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문화예술교육으로
전환
고 윤 정
영도문화도시센터 센터장
내가 근무하는 영도구는 광역시 자치구 중 가장 인구 소멸 위기가 높다. 2020년 문화도시 영도 비전 2025를 설계할 때 주민들과 라운드테이블 만 34차를 진행했는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아이들이너무 많이 준다는 고민이었다. 문화도시가 아이들에게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콘텐츠, 아이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이웃들이 많아지도록 애써달라고 하셨다.기초지자체로 와서 문화도시 사업을 추진하기 전까지는 문화예술교육이 중요하다는 점은 알았지만생활문화의 한 분야나 문화 향유권 차원에서만 생각해 봤지 도시 의제까지 확장해 사고하지 못했다. 지역마다 인구 소멸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청년 유입과 저출생 극복이 중요 해지고 ‘아이들이 살기 좋은 동네’라는 도시 의제 차원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이 큰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런데 기존에 문화예술교육 추진 방식으로 기초단위를 설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동안 문화예술교육 사업 방식은 대게 ‘프로젝트 공모’다. 자격 기준이 중요해 경험 있는 강사들이 선정되고, 프로그램은 정보력 빠른 시민이 신청해 수요를 채웠다. 그렇다 보니 자원이 풍부한 곳과 그렇지 못한 곳 사이에격차가 발생했다. 영도처럼 인구 위기를 겪는 곳일수록 그 ‘경험 있는 강사’ 인력풀이 적고 그 ‘경험’이 있다고 꼭 좋은 교육자인가 하는 고민이 든다.
결국 아이들에게 진심인 ‘동네 문화예술교육자’가 많아야 한다. 이런 분들을 찾아 함께 공부하면서경험을 쌓아 나가야 하는데 ‘프로젝트 공모’ 방식의 문화예술교육 사업 방식은 진입장벽이 높다. 간혹 광역 재단에서 신규 문화예술교육자 양성 커리큘럼을 제공하지만 열정은 가득하나 무경험자라면 신청하기 어렵다.
한편으로는 경험이 있어야 좋은 문화예술교육자인가 생각하게 된다. 영도에서 활동하는 마을 교육공동체 리더나 의지 높은 학부모들, 동네 예술가들을 만나면 무궁무진한 아이디어와 사랑을 듬뿍 갖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작년에 이런 일이 있었더랬다. 청학동에 통학로가 위험하고 생각한 학부모들이모임을 조직했다. 센터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시라고 독려했을 뿐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 학부모님들은 동네 아이들과 안전한 통학로 만들기 프로젝트를 했고 아이들과 함께그림을 그리고 야외 펜스에 오랫동안 전시를 하는 행사를 기획하셨다. 이들은 하는 활동은 문화예술교육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
한 동네 예술가는 일부 보조금과 자비를 투자해 아이전이라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아이들을 전시회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주민들을 초대해 아이들이 신나게 살 수 있는 동네 문화의 필요성을 나누었다. 매주 청소년들이랑 플로깅을 하고 해양 쓰레기 오염 이슈를 문화적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분, 동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수집해 문집으로 만드는 청소년 동아리 지도 교사들을 만나면 그건 문화예술교육이 아닌지 혼란스럽다. 미술, 음악 같은 장르 기능을 가르쳐도 아니고 오랫동안 교육 프로젝트를 운영해서도 아니었다. 아이들을 창작자이자 지역 주민의 일원으로 적극적으로 초대하는 교육자의 태도와 ‘문화적’ 운영 방식이 주효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문화예술교육은 더욱더 동으로, 골목으로 들어가 누구든 문화예술교육자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나 싶다.
사실 기초 중심의 문화예술교육은 접근성 차원에서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아이들, 주민들이 최대한 걸어서 15분 거리 내 문화예술교육 공간이나 문화예술교육자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계속그런 공간을 공공에서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민간 및 유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동네 카페가, 서점이, 작은 도서관이 아이들을 환대하는 문화예술교육장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기초에서 촉진하고 매개해야 한다.영도는 섬이고 산복 도로가 많다. 동별로 교통편도 많지 않아 동과 동 사이에 이동성이 높지 못하다.기존 방식으로 거점 문화예술교육 공간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집 가까이 내 학교 가까이 공간이필요하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문화도시 사업이라면 언제든지 무상으로 공간을 빌려주시겠다는 분들에게 ‘연결 공간’ 30곳을 후원받았다. 그 공간을 기반으로 사계절 창의예술 학교를 추진하면서 작게 작게더 작게 흡수되는 문화예술교육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영도에서 이렇게 사업을 펼칠 수 있던 것은 문화도시 사업이라는 예산과 사업 구조 때문이다.문화도시 사업은 지역에서 필요한 사업을 스스로 구상해 추진하게 한다. 덕분에 지역 현황에 맞게 설계되고 기반을 조성하는데 주력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기초 지자체에서는 이런 기반 구축 활동이 예산 부재로 쉽지 않고 지자체에서 정책적 공감대를 확보하는 점도 어렵다.
그래서 지금은 ‘광역에서 기초로’라는 문화예술교육 정책 기조를 더욱 분명히 하고 기초단위에서 튼튼하게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광역 단위에서 지원하는 시스템 설계가 절실하다. 광역은 문화예술교육 정책 방향을 잡고 시범적이고 실험적인 사업과 거점이 되는 공간 운영하는 것과 함께 무기초 단위 거점 단체를 집중 육성해야 한다.
결국 사업은 사람이 조직이 하는 것이라고 봤을 때 기초에서 각자의 실정에 맞게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사람을 키우고 지역특성을 반영한 문화예술교육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초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설립을 광역에서 견인하고, 기초는 주민들과 도시 의제 차원에서 문화예술교육 정책을 확장하고현장에 맞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는 윈-윈 작전이 필요하다.부산이 15분 도시를 표방했다. 15분 도시는 동네권 활성화 아닌가. 내 동네에서 문화예술을 만날 수있도록 구체적인 기초단위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정책과 실천 계획이 이제는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