해 마을에서 동떨어진 곳에 공간을 조성하거나 또 새로이 조성된 거점시설들의 유지관리에 대한 비용문제, 공간 운영자 부재에 대한 이유로 또다시 방치되어 세금만 축낸 공간들이 적지않다. 하지만 이렇게 문화예술 생산 및 확산의 생태계가 이미 조성되어 있는 동네카페들을 15분 도시의생활권 기반 문화 거점공간으로 지정한다면 새로운 공간을 조성하고 그 공간을 유지관리하기 위해 드는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쌓인 노하우를 통해 보다 손쉽게 보다 많은 이들에게 문화예술을 확산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면서 새 시설을 짓기보다 기존의 인적·공간적 보유 자원을 돌아봐야 한다는 점을 잘 지적해 주고 있다.
하지만, 이들 민간 문화공간들이 운영자 개인의 노력만으로 자생적인 수익구조를 만들어내고 운영관리의 전문성과 지속성을 보장할 인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이들 공간에 대한 현재의 지원 구조는 관련 기관별 사업으로 흩어져 연계되지 못하고 있음을 FGI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보고서에서 제안한 생활권 민간 문화공간 활성화의 방안은 이러한 공간들을 중요한 기반 문화기반시설로 인정ㆍ지원하는 발상 전환으로 ▲문화공간의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한 지원 ▲문화공간의자율성 보장 ▲지역 문화생태계의 핵심 요소이자 플랫폼으로서의 기능 부여 – 라는 3가지 방향이다. ‘우리동네 문화공간’(가칭) 인증제를 중심으로 인력, 재정, 네트워크, 프로그램, 제도의 5개 부분 지원을 핵심전략으로 설정하고 각 부분별 세부적인 정책을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① 인력 영역: <굿모닝 예술인> 사업 확대를 통한 인건비 지원, 기획자 아카데미 운영
② 재정 영역: 인증된 공간의 중장기적 임대료 지원, 운영비 지원, 수익창출 제약 철폐,통합 포인트 제도 운영, 행정서류 간소화
③ 네트워크 영역: ‘우리동네 문화공간 네트워크’ 구성, 역량강화 교육, 홍보 다각화, 유관기관 연계 홍보,커피숍과 연계 홍보
④ 프로그램 영역: 네트워크 페스티벌 개최, 유사 정책 간 연계 협력, 협력사업 개발
⑤ 제도 영역: 생활권 문화공간 활성화 지원 조례 제정, 우리동네 문화공간 인증제 실시, 우리동네 문화공간 총괄 위원회 운영
위와 같은 제안이 실행된다면 그동안 생활문화 활성화 정책이 생활문화동아리를 지원하는 활동 주체 지원에서 기초 단위별로 운영의 편차가 큰 생활문화센터 조성으로 전환되었다가 생활권 내로 더욱 구체화 되고 다양해지는 민간 공간으로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화성시의 <우리동네 문화생활 활성화 사업>,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의 <우리동네 문화공유공간>,전주문화재단의 <우리동네생활 문화공간지원사업>, 광명시 <민간 문화공간 활성화 지원사업>, 대구와인천, 고양시 등의 지원 조례 제정 시행과 같이 이미 추진되고 있는 타 지역의 선 사례들도 있다. 또한 지난 3월에 문체부가 발표한 ‘지방시대 지역문화정책 추진 전략’에는 지역 서점, 갤러리, 카페 등 근거리 민간시설을 활용하여 누구나 동네에서 누릴 수 있는 민간 문화공간 활성화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 상위 정책사업의 바탕 위에서 부산지역 민간문화공간 활성화의 제안 사업들도 취지에 맞게 운영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
공유와 참여, 협력이 일상 속 민간문화공간의 가치로 발휘된다면 이곳들의 공공적 기능이 더욱 확대되면서 시민의 문화권이 증진되고 골목문화가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이와 함께 이미 조성되어 기초지자체가 운영하는 생활문화센터의 기능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최근에 필자가 살펴 본 부산지역 생활문화센터는 주거지 내 깊숙이 위치하면서 반듯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마을공동체 활동가들이 민간위탁으로 운영하면서 문화공동체를 알뜰히 만들어가는 곳도 있었다.
운영인력과 실별 활용도가 부족하여 문을 닫아 둔 곳을 보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거주지와 일터 등에서 일어나는 지역의 문화 활동은 각 공간의 운영 주체와 관리 기관이 누구인지 가리지 않아야 한다. 민간이든 공공이든 협력하여 주민이 그 공간의 힘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민간 문화공간과 생활문화센터가 골목에서 연결되어 더욱 다채로운 시민 문화활동의 공간적 기반이 되어줄 수 있는 과제 또한 모색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