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은 근로자인가요?
서해든
부산노동권익센터 노동권익부 주임,공인노무사
예술인의 근로자성 및 관련 노동관계법령
"예술인은 근로자인가요?"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게 느껴집니다. 예술인도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 판단하자니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방송연예계와 문학계에 있는 주변 예술인들에게 이 질문을 해보니 다소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다들 입 모아 “나는 프리랜서라서 노동법 적용 받는 근로자 아닌데?”라는 것입니다.실제로 우리나라 예술인의 대부분은 프리랜서의 형태로 일하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21년 실시한 <예술인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전업 예술인 중 프리랜서(자유계약자)는 78.2%, 겸업 예술인 중 프리랜서는 72.2%이었습니다. 전업 예술인 중 프리랜서 종사 비율은 방송연예(91.5%), 대중음악(89.3%), 만화(87.7%) 분야에서 높았고, 겸업 예술인은 방송연예(92.9%), 대중음악(81.0%) 분야에서 높게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프리랜서와 근로자는 무엇이 다르고, 예술인은 정말로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근로자로 볼 수 없는 걸까요?프리랜서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없지만 통상 일정한 소속 없이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근로자와 자영업자와 구별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프리랜서(freelance)의 어원은 중세 시대 어떤 영주에게도 소속되지 않은 채 자유로운(free) 창기병(lance)을 뜻하는 것으로, 중세 시대 용병단에서 유래된 말이라고도 합니다.
근로기준법 제2조에는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합니다.프리랜서와 근로자의 가장 큰 차이는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기타 노동관계법령의 보호를 받는 데에 있습니다. 만약 예술인이 프리랜서라면 노동관계법령이 적용될 여지가 적거나 거의 없을 것이지만, 근로자라면 노동관계법령이 적용될 것이며, 그중 근로기준법에 의하여 해고 등의 제한(제23조), 임금 지급(제43조), 근로시간(제50조) 등이 적용되고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의하여 퇴직급여 지급(제4조) 등이 적용될 것입니다.
물론 프리랜서인 예술인에 대하여 노동관계법령이 적용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고용보험법에서 예술인인 피보험자에 대한 고용보험 특례를 두고 있기에 예술인 즉, 예술인복지법 제4조의4에 따른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을 체결하고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더라도 고용·산재보험 가입, 구직급여, 출산전후휴가급여, 육아휴직급여 등을 적용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문화예술계가 마주한 예술인의 근로조건
예술인은 ‘근로자’여야 현재 대부분의 노동관계법령에 의해서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이 지금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예술인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고 있을까요?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방송작가를 비롯한 방송연예 예술인의 경우 연차가 낮을수록 출퇴근 시간과 근무 장소가 정해져 있는 등 실질적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히 프리랜서 계약을 하고 있습니다. 공연예술 예술인의 경우 프로젝트 업무의 특성상 장시간 근로를 하고 있지만 프리랜서 계약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에 대하여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편, 큐레이터를 비롯한 재단이나 미술관, 박물관에 속한 근로자의 경우에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함에도 불구하고 기간이 정해진 계약을 반복하여 체결하는 등 불안정한 고용형태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근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프리랜서라고 하더라도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니 노동관련법령을 적용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이미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근로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지는 않은지, 문화예술계는 예술인의 근로환경과 근로조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술인의 근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달라져야 할 사회
예술인의 고용형태에 대해서 꾸준히 목소리를 낸 결과, 최근 법원과 고용노동부는 예술인의 근로자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방송연예 예술인 중 방송작가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며 방송사가 방송작가를 프리랜서로 계약한 뒤 개편을 이유로 해고한 것이 부당해고라고 판결하였습니다. 고용노동부 역시 지상파 방송 3사 방송작가 근로감독 결과 일부 방송작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방송업계의 고용구조 개선을 위해 지속하여 지도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예술인이 근로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예술인의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는지,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예술인이 근무 시간과 장소에 구속받는지, 독립하여 사업을 영위하는지, 기본급 등이 정해져 있는지 등을 판단하여 예술인이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여야 현행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이 판단 요소에서 반드시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예술인은 많지 않을 것이며, 애초에 예술인을 고용하는 사용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의 역시도 남아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인이 근로자인지에 대한 논의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정부로서는 예술인의 근로환경을 파악하고 개선하기 위해서 예술인 고용형태에 대한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며, 노동관계법령의 사각지대에 있어 근로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예술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현행 노동관계법령뿐만 아니라 새로운 법령에 대해서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2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지며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예술인도 헌법에 따라 당연히 근로의 권리를 가지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변화하는 노동의 중심에 있는 예술인이 근로조건에 있어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현행 법령을 뛰어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여야 할 것입니다.